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후 임신을 하고 나서 행동의 제약이 많이 생겼다. 격한 활동은 할 수 없고 계단 오르기나 대중교통 타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타던 버스도 이렇게나 팔과 배에 힘을 주며 안 넘어지려고 노력해야 했던 것이었는지 새삼 놀랐다. 점점 멀리 이동하는 게 부담스러워지면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
인생의 즐거움 중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다. 나눔의 즐거움 또한 빠질 수 없다. 이에 맞는 취미 중 하나가 바로 제과제빵이 아닐까 한다. 소소하게 쿠키나 빵을 구워 먹고, 맛있는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대화하는 것, 이 또한 임신 후 신체적 제약 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복해지는 방법이었다.
나의 제과제빵은 친구가 구워준 초코마들렌에서 시작되었다. 임신 후 만난 친구가 자신이 구웠다며 건네준 초코마들렌 세 개. 직접 만들었냐고 재차 확인하고 신기해하며 기분 좋게 받아왔다. 파는 것처럼 맛있진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입 베어문 순간, 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마들렌 중에 가장 맛이 있음에 놀랐다. 난 지금까지 마들렌이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휘낭시에는 몰라도.. 그런데 고급스러운 초코향이 퍼지면서 사이사이 씹히는 초콜릿이 빵과 부드럽게 녹아내려 촉촉하고 달콤했다.
당장 친구에게 카톡으로 마들렌 어떻게 구운 거냐고 너무 맛있다며 감탄사를 날렸다. 그러자 친구는 유명한 제빵 유튜버 링크를 하나 보내주면서 재료를 사서 똑같이 해보니 맛있더라고 한다. 오븐이 없어서 에어프라이어에 한 것인데도 온도 조절을 잘했더니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진단다.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길로 유튜브를 탐독하며 마들렌에 필요한 재료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살 것이 많았다. 밀가루부터 버터, 마들렌틀, 초콜릿파우더, 포장지 등등. 재료들을 주문하고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재료들은 하나하나 도착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모든 재료들이 다 도착한 날, 나의 첫 제과제빵이 시작되었다. 유튜버가 제과제빵을 할 때 유의할 점을 알려주고 반죽이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 영상으로 세세히 보여줘서 따라 하기 어렵지 않았다. 과연 맛있을까 맛있을까.. 두근두근 기대하며 갓 구워진 마들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좀 타긴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소중한 초코마들렌을 포장까지 해놓고 보니 그럴듯했다.
나는 당장 마들렌을 들고 본가로 갔다. 엄마에게 주니 엄마가 맛있다며 좋아한다. 소소한 일상대화를 나누면서 엄마와 마들렌을 먹었다. 언니와 아빠 것도 챙겨주고 집에 와서 마들렌을 더 구웠다. 다음날 4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집에 놀러 가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뭘 사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마들렌을 구워가기로 했다.
마들렌만 들고 가긴 좀 그래서 내친김에 재료를 몇 개 더 구매해서 쿠키도 구워봤다. 내가 빵을 굽다니.. 맛도 그럴듯했다. 신이 나서 포장해서 친구집에 들고 가니 다른 선물을 가져갈 때 보다 더 좋아하며 맛이 있게 먹어주었다.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 만들 수 있는 쿠키나 빵이 있는지 검색해 봤다.
지금 집에 있는 재료에서 몇 개만 더 추가해서 구입하면 또 다른 빵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길로 마트에 가서 버터와 레몬을 사고 레몬껍질을 갈아 레몬제스트를 만들기 위한 미니강판도 주문했다. 초코마들렌에서 시작한 나의 제과제빵은 스콘으로 레몬 마들렌으로 카스텔라로 스타벅스의 겹겹이 부서지는 하트파이로 나날이 발전해 갔다.
그리고 이 빵들은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이웃사촌에게 신랑 회사동료에게 당근거래에서 감사함을 전할 때 따뜻한 선물이 되어주었다. 초코마들렌으로 무심코 시작한 나의 제과제빵은 어느덧 20여 종류가 넘는 빵, 쿠키, 구움 과자 등으로 확대되었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빵을 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