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가벼움이 필요하다면,
Lenga 2020
Alc: 13%
Greece
주류 박람회에 가서 시음해본 후 꾸준히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 렝가.
그리스의 화이트 와인인데, 실온에서 마신 첫 모금에 반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추천하고 있다.
샤블리, 소비뇽 블랑과 함께 내 최애 와인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와인.
오늘은 일상이 이상하게 해야 할 일들로 무거웠던 하루라 가볍게 마음을 달래주고자 화이트 와일을 오픈했다.
의미 없이 술을 마시는 것은 이제 흥미가 떨어졌다.
나의 간 기능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았고, 자주 마시는 술이 오히려 그 즐거움을 방해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좋은 술, 내가 좋아하는 술들을 상황에 맞게 페어링 하면서 기록해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히 술쟁이다운 발상이지만, 또 이 와중에 생산적 이어보려 하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올해가 들어 혼술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목요일이기도 하고 적절한 우울을 달래기에는 가벼운 와인 한두 잔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적당한 와인을 고르려고 마트며 편의점을 들렀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와인이 없었다.
기왕이면 하프 바틀을 사고 싶었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집에 있는 렝가를 깠다.
개인적으로 와인을 남겨서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일은 숫자를 많이 봐야 하니까 참고 한두 잔 가볍게 마시고 자야지.
렝가는 향이 풍부한 와인이다. 칠린 하면 날아가는 향이 조금 아쉬워서 실온에서 한 잔, 차게 해서 한 잔 마셔보았다. 확실히 너무 차게 해서 먹는 것은 와인의 최대 향과 맛을 잘 즐길 수 없는 것 같아서 적당하게 해 두는 게 좋은 듯하다.
드라이 와인이라고 적혀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겁지 않아서 복숭아나 흰 살 생선과 마리아주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목요일쯤 되니 의욕이 조금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해서 머리가 복잡했다. 이것이 바로 3,5,7년 차에 온다는 직장 사춘기인 것인가.
차라리 욕심이 없어서 큰 문제없는 현재에 만족하고 살거나, 업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정해버리면 오히려 깔끔 해질 텐데.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잘하고 싶으면서도 라이프는 챙기고 싶은 90년대생의 애매한 열정이란.
그래도 이렇게 고민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치열한 고민의 흔적과 선택에 대해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믿음을 가지는 과정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여기서 배신이란,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든 인생의 다음 스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조금 무거웠는데, 렝가를 한 잔 하니 머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결국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고민하고, 무엇이든 조금씩 해보는 것.
현상은 복잡하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결국 계속해보는 수밖에.
렝가와 함께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