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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17. 2023

라섹전야

[오늘한편] 라섹을 앞두고.

내일 라섹을 하게 되었다.


내심 걱정이 앞선다. 수술 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 주변에도 온통 좋은 말뿐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찌나 간사한지. 인터넷에서 찾아본 라섹 후기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좋지 않은 경우만 눈에 띄어서, 혹시라도 만에 하나 나도 비슷한 경우를 겪게 되면 어쩌나 괜한 염려가 든다.


점점 라섹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지금이라도 수술을 취소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듯하여,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 눈이 나빠져서, 지금까지 안경을 끼고 살아온 지도 벌써 20년째다. 안경을 벗을 일이 있더라도 잘 때나, 씻을 때 정도. 안경과 반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제는 안경이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게 어색할 지경이다.


안경을 부숴먹기도 얼마나 많이 부숴먹었는가.


어렸을 때는 성질을 참지 못해 안경을 집어던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웃기지도 않은 부주의로 안경이 박살 난 적도 많았다. 최근에는 술에 잔뜩 취해 귀가하다가 잃어버리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다가 일어나는 와중에 안경다리를 밟아서 부숴버리기도 했었고.


불편한 순간도 많았다. 겨울에 김이 서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안경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크로스핏을 시작하고서부터는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격렬한 동작을 하게 되면 안경이 벗겨진다거나, 땀이 흘러서 자꾸 안경코가 흘러내린다거나.


크로스핏을 하는 중에 안경을 벗거나, 렌즈를 끼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도 자연스러운 시야가 아니어서 번거롭긴 매한가지. 시야가 흐려지면 집중이 되지 않으니, 왠지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순전히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 번은 오프라인 대회에서도 안경이 흘러내린 적도 있었다. 나 혼자 운동을 할 때면 모르겠지만, 팀을 이뤄 나간 대회에서 안경 때문에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다니. 그야말로 민폐였다.


앞으로도 크로스핏을 계속할 것이라면, 그리고 대회에 나가게 된다면 안경은 어떻게든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움직이나. 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운동을 계속 해나갔다.


그럼에도 더 미룰 수는 없었기에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라섹을 하기로 말이다.




그래서 라섹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이 크다. 빛 번짐이나, 안구건조증 등 라섹 이후의 대표적인 부작용들은 말할 것도 없고 초점이 맞지 않는다거나 시력이 예상만큼 회복되지 않는다는 말들도 신경이 쓰인다.


더욱이 시력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운동도 피해야 한다는데, 하필이면 또 다른 대회가 또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안경에 구애받지 않고 운동을 하기 위해 라섹을 하는 건데, 시력이 다시 나빠진다거나 눈 쪽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긴다면 라섹을 한 의미가 무색해지지 않나.


한 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라섹 수술의 비가역성.


여러모로 곤란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 사실이 무서워서 라섹을 차마 선택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어떤 선택이든 결정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가역적이지만, 시력의 경우에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게 난감하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앞두고, 이 글을 남기기로 했다.


라섹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라섹 이전의 삶은 어떠했는지 글을 남기는 정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떻게 될까.


그저 좋은 결과가 있기만을 바라며. 안경 없이 사는 삶은 과연 어떨지. 걱정한 것보다 별 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라섹을 앞둔 지금, 바로 이 순간에만 남길 수 없는 글이 있다면 이렇게 남겨두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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