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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Feb 25. 2024

결혼이 두렵다면? 새로운 선택, 등록동반자

가족이라는 틀걸이 (6)

기존의 혈연, 혼인, 입양만으로는 시민들의 가족 형성의 자유를 보장하기가 어렵기에, 이를 타개하려는 시도가 등록동반자 관계의 도입입니다. 등록동반자 관계는 1980년대 후반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제도입니다. 전통적인 가족 제도를 훼손하지 아니한 채 새로운 가족 형태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21대 국회에 들어와 용혜인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이름으로 발의했습니다.


등록동반자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둘 간의 결합을 혼인이 아닌 등록동반자 혹은 생활동반자라는 이름으로 인정면서, 그 결합의 정도는 혼인보다는 약하게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합하는 두 명은 동성일수도, 이성일수도 있습니다. 이성의 경우 혼인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등록동반자제도가 왜 필요한지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1989년 세계 최초로 등록동반자제도를 도입한 덴마크는 동성 간에서만 등록동반자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2001년에 생활동반자관계를 시행한 독일 역시 그 등록 대상을 동성으로 한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도입 목적은 동성 간의 사실상 혼인 관계 인정이었습니다. 동성혼을 인정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에 생활동반자제도를 도입해 구성원에 가족법상 지위를 부여하려던 것이었지요. 이러한 탓에 동성혼이 허용된 2017년 10월부터는 새로운 생활동반자 관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김상용, 안문희, 2022 참조) .  


하지만 이성 간의 관계가 반드시 혼인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향후 혼인을 생각하는 관계라고 하더라도 그 최종 결론에 이르기 전까지 서로의 생각을 좀 더 정리하고 확고히 할 수 있는 단계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용혜인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등록동반자 제도의 필요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생활동반자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결혼을 준비하는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이혼과 사별 후에 여생을 함께 보낼 사람일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 효과로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릴 때, 국가에 의해 가족생활을 보장받고, 각종 사회제도의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 국민은 더욱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요약했습니다(메디컬투데이, 2023).


등록동반자 제도를 표현한 이미지 by ChatGPT-4


등록동반자제도의 도입 목적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법제화한 국가의 구체적 내용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 간의 결합 강도가 다르고, 그에 따른 책임이 다릅니다. 이성 간에서도 등록동반자 관계를 인정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입법례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이하의 내용은 김상용, 안문희, 2022 참조).


첫째, 프랑스의 등록동반자제도인 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는 1999년 11월에 시행되었는데, 우리말로는 시민연대계약 혹은 공동생활약정 등으로 번역되어 읽힙니다. PACS의 당사자는 미혼 상태인 성년 2인이어야 하며, 직계혈족이나 3촌 이내의 친족이어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PACS가 성립되어 있지 않아야 합니다. PACS  관계가 성립된다면 둘 간에는 동거, 부양, 협조 의무가 발생합니다. 다만 혼인 관계에서처럼 한 쪽의 성(姓)이 변경되지도, 인척관계가 발생하지도 않습니다. PACS 관계 중 출생한 아이는 혼외자가 됩니다. 따라서 이성 간 PACS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라고 하더라도 남성이 당연히 친부가 되는 것이 아니며, 친자관계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남성의 인지가 필요합니다. PACS의 해소는 당사자 중 한 명만의 의사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해소가 한 명만의 의사로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에게 위자료 지급 의무 등은 원칙적으로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일방적 해소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것인 PACS의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제도 시행 초기인 2002년의 PACS의 성립 수는 혼인 성립 수의 10% 정도에 불과했으나, 20년이 지난 2022년에는 PACS 20만9827쌍, 혼인 24만1710쌍이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인 2020년에는 PACS 19만6370쌍, 혼인 15만4581쌍으로 PACS가 혼인을 앞질렀습니다. 관계의 해소를 쉽게 하자는 것이 PACS 도입의 취지인데, 실제로 헤어지는 비율은 대단히 낮습니다. 혼인한 부부는 3쌍 중 1쌍이 이혼하는 데 반해, PACS의 해소율은 10%대에 불과합니다(JTBC, 2024년).  아무래도 해소가 간단하니 서로에 대해 더 존중을 하게 되며, 그로 인해 관계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는 것 같습니다.


