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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Jan 16. 2022

빈틈을 만드는 이유

대화의 빈틈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대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좋은 대화는 뭘까? 나는 정적이 없는 대화를 좋은 대화라고 생각했다. 대화를 하다가 정적이 흐르면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한지는 우리 모두가 안다. 누가  어색한 분위기를 좋아할까. 그래서 나는 누구랑 대화를 하든 정적이 흐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보통 정적이 생길  같으면 시답잖은 이야기를 꺼냈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덮기 위해  시답잖은 이야기를 꺼냈다. 종종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입에 모터를 달았냐고 물어봤고, 나는  농담을 듣는  은근 기분이 좋았다. 대화의 적인 정적을 물리친 용사가  기분이랄까. 즐겁게 대화를 나눌  있도록 노력한 것을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정적이 없는 대화는 집으로 돌아가면 남는 게 없었다. 분명히 하하호호 웃으면서 대화한 시간은 즐거웠는데, 그 대화를 통해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덕분에 같은 사람과 대화를 여러 번 해도 깊이 있게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좋은 대화에 대해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정말로 정적이 없는 대화가 좋은 대화일까? 대화에도 빈틈이 있어야 대화가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누구랑 대화를 하든 정적이 흐르면 그대로 두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대화 사이의 빈틈을 만들어 대화의 리듬을 만들기도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나면 곧바로 내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고, 잠깐이지만 정적이 흐르는 동안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곱씹는 것이다. 상대방은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 나는 무슨 이야기로 답을 주면 좋을까? 고민 끝에 나온 이야기는 대화를 깊이 있게 만들어줬다. 덕분에 대화가 끝나고 나서도 상대방과 나눴던 이야기, 생각, 감정들을 고스란히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음악의 빈틈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백예린의 선물이다. 이 앨범은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큰 위로와 응원이 돼주었다. 앨범에게서 살아갈 용기를 얻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이 앨범은 내게 선물이 아니라 깜짝 선물인 셈이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종종 백예린의 선물을 들으면서 차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특히, 무료한 일상을 보내면서 알 수 없는 결핍을 느낀 날에는 어김없이 이 앨범을 찾게 된다. 백예린의 몽환적인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만, 이 앨범에 담긴 6개의 노래들이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일상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은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마치, 선물이라는 필터를 장착하고 세상을 바라보듯 일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백예린의 선물처럼 내가 좋아하는 앨범은 감상하는 스타일이 조금 특이하다. 보통은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틀어놓지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앨범은 노래와 노래 사이의 5분 정도의 빈틈을 두고 있다. 그래서 23분이면 들을 수 있는 백예린의 선물도 듣는데 꼬박 1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5분 동안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앨범을 일시 중지시키고 방금 들었던 노래의 가사와 가수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리고 정적 속에 남아있는 노래의 잔잔한 파동을 음미하며 노래가 남긴 여운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전부다. 이렇게 노래를 천천히 감상하고 나면 이 노래는 내 이야기가 된다. 나는 노래 속 주인공처럼 일요일 오후 늦게 일어나 이유 없이 서글픈 사람이 되었다가, 사랑하는 사람 생각에 하루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기도 하고, 좁다간 길에서 가로등 빛에 물든 진달래를 발견해 기뻐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음악 감상을 통해서도 내가 원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지 모른다.




독서의 빈틈


독서란 독자와 작가가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기거나, 작가에게 더 궁금한 점이 생기면 거침없이 메모한다. 종종 오타가 있으면 친절하게 수정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읽은 책들을 살펴보면 여기저기 메모가 정말 많다. 내가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머릿속은 실제로 대화를 하듯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화하듯 독서하는 방식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독서를 오래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필요로 했다. 덕분에 독서시간이 늘어나면 독서의 질은 떨어졌고, 독서시간이 줄어들면 독서의 양이 떨어졌다. 책을 통해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너무 즐거운데... 독서의 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독서의 질과 양을 높일 수 있는 묘책이 없을까?


독서에도 빈틈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면서 메모를 하는 방식은 유지하되, 특정 챕터가 끝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에 10분 정도 사색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작가와의 대화(독서) 중간에 사색(빈틈)하는 시간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독서의 양이 늘었다. 독서의 빈틈은 독서의 양뿐만 아니라 독서의 질도 많이 높여주었다. 일단 하나의 챕터를 다 읽고 나면 바로 넘어가지 않고, 책의 표지가 보이도록 책을 덮었다. 그리고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는 독자가 작가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순간, 대화를 뛰어넘어 공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즉, 독서의 빈틈은 독서를 독서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좋아하는 일을 내일도 좋아하고 싶다


대화, 음악, 독서 말고도 일부러 빈틈을 만드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산책도 빈틈을 두고 있고, 일과 사랑에도 힘들긴 하지만 빈틈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독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빈틈을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늘 좋아하는 일을 내일도 좋아하고 싶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도 매일 같은 수준으로 반복한다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3개월 만에 좋아하기를 포기한 테니스가 딱 그랬다. 매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연습했지만 실력은 3개월 내내 제자리였고,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일이 창피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실력이 늘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테니스에는 빈틈이 없었고, 빈틈이 없었으니 돌아보질 못했다. 돌아본다는 것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스스로 배우면서 성장하는 일이다. 즉, 좋아하는 일도 오랫동안 좋아하기 위해선 성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테니스처럼 좋아하는 일을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일상 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빈틈의 씨앗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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