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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Aug 13. 2022

마늘 같은 사람

 시아버지께서 얼마 전 텃밭에서 마늘을 수확해 한 포대 보내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마늘 포대는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장마가 와서, 베란다에 있는 마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설마 상하는 건 아닐까? 언제 날 잡아서 한번 껍질 까고 냉장고에 넣어놔야 하는데..'


 마음 한켠에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마늘 양을 보니 적어도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작업이라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더 이상은 지체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지체하다가 양파가 썩어 먹지도 못하고 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설거지를 한 후에 마음을 다잡고 마늘 포대를 베란다에서 가져왔다. 신성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신문지를 가지런히 펼치고 마늘 포대를 펼쳤다. 그리고는 마늘을 하나하나 꺼내서 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늘을 꺼내도 꺼내도 포대가 줄지 않았다. 포대 안의 마늘이 오히려 더 늘어나는 듯한 건 기분 탓이겠지.



 정신없이 마늘을 까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났다. 왼팔에 차고 있는 갤럭시 시계가 징~ 울린다. 오래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제 좀 일어나서 걸으란다. 빨리 마늘을 까겠다는 생각에 갤럭시를 무시하고 계속 쪼그려 앉아 전투적으로 마늘을 깠다. 움직이지도 않고 마늘 까기에 열중한 결과 두 시간 반 만에 마늘을 다 깠다.



 예전에 엄마가 TV 앞에 앉아서 나물거리나 마늘을 다듬으면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쉬엄쉬엄 하시는구나 했다. 그런데 내가 쪼그려 앉은 자세로 마늘을 두 시간 반을 까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림을 하면 할수록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깐 마늘이 수북한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느 정도는 다져서 얼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할 때 대부분 다진 마늘이 필요해서 그때그때 다지곤 했는데, 나도 언젠가는 다진 마늘을 냉동시켜 놓으리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신혼초에 샀다가 거의 써보지 못한 곰돌이 다지기를 부엌 한 구석에서 꺼냈다. 마늘을 넣고 신명 나게 다지기 통을 누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깐 마늘의 3분의 1은 다져졌고, 비닐팩에 펴서 냉동실에 넣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미뤄뒀던 오래된 숙제를 마친 것 같았다.



 마늘과의 전쟁 이후 마늘은 왕언니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어디에 얹어먹어도 맛있는 소스가 되었고, 버터 마늘밥이 되었고, 레몬버터파스타가 되었다.



 음식을 할 때마다 웬만하면 마늘이 필요하다. 찌개, 국, 볶음, 무침.. 어느 하나 마늘이 안 들어가는 것이 없다.


 마늘과의 전쟁 후에 아이러니하게 나도 마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나 필요하고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조화이루는, 그러면서도 나만의 정체성을 가진 마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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