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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템포 Feb 28. 2021

비움의 미학, 3일 단식

비워내야 담을 수 있다.


비움, 그리고 여백을 두는 일 

 3일, 즉 72시간 동안 단식을 진행하고 글을 쓴다. 

무언가를 담고 채우는 것에 급급했던 지난날에 비해 몸과 마음이 평온을 찾게 되었다.

대게 나에게 깨달음을 준 사건들이 그렇듯 거창한 이유나 목적은 없었고,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잘못된 습관과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시작하게 되었다. 인간의 3대 욕구라고도 불리는 식욕을 포기하고 72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예상외로 크게 힘들지 않았고 체중감량과 같이 드러나는 효과보다 얻은 것들이 많았다.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서 새로이 발견한 사실이 크다. 


담아내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짧지만 강력하고, 많은 공감이 되는 문장이다. 

인간의 정신력과 신체는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얻고 담기 위해서, 본디 가지고 있던 것들을 비워내야 할 때가 있다. 2월이 그러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고 해야 하는 일들도 많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주워 담았다. 그러다 보니 충분히 소화를 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미워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단식을 시작하고 나서, 몸과 마음을 비워내자 다른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빈 공간에 담아낼 것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지금 이 순간 자리하고 있다. 


 3일 동안 내가 겪었던 몸과 마음의 변화, 그리고 단식에 도움이 되는 팁들이 무언가를 비우고 새로운 것을 담아내고 싶으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다이어트가 주된 목적이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식에 대한 더 강한 집착이 생길 수도 있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단식하는 동안 또 단식이 끝나고 나서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특히 기저질환이 있거나 성장기의 청소년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제로보면 엄청 엄청 큰 빵. 장발장이 훔친 빵과 같다.

 바디 프로필을 찍겠다고 날짜를 잡은 이후부터 이상하게 음식, 특히 빵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생겼다.

식단 기록을 시작하면서 한 두 조각 먹던 빵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그리 많은 양을 먹지 않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탓인지,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청개구리처럼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억제에 대해 반항이라도 하듯 머릿속에는 빵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고, 한 번 먹기 시작한 날에는 위가 가득 차 아플 정도로 먹어댔다. 


 웃긴 것은 식단 조절을 시작하기 전에는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삼삼한 맛을 좋아하고 밀가루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나약한 위장을 가지고 있어 빵은 내 돈 주고 사 먹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빵이나 초콜릿 등을 마구 먹는 것이 행복이라는 이상한 등식이 성립되었다. 


 차선책으로 찾은 것이 통밀빵, 비건 빵 등 건강빵들을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적정량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냉동고에 가득 얼려둔 것들을 한 번에 다 먹어치우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때, 잠시 행복하긴 했다. 그리고 후회와 자책이 밀려오며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습관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끊임없이 생각나는 음식에 대한 생각은 스스로를 끔찍하게도 괴롭혔다. 굶어야겠다는 생각도 3끼를 건강하게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모두 스트레스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물론 그 시기의 호르몬의 영향도 아주 컸지만,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집념과 강박이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날 건강하고 맛있게 먹겠다며 사둔 커다란 무화과 빵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운 그 순간, 무언가 정말로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방법이 3일간의 단식을 진행하는 것. 때마침 연휴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고 약속을 잡지 않아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식이 몸에 좋다, 좋지 않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가득히 채워둔 일정 리스트들을 과감히 줄이거나 없앴다. 매일 가던 운동도 잠시 멈추고 단식의 기간 동안 어떤 것들을 하면 좋을지 차분히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체중감량이 아닌, 계속해서 반복되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비워내는 것이었다. 1월 한 달을 너무 빽빽하게 살아온 탓에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상에 의도적으로 여백을 두면서 삶의 속도를 조금은 늦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3일 동안 큰 스트레스 없이 단식을 마칠 수 있었고,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과 별개로 삶의 전반에 대해서 또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참선이나 도를 닦는 사람들이 단식을 진행하는 이유를 몸소 깨닫게 된 시간. 많은 것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방법은 간단했다. 


1) 3일간 약 2리터 정도의 물을 마신다.

2) 아침에 5g 정도의 소금을 섭취한다.

3)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의 신체활동과 정신적 활동. 

4) 스트레스에 노출될 것 같은 환경은 최대로 피하기.

5) 너무 배가 고플 때는 탄산수나 사과식초를 먹어주기.


단식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것들


1. 식탐 감소

 무언가, 특히 빵이나 과자로 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현저히 줄었다. 예전이라면 지나치지 못했을 편의점의 과자코너나 맛있는 음식들을 보아도 크게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다. 강한 자극에서 중성 자극으로 변화가 된 것인지 이제 음식들을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식물에 대한 거부가 생긴 것은 아니다. 보다 건강한 음식으로 내 몸을 채워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여 식탐 자체가 줄어든 것 같다. 


