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 Airpot
여행을 떠나며 가장 많이 했던 것은 가방을 꾸리는 일이었다.
집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일이다.
여행 전체의 가방을 챙길 때는 성향마다 여행을 떠나는 곳마다 무엇을 챙겨야 할 지에 대해 조금씩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캐리어를 두 개 정도 챙겨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배낭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경우는 아래와 같이 큰 짐을 싸곤 한다.
1. 아주 기본적인 것들
: 여행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다. 예를 들어 여권, 속옷, 세면도구 등이 있다. 이 카테고리에 이것저것 많이 집어넣고는 했지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정말 정말 필요한 것들은 가방 하나만으로 족할 수 있다.
2. 나에게 필요한 것들
: 없어도 무관하지만 나에게 있어 여행은 개인화된 경험이 아니면 의미가 없기에 챙기는 것들이다. 항상 챙기는 것은 여행에서의 감흥을 기록할 가벼운 노트, 책 읽기 용으로 전락해 버린 아이패드, 기초 제외 화장품들이 있다. 여행마다 테마 정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2~3가지 정도가 된다.
3.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관한 것들
: 여기서부터 욕심의 영역이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대비하여 혹은 여행을 기념하기 위한 사치재들이 이에 속한다. 화려한 원피스, 귀여운 파자마, 종이책들이 이에 속한다.
몇 번의 여행길을 통해 이를 내 삶에 투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여행을 떠나면 이를 더욱 극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도 줄이고 줄이다 보면 종이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갈 수 있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는 욕심의 영역이 침범할 공간이 없다.
정말 꼭 필요한가?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정의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것들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배울 수 있다. 생각보다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깨달으면, 여행과 삶을 더욱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또한 두려움도 줄어들게 된다. 아주 망하더라도, 이 정도는 살 수 있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들, 잃어버리면 큰일이 나는 여권이나 카드처럼 인생에서도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들이 있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건강과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것들. 이들이 있어야만 계속해서 짧은 여행도 인생이란 여행도 해나갈 수 있다.
여러 번의 여행을 거치며,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생각들은 아주 빠르게 휘발되기 마련이라 언제부터인가 노트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벼워야 한다는 것. 손바닥만 한 노트지만, 그곳이 어디이든 글로 써내려 가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단순해진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일 수 있다. 어떤 이는 미식을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사진으로 남길 것이다. 타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에게 중요한 것을 잘 구분하고 챙기는 것은 여행과 '나만의' 삶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여행의 테마나 느끼고 싶은 것들을 정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트렌치코트 입고 사진 찍어보기, 센트럴 파크에서 돗자리 깔고 베이글 먹으며 피크닉 하기와 같이 뻔할 수 있지만 꽤나 구체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영역은 하면 여행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지만, 꼭 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이나 아쉬움이 없는 것들로 구성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돗자리였다. 공원이 곳곳에 많은 미국인만큼 날이 좋으면 돗자리를 깔고 누워 드높은 하늘을 보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했기에 출국 전날 급히 주문하여 들고 왔다. 거의 2명이 누워도 넉넉할만한 크기의 피크닉 매트라 매일 가지고 다니기에는 조금 무거웠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종종 두고 가기도 했다. 다른 짐과 함께 하루종일 들고 다니니 너무 무거워서 어깨도 아프고 평소보다 더 빠르게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하다고 혼동하곤 할 때가 있다. 사실 중요한 것들이 아닌데,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해서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이다. 욕심의 무게가 늘어난 만큼 무거움도 늘어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채로움은 만들어줄 수 있으나 이것들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여행 전체를 망치지는 않기에 조금은 힘을 빼도 되는 것이다.
사실 가방을 꾸리는 일은 늘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오랜 여행을 떠날 때처럼 인생을 다시 재정비하고 미래를 위해 모든 짐을 풀고 다시 짐을 챙겨야 할 때도 있고.
하루하루의 일정에 따라 어떤 것들이 오늘 하루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 한 두 개 정도만 챙겨야 할 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든 내가 가방을 다시 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