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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템포 Jan 29. 2024

5년 만의 치앙마이

왜 다시 치앙마이였을까,

정확히 5년 전, 나는 치앙마이에서 한 달 정도를 살았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취업난에 허덕이던 때, 모든 것을 놓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계획으로 도착한 치앙마이. 자연스럽게 눈떠지는 시간에 일어나 정오의 뙤약볕아래 수영하고, 망고 먹고 낮잠을 자거나 요가를 하던 무위의 삶. 특별한 것 없이도 하루하루 일상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감각.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힘들 때, 종종 그 기억에 대한 그리움과 평온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 갈 곳이 많기에 한 번 가본 나라보다는 늘 새로운 곳을 노리는 여행자지만, 이번만큼은 다시 한번 이곳에 방문하고 싶었다. 아직도 내가 살았던 동네의 구조가 눈에 훤하고, 어떤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여유롭고 느려도 괜찮은 분위기들. 때마침 5년간의 시간이 치유와 방향성에 대해 재정비가 필요했기에 나는 다시 이곳으로 홀로 돌아왔다. 


비행기표는 거의 출국 3일 전에 끊었다. 

지난 발리행과 다를 게 없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가기 어려운 것이 여행이다.

마침 나에게는 새로운 포지션 변동으로 인한 일주일 정도의 여유기간이 생겼다. 일은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고, 다녀와서 하게 될 테니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5일간의 휴가를 냈다. 


성격상 이 정도의 고민을 하게 될 때는 이미 90% 정도의 마음이 기울었음을 경험에서 배웠다. 

그 주에 꼭 가고 싶었던 일정들이 잔뜩 몰려있어 한 명 한 명 사과의 문자를 돌렸다. 

흔쾌히 다녀오라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서 온 미안함이 컸지만,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하나하나 약속일자를 변경하고, 비행기를 끊고 숙소를 예약했다. 이 모든 것이 하루 만에.


3일 정도 남으니 유명한 숙소들은 없었고, 깔끔하고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 호텔/에어비앤비로 골랐다.

그중 한 숙소는 내가 5년 전에 묵었던 곳. 사진이 눈에 익어서 긴가민가 했는데, 루프탑 수영장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내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것을. 

사실 조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여행이, 5주년 기념 추억여행으로 순식간에 변모했다. 무엇이든 역시,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일요일 공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늘 출국할 때마다 긴 줄을 섰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출국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읽을 종이책도 샀다. 책이 무겁기에 잔뜩 들고 다닐 수는 없지만,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감각을 아이패드는 절대 줄 수 없다.


여행에서 읽기 좋은 도서로 추천한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요즘 나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책이었고, 이후 여행에서도 생각해 볼 만한 주제들이 많았다. 

예쁜 사진을 찍는 것도 좋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더 많이 걷고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를 나누어보고 아침을 루틴 하게 운동으로 열어보고 싶다. 


내가 특히 공감했던 부분은, 어떤 선택을 할 때 장단점을 리스트로 만들어 고려하는 작업이 어떤 문제에는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어떤 문제에서는 무용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비행기를 예매하는 것과 어떤 나라로 가고 싶은 지는 다른 프로세스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정량적인 것들로 그러지 않아야 할 것들을 판단하고 실천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행에서는 다른 것보다 혼자 많이 생각하고 방향성을 다시 잡고 싶다. 

슬슬 이것저것 욕심이 나기 시작하지만, 웬만한 것 제외하고는 그냥 걸어서 음식점에 가고 카페에서 글 쓰고 책 읽고 하는 정도로 있고 싶다. 검색도 지치고, 음식보다는 사색이 더 좋기 때문이다. 

기록보다는 체험과 온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길.  

치앙마이의 첫인상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분명 처음이라 기억에 강하게 남았을 텐데, 놀랍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랩을 불러 숙소로 가는데, 가는 길목의 주욱 따라 늘어선 강을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가 한참을 걸었던 길. 처음에는 오토바이 뒤에 타서 다니기도 했었던 길. 

날씨도 쾌청해서 달과 구름이 보이고 온도 습도도 높지 않아 걷기에도 좋을 듯했다. 

밤은 여전히 빛나고, 눈에 익은 식당들이 들어올 때마다 괜스레 반가워지는 느낌. 

정말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체크인하고 숙소에 근처를 살짝 산책했다.

어둡긴 해도 위험하지 않은 곳. 누군가는 관광객이고 누군가는 여기 주민일 테지.

혼자 여행은 항상 조심해야 하기에 우선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캐모마일 한 잔을 마시고 책을 읽다 잘 예정이다. 

맥주가 아주 땡겼지만, 비행 내내 부은 발을 위해 오늘은 푹 자야지!


첫 도착이지만, 내가 왜 다시 치앙마이에 오고 싶었던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천천히 흘러도 괜찮은 곳, 그래서 치유의 시간을 주는 곳이기에.

한껏 힘들어간 나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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