둘째, 네덜란드의 등록동반자제도는 1998년 시행되었는데 그 도입 목적은 동성혼의 대안적 성격이었습니다. 독일과 동일했지요. 하지만 독일과는 달리 2001년 동성혼이 허용된 이후에도 등록동반자관계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등록동반자관계는 프랑스보다는 강한 결합으로 혼인에 준하는 관계로 읽힐 수 있습니다. 프랑스와 달리 등록동반자와 상대방의 혈족 간에는 인척관계가 발생하며, 원한다면 상대방의 성(姓)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성 간 등록동반자관계에서 아이가 출생한다면 남성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됩니다. 또 두 명의 여성이 등록동반자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한 명이 아이를 출산한다면, 출산하지 않은 한 명 역시 아이의 부모로서 공동친권자가 됩니다.  등록동반자관계의 해소 역시 혼인의 해소와 유사합니다. 다만 이혼의 경우 양 당사자가 합의할지라도 법원의 재판을 거쳐여 하는 것에 반해 등록동반자관계의 해소는 재판이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프랑스와 달리 일방의 의사만으로 이 관계를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네덜란드 역시 제도 시행 초기인 2002년의 등록동반자관계의 성립 수는 혼인 성립 수의 1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에는 등록동반자관계의 성립 수는 2만4136쌍으로 혼인 성립 수 5만233쌍의 절반에 가까워졌습니다. 아무래도 네덜란드의 등록동반제가 혼인에 가까운 효력을 지니다보니 프랑스에 비해서 약한 정도의 증가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셋째, 벨기에의 등록동반자제도인 법정동거제는 2000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법정동거제의 특징으로는 프랑스의 PACS보다도 약한 결합을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법정동거는 당사자 간에 가족법상 신분을 창설하지 않으며, 오로지 재산관계만을 새롭게 규율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 성립 또한 용이합니다. 혼인이나 법정동거 상태가 아니라면, 성년자는 누구나 법정동거를 신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기존의 가족 간에도 법정동거가 가능하기에, 형제나 자매 사이라 할지라도 법정동거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법정동거제는 성적인 결합을 전제로 하지 않기에 혼인관계에서 인정되는 동거, 부양, 협조 의무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공동생활과 관련된 비분담 등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관계의 해소 또한 용이합니다. 일방 당사자의 의사로도 법정동거를 끝낼 수 있으며, 그 후 부양청구권 등도 빌생하지 않습니다.


벨기에 역시 제도 시행 초기인 2002년의 법정동거 성립 수는 다른 국가들처럼 혼인 성립 수의 10%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혼인 성립 수의 90% 정도를 기록했으며, 2020년에는 3만6329쌍을 기록하여 혼인 성립 수 3만2779쌍을 초과했습니다. 프랑스가 2010년 81.7%를, 2018년에야 89%를 기록한 것을 감안한다면, 벨기에의 법정동거 증가세는 프랑스보다 더 빠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법정동거의 결합 강도가 매우 약하다는 데서 기인할 것입니다.


세 나라의 통계치에서 재미있게 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이성이 결합한 등록동반자관계 비율입니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등록동반자관계 중 이성 간 결합 비율은 프랑스의 경우 95.4%, 네덜란드의 경우 96.8%였습니다. 벨기에는 성별 결합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산출하지 않기에 알 수는 없지만 다른 두 나라와 비슷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의 혼인과 같이 한 번의 선택으로 풀기가 매우 어려운 결합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합에 있어서와 같이 해소에 있어서도 용이한 선택권을 보장받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옭아맬 가능성이 있는 제도라면, 나의 주인됨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제도라면, 그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등록동반자관계에서 해소가 용이하다는 것은 한 편으로 걱정이 될 수 있습니다. 법적 강제가 없는 관계가, 혹은 신뢰로만 형성되는 관계가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낮은 PACS 해소 비율이 이미 답을 한 것 같지만, 김순남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덧붙이려고 합니다. 그는 동거하는 게이커플 인터뷰를 인용하며 강제가 배제된 관계만이 가질 수 있는 신뢰를 말합니다(김순남, 2022). 혼인과 같이 결합의 지속을 강요하는 제도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공동 생활을 장기간 꾸려나간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그 관계가 가진 끈끈함을 보여준다고 말이죠.   


※ 참고문헌

김상용, 안문희. (2022). 등록동반자관계는 혼인제도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중앙법학24(3), 7-51.

김순남. (2022). 가족을 구성할 권리. 오월의봄

메디컬투데이(2023. 4. 26.자). 혼인하지 않아도 가족될 수 있다…'생활동반자법' 추진.

JTBC(2024. 1. 21.자). '동거 커플'이 더 오래가더라…프랑스 '동거' 커플 역대 최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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