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고
오랜만에 제대로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제목은 히든 피겨스.
손짓 몇 번이면 원하는 곳으로 휙휙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컨텐츠 소비에 익숙해져서 한 시간이 넘는 영상에는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워진 사람이 되었다. 영화관이나 극장처럼 현실세계와 분리된 장소가 아니면, 특히나 더.
사실 몇 번의 넘김과 중간 중간의 끊어보기가 있었지만, 아무튼 꽤 재미나게 본 영화라 기록해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숨겨진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숨겨진 인물들은 1960년대 미국 NASA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서 큰 공을 세운 세 명의 흑인 여성 도로시, 메리, 캐서린이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언들이나 흑인, 그리고 여성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차별이 당연히 되는 당대 분위기에 영화 초반부에서는 저혈압이 절로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유없이 부정당하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 수치. 분노.
사실 당대의 분위기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을지도 모른다.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장실을 따로 써야 했다거나, 컴퓨터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있을지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일들이.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목소리를 내고 부당함과 맞서 싸웠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무해한 초식동물 같달까.
어린 시절에는 꽤나 언쟁을 즐기던 아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좋은게 좋은거라는 마인드와 내가 조금 손해보고 말자는 마더 테레사 뺨치는 희생정신의 콜라보로 갈등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부당함이나 부조리 혹은 목소리를 내어야하는 순간에도 침묵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친구과 회사에서 나에게 벌어진 부당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의 대처방식은 살아 있는 인간보다는 부처에 가까웠다. 모든 것을 해탈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 친구는 혀를 내둘렀다. 노력에 대한 대우를 바라는 것은 정당한 요구이며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너의 상황을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캐서린이 멀고 먼 유색인종 화장실에 다녀오는 일로 지적을 받은 순간(심지어 보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도 못했다) 부당함에 대해 울부짖었던 장면에서 나의 여러 순간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필요한 순간, 제대로 목소리를 내었는가.
회사에서 있었던 개인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사회, 내가 속한 조직에,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의견을 전달하고 타인의 의견을 듣는 일. 문제가 있다면 맞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무언가 변하니까. 조금씩이라도.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은 경계해야하는 태도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