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닐 때는 매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니 집에 와서 혼자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저녁약속이나 주말약속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물론 친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즐거웠지만 평일에 소모된 에너지를 채우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면 과부하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회사 끝나고 집에 와 조용히 보내거나 남편과 소소한 얘기를 하며 차분히 보내는 것이 보다 큰 힐링이었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나니 달라졌다. 하루종일 전화에 회의에 치이던 하루가 아닌 온종일 집에 혼자 있는 하루가 더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에 대한 갈증이 커지기 시작했다. 임신 전에는 평일 점심에 친구 회사에 찾아가기도 하고 휴직 중인 동기들과 만나 못다 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임신 후에는 사람은 만나고 싶은데 몸이 힘들어 멀리 나가는 것이 부담되었다. 가까이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지만 친구들은 대부분 차로 30분 이상은 가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집 주변 친구를 만들어 정보도 공유하고 평일 낮에 소소한 일상생활도 함께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나의 동네 임산부 친구를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커뮤니티방에 임산부들 함께 소통하자는 글을 올렸다. 조회수는 꽤 되었지만 댓글이 없었다. 길 가다가도 이 동네에서는 임산부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역시나 아이 엄마는 있어도 임산부는 거의 없는 듯했다. 아쉽지만 이 방법은 뒤로하고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센터였다.
집 근처 마트나 백화점 문화센터의 임산부 프로그램은 많진 않았다. 아이 옷을 만드는 임산부 재봉틀과 임산부 요가가 다였다. 이 두 개를 등록하고 설레는 맘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임산부 재봉틀에서 또래 임산부 친구 두 명을 사귀어 매번 수업시간이 끝나고 두 시간여 동안 근처 카페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육아휴직한 상황도 비슷해서 한창 재미있었는데 두 친구는 임신 9개월이어서 이제 출산에 들어갔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임산부 요가에 기대를 걸었는데 여기에서 나와 임신주수가 거의 비슷한 언니를 만났다. 집도 근처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요가 끝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친해졌다. 집 근처에서 우연히 서로의 신랑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육아 꿀팁을 나누기도 했다. 이번 문화센터 과정이 끝나면 새로운 과정을 위해 함께 다른 센터로 옮기기로 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에서는 사람에 덜 치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사를 벗어나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스스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대화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동네 임산부 친구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든 것은 학창 시절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는 회사동료, 동기들, 오랜 친구들만 유지하기에도 벅찼는데 산전 육아휴직이 나에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다시는 없을 수 있는 나의 자유로운 휴직기간에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오래도록 이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