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을 들이고 마음을 쓰는 것
나의 취향은 시대가 원하는 요구를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
빠르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구태여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찾아다닌다. 식물을 키우고 턴테이블을 듣고 요리를 해 먹는다. 캡슐머신보다는 드립 커피를 아이패드보다는 손글씨를 버스보다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직접 나무를 고르고, 주말마다 공방에 나가 집에 놓을 가구를 만들며 산다.
이 번거롭고 품이 많이 드는 일들을 사랑한다.
번거롭고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2021년 1월의 아침은 명상으로 대표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반쯤은 감긴 눈으로 요가매트를 펴고, 끌리는 영상을 '선택'한다. 좋아하는 캔들을 켜고 새벽의 고요 속에서 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번잡한 마음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쉽지는 않다.
굳이 요가매트를 펼쳤다 다시 접어두는 일을 매일 반복하며 가끔은 귀찮음을 느낀다. 어차피 매일 할 일이라면 그냥 깔아 두는 편이 낫지 않나? 내 마음의 효율 요정이 달콤한 유혹의 말을 속삭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나에게 매트를 '굳이' 펴고 접는 일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명상을 하기 전 가벼운 준비와 밤새 굳은 몸을 움직이고 하루를 깨우는 의식인 것. 어쩌면 효율은 귀찮음의 허울 좋은 포장지가 아닐까,
식물을 키우고 매주 꽃을 산다.
주말마다 물을 주고, 아침마다 줄기 끝 부분을 잘라주고 물을 갈아주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바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오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더 오랜 시간 예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조화들도 많지만, 생명체가 가진 에너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같다. 가끔 저물어가는 모습이 아쉬움을 주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끝이 있기에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용하지만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그 나름의 치열함으로 꽃을 피우거나 싹을 틔운다. 이 순간에도 각자의 삶을 바쁘게 살아내고 있는 집안의 식물들을 보면서 '지금'이라는 소중함과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을 배운다.
턴테이블을 틀어 LP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턴테이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샀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다. 엘피판을 전용 비닐에 하나하나 보관하는 것부터 엘피 한 판당 3-4곡 정도가 들어가 재생이 끝나면 판을 뒤집어 주거나 바늘을 재조정해주어야 한다. 게다가 바늘도 관리해주어야 하고 엘피를 구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든다.
자동으로 원하는 노래들을 담아두고 무한 재생할 수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비해 불편하기 그지없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엘피를 모으고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 것은 그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판판한 이 판에서 바늘로 어떻게 소리를 내는 것인지, 그 자체로 신기하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이다. 관리의 문제인지 가끔 튀는 소리를 내는데, 그것도 턴테이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또 엘피판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원하는 음악이 담긴 판을 찾아내는 그 과정도 즐겁다.
그 날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원하는 엘피판을 꺼내어 레버로 바늘을 살며시 올려둘 때의 기분은 아마 블루투스로 쉽게 휙휙 넘기는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도로를 달리는 차나 행인을 피해 자전거를 타는 일은 가끔 위험하기도 하지만 묘한 해방감을 준다. 특히 도심을 달릴 때가 그러하다. 그 외에도 멀지 않은 곳은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가기도 하는데, 바구니 가득 맛있는 것들을 싣고 달리면 여행을 온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직접 사 온 식재료들을 다듬고, 굽고, 볶는 일들도 사랑한다. 재택으로 여유가 한 뼘 늘어난 요즘, 매일 어떤 음식을 해 먹을까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내가 먹을 것들,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들을 선택하고 만들고, 예쁘게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들이 모두 나에게 큰 행복을 준다.
사각사각 쓰는 손글씨를 좋아한다.
얼마 전 효율성을 위해 아이패드를 사고, 종이 필름까지 붙였지만 손으로 꾹 꾹 눌러쓰는 손글씨는 따라갈 수가 없다. 결국 아침 저널은 고전적인 노트에 좋아하는 펜을 꺼내어 쓰는 것으로.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이 분명히 있지만, 이런 아날로그 방식이 주는 경험적 가치도 크다. 쉽게 지우거나 다시 고쳐쓸 수 없지만, 때로는 마음속 삐뚤빼뚤함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 손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