2. 마음의 평화

 적정량을 지키며, 또 이것저것 영양분을 고려하며 시간까지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다. 요즘에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있고 그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는 것이 더욱 어렵다. 다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졌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채우니 평화로운 마음까지 들었다. 


3. 시간 절약

 사람은 생각보다 먹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다. 3끼를 기준으로 했을 때, 약 3시간 정도를 사용하는데 이 시간이 줄어드니 내가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절대적인 시간 외에도 머릿속으로 고민하느라 낭비한 시간도 줄어들어 좋았다. 


4. 맑은 정신

 밥이나 간식을 먹고 나면 이상하게 졸렸는데, 단식을 하면서 정신은 더욱 또렷하고 명료해진 느낌이다. 몸은 조금 힘이 없고 때로는 어지럽기도 했지만, 정신은 더 맑아진 것 같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의 활동들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평소 많은 양의 식사를 했을 때에 비해 더욱 맑은 정신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5. 체중& 붓기 감소

 많은 분들이 단식을 하는 이유로 체중감소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3일 동안 약 2.5kg이 감소했다. 수분이 빠진 것이다, 근육이 빠진 것이다 등등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물도 많이 먹어주었고 빠질 만큼 많은 근육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자명한 사실을 확실히 붓기가 많이 사라진다는 것. 육안으로 보는 것 이외에도 끼고 있던 반지가 헐렁해졌다. 많이 붓지 않는 체질임에도 밀가루나 빵을 먹고 나면 손가락이 부어 반지가 잘 빠지지 않았는데, 단식 이후에는 맞지 않았던 손가락에도 들어갈 만큼 부기가 많이 빠졌다. 



단식을 위한 소소한 팁


1. 약속을 잡을 때는 식사시간을 피해서

 특별한 약속을 잡지 않은 연휴기간이었지만, 한 두 개의 취소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일부러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에 가거나 아주 늦은 시간에 약속을 잡아 식사시간을 피해 공복감을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2. 좋아하는 일하기

 단식 기간 내내 심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 일들은 다 취소했다. 나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거나 상황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음식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단식 기간을 채우기로 했다. 꽃 시장에 가서 예쁜 꽃을 사 와 다듬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영화를 보았다. 조금이라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해져 심적으로도 굉장히 안정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 신체활동이 적은 야외활동 스케줄 잡기

 단식 기간에는 힘이 없어 집에만 누워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2일 차 저녁이 되는 순간부터 신체의 에너지가 고갈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행동이 조금씩 느려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집에 내내 누워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외출 일정을 일부러 잡았다. 대신 신체활동이 많은 것보다는 네일을 받거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가거나 동네를 산책하는 정도. 기분 전환도 되면서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더 얻을 수 있었다. 


4. 집중할 수 있는 일하기_음식과 무관한 것으로

 책을 좋아해서 단식 기간 동안 다양한 책들을 번갈아가며 많이 읽었다. 정신이 맑아서 책의 내용이 더 쏙쏙 들어오는 것 같았고 단식을 하며 느꼈던 것들을 책에서 발견할 때마다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에 생기가 돋기도 했다. 그냥 읽는 것이 지루할 때면 필사를 하거나 독서노트를 작성하면서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유튜브 영상들도 보았는데, 폭식을 하거나 먹방에 관련된 콘텐츠들은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다. 과도한 의지를 불태우는 것 역시 멀리했다. 


5. 사과식초& 아메리카노& 탄산수

 물만 먹으니 가끔 찾아오는 공복감과 맛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이를 잡아주기 위해서 물에 사과식초(Apple Cider Vinegar)를 희석해서 먹거나, 아메리카노 혹은 탄산수를 먹었다. 커피는 단식을 깰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려고 할 경우 단식 자체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3일간의 짧은 단식을 진행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집착과 욕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집념이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는지. 


 미니멀리즘, 제로 웨이스팅 등 무언가를 담기보다 덜 사용하고 비워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몸이 가벼워질수록 일상은 더욱 간결해졌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보다 또렷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3일. 


 "여백을 비우는 것은 용기다"라는 말처럼, 비워내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타인의 의견을 들으며 이리저리 휘둘리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나 자신에게 가장 맞는 방식으로 살아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묻고 그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득 채우고만 싶은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삶의 속도를 늦추니 그제야 주변이 보인다.

인생에 이처럼 의도한 여백은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마음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때로는 하는 일을 멈추는 순간이 필요한 것을 깨달은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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