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우 Nov 18. 2022

훌륭한 하인이 되려면

벤야멘타 하인학교

대학의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읽으라고 한 책으로 커리큘럼에 있었지만, 뭔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읽지 않았었던 책이다. 당시 나의 멘탈리티는, 금전적인 득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머리 한편으로 복잡한 생각들을 굴리면서도 이 모든 게 다 쓸모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늘 한탄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쓰잘데 없는 것을 생각하라 하면 금세라도 짜증과 화를 낼 준비가 된 상태였었다. 그런데 이런 '하인의 덕'을 논하는 책을 읽으라고 하다니. 나는 분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돈을 주고 사야 한다니.


물론 책은 샀다. 하지만 끝내 읽지 않았다. 성적에 미미한 영향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큰일은 안 났다. 책을 구매하고 나서 n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갑자기 읽어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 휴가 나간 김에 들고 와 한 3일간 읽었다. 책은 예상한 것과 다른 방식의 문학이었으나,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제와 내용은 예상한 것에 크게 빗나가진 않았는데, 여전히 성에 안 찼다.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야콥 폰 군텐이라는 청소년기 아이가 있다. 이 친구는 잘 나가는 귀족 집안에 태어났으면서 자기 스스로 부모 보호를 박차고 나와 '벤야멘타 하인학교'라는 기괴한 기숙학원에 등록한다. 이 학원은 '하인'을 위한 직업학교쯤 된다. 문제는 이 학교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시답잖은 규율들만 많은 전형적인 쓰레기 학교라는 것이다. 주인공 야콥은 거기서 실존적 문제들을 마주한다. 독특한 점은 제 발로 찾아갔기에 어떤 사회고발적인 폭로나 비판이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인데, 여기는 이런 곳이고, 정말 구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어.' 정도의 글들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법한 의식의 흐름이다.


종속성의 철학은 슬픈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극복 가능한 종속성은 영웅적인 데가 있다. 주체성이 꽃필 기회인 것이다. 근대적 서사의 역사성과 영웅주의는 그런 곳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야콥은 그러지 않는다. 친구와 원장과 원장의 동생, 선생들과 친형에 대한 상세하면서도 지극히 주관적인 묘사를 이어가고, 꿈인지 현실인지 망상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대화와 암시와 공간 이동을 전개한다. 야콥의 종속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넌 분명 더 잘 살 수 있었잖아. 너에겐 아무런 구조적 문제가 없었다. 제 발로 기어가 하인이 된 진정한 노예. 난 이런 것을 보면 화가 난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아니면서 굽실거리고, 강박적이고 습관에 체화된 뿌리 깊은 노예근성.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기는 어딘가 괜찮은 구석이 있다고 보지만, 그걸 제대로 활용도 하지 않는다.


물론 야콥에 대한 묘사에는 내가 빠뜨린 부분들이 많다. 상황을 관조할 만큼의 충분한 통찰력과 지식, 심미안을 갖춘 '비교적 똑똑한' 부류의 야콥은 하인학교의 메커니즘 정도야 너무나 쉽게 파악해버렸기에, 맨날 눈을 뜬 채 잠을 자는 선생들과 원장에게 반항 아닌 반항(적극적인 복종을 통한 반항)을 전개해 도발하고 은근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런 점이야 구조적 억압에 시달리는 '어쩔 수 없는 불평등'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야콥은 어쩔 수 없지가 않다. 실존적 문제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런 건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마치 훈련소에 들어간 나의 모습 같다. 쓸데없이 화가 나는 데는 아주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