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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템포 Aug 31. 2024

여행에서의 초조함을 버리는 방법

@Yountville

여행에서의 초조함은 보다 나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다시는 올 수 없을 곳이 될지도 모르기에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욕심에서 비롯되곤 한다. 

아침 일찍 눈을 떴지만 사전정보가 전무하다 싶은 동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부지런히 스크롤을 내렸다. 오늘의 행선지는 Yountville. 1인당 미슐랭 음식점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작은 마을이다. 

다들 와이너리를 가는 길에 잠시 멈추는 정도로 생각을 해서인지 가는 식당이나 베이커리 등이 비슷했다.

결국 가는 내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마지막 나파밸리의 일정에서는 무엇을 하는 곳이 좋을지 한참을 찾았다. 버스에서도 다양한 활동들과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았는데, 이동 중에 작은 글씨를 휙휙 내리다 보니 속이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


이 마을에 방문한 10에 9는 가는 Bouchon 베이커리에서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열을 식혀줄 아이스커피, 떨어진 당을 채워줄 에클레어, 그리고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을 빵을 샀다.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자 이곳에서 산 엽서를 꺼내 들었다. 손글씨를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참 편지에 빠져들다가, 모순적으로 앞으로의 텅 빈 일정에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어 다시 휴대폰을 꺼내 찾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내가 일주일 정도를 또 언제 혼자 와보겠냐는 마음에서 비롯된 불안이었을 것이다. 


미국물가와 고환율, 그리고 나파밸리라는 지역의 특성상 대부분 하루 지정한 예산을 훌쩍 넘었다. 하루 하나씩만 해도 통장이 텅텅 비게 될 것이 빤히 보이는 상황. 무엇보다 정말 하고 싶었던 활동들이었다면 고민 없이 했겠지만, 이리저리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마음 깊이 원하는 것들은 아니었나 보다. 초조함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동네를 천천히 산책해 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들어가 보는 것으로 하자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이 작은 마을은 그냥 걷기만 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가까이 볼 수도 있고, 심지어 만질 수도 있다. 주인의 특색이 돋보이는 저마다의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는 데다 다들 어딘가 들떠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만,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것은 가벼워지는 마음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테이스팅 룸들을 보기 시작했다. 블로그에서 발견하고 구글 평점까지 꼼꼼하게 확인해 본 결과 Handwritten이라는 와이너리의 점수가 아주 좋았다. 큰 마음을 먹고 들어갈까 하고 입구까지 갔다가, 야외에 앉아 이 날씨의 축복을 더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앉아서 잔을 쌓아두고 마시는 곳에 충동적으로 들어갔다.

여차하면 글라스로 마시고, 편지를 마저 쓰고 가야지 싶었지만 친절한 서버님의 설명과 날씨에 취해 테이스팅을 신청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곳의 와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나뭇잎사이로 반짝이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려 파도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구글평점이나 비비노의 별이 아닌, 찰나의 순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개인화된 경험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비소로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별점 비교, 그리고 아마 있는지 모르고 살았어도 전혀 영향이 없는 여러 활동들을 검색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보다 더 나은 것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에 초록의 잎사귀와 와인의 맛에 더욱 집중해 보고, 유명한 것들을 더 많이 해보고자 하는 것보다 정말 이곳, 이 순간이 아니면 보지 못할 사람들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누는 것이 내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자 초조함 대신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함이 내 마음에 자리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온 나를 신기해하며 즐거운 금요일을 보내라고, 테이스팅 비용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예상하지 못한 친절도 선물 받았다. 숫자와 비교에 갇혔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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