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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템포 Sep 05. 2021

나무와 가을

짧은 순간과 인생

미지근한 열정

뜨거운 것만이 열정은 아니다. 

요즘 즐거운 일, 삶의 낙이 무엇이냐 물으면 한참을 생각하다 목공이라 답한다. 

이런 답을 한지가 꽤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나무 생각만 하고, 공방을 갈 생각에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기가 힘든, 알람을 5분 단위로 새로 맞추고 다시 잠에 드는 흔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일은 언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특별하게 무엇을 이루어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무얼 만들지를 생각하게 한다. 

토요일에는 좋아하는 술도 잘 마시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공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나는 열정은 무언가 끓어오르고, 뜨거워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열'이라는 글자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목공을 하며 미지근하지만 은은하며, 안정적으로 나의 기저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것들을 지속하는 것도 열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마음이 나에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 


뜨거웠던 순간도 있었고, 그 순간이 가슴 벅차게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 열기가 가시고 난 이후의 온도차가 버거웠을 때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딱 지금의 온도가 좋다. 물론, 피를 끓게 만드는 뜨거움도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톱질과 힘 빼기

중요한 것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 


말 그대로 '톱'이라는 것을 처음 사용해보았다. 

이때까지 목재를 절단할 때는 기계를 이용했는데, 공방장님이 목공을 하면 톱을 써보아야 하지 않겠냐며 톱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짧은 호흡으로 길을 내어준 다음, 손에 힘을 빼고 긴 스트로크로 원하는 지점만큼 톱을 아래 위로 움직인다. 

여기서 포인트는 힘을 빼는 것이다. 


한 번에 많이 자르겠다는 욕심으로 힘을 잔뜩 주었다가는, 어깨와 팔이 견디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무의 저항이 더욱 커져 자르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려놓은 금을 빗겨나가는 것은 덤. 


더 잘하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고 힘을 잔뜩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끔은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유연 해지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힘을 주어 잔뜩 긴장해있는 것보다 내가 나아가야 할 지점을 응시하면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방법일 수 있구나 배운 순간. 



가을, 짧은 순간

어떤 순간으로 채울 수 있을까


보통 공방에 가면 4시간 정도를 정말 쉼 없이 작업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작업량을 정해놓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쉴 필요가 없다. 


사실 목공은 꽤나 체력을 많이 요하는 일이다.

나무를 재단하는 기계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제대로 자르기 위해서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근력과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릎이나 목, 허리가 아플 때도 있지만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배고픔도 잊을 정도. 


종종 수업이 끝난 후 공방에 있는 분들과 함께 점심을 먹곤 한다. 

오늘은 날이 좋아 집에 가는 대신 늦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가을의 청명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창문을 열어두고 식사를 했는데 맑은 공기와 열기가 가신 온도에 소풍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달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는 것도 좋고, 내가 사랑하는 나무로 가득 찬 공간에서 같은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했다. 


이러다가 갑자기 추위가 다가오고 겨울이 오겠지. 

좋은 순간은 왜 다들 짧은 지 모르겠다. 

어쩌면 짧기 때문에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잠깐 울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순간을 더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순간은 빨리 지나가니까, 그때 많이 만끽해야지. 

어쩌면 인생은 이렇게 짧은 순간들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오늘 가조립을 하고 라운드를 깎으며, 이 가구를 만드는 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상처를 받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잘 헤쳐나간 것도 있었고 후회하는 일도 있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결론은 어쨌든 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다 지나간다.

이 단순한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지만.

그러니까 더 좋은 순간, 짧은 순간을 많이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날이 좋으니, 당장 내일부터라도.





귀여운 유월이

그리고 언제나 사랑스러운 공방 주인님들. 

그냥 보면 행복하다. 이 아이들이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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