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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연 Jan 09. 2019

사랑받고 있은 걸 넌 알고 있니?

사랑받고 있는 걸 널 알고 있니?

중학교 2학년 때 새벽에 일어나 동네 뒷산으로 운동하러 갔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억지로 깨워 마지못해 갔다. 하지만 아침을 일찍 시작하니 하루 여유가 있었고,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장점을 맛보고 있었다.

그날은 혼자서 운동하러 갔는 데 뒷산 앞에는 다리가 하나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맞은편에서 젊은 여자가 아침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지나면서 술 냄새가 진동했는데 그 여자는 혼잣말하며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런데 바로 지나간 직후 뒤에서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 젊은 여자는 험한 바위로 가득한 다리 밑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이렌 소리와 소방원들의 분주함과 그 여자의 시신은 하얀 천으로 덮여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다리만 보면 웃으면서 비틀거리는 그 여자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여 그곳으로 운동을 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겪었다. 그들의 마음을 내가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얼마나 힘들었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착하고 마음이 여리고 말수가 적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아마 자신들의 어려움과 힘든 점들을 표현하지 않고, 혼자 삭히다가 더는 혼자서 삭힐 수 없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환경이 나쁜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부모님들의 사랑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 학생에게는 지식만 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나에게 토로라고 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힘든 것을 내가 알았다면 도움을 주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 자책을 많이 한다. 하지만 워낙 말이 없고 공부만 하는 착한 아이들이기에 나는 단지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고, 공부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아는 큰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그들은 인사 외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분명 자신의 답답함과 고민이 있을 텐데 말하기가 겁이 났거나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가 자살 사망률이 OECD 국가 중 1위이고, 특히 우려되는 점은 그중에서도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추산에 따르면 매년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약 40초에 한 명꼴로 자살하는 것이다. 자살의 주된 이유는 13~19세 청소년은 ‘성적 및 진학문제(35.3%)’, ‘직업(25.6%)’, ‘외모/건강(16.9%)이고, 20~24세 젊은 사람들은 ’직업(45.6%)이 주요 원인이다. 인터넷에 ‘자살’ 혹은 ‘청소년 자살’이라고 검색만 해도 수많은 사이트가 올라오는 걸 보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더 슬픈 것은 초등학생들의 자살도 증가한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요즘은 상담하면서 말수가 없는 청소년들은 질문에 답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다그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분위기를 편하게 하고 사소한 일상적인 가벼운 대화를 하며 ‘나는 너를 돕기를 원해’라는 느낌을 주어 끌어내려고 한다. 예전에는 선생님과 부모님 관점에서 아이들을 설득시키려고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상황만 가속하고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더 닫아버린다. 그렇게 아이들과 가볍게 여러 번 만나고 또 만나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입을 열기 시작한다. 조용히 눈물만 흐르는 아이들, 서럽게 우는 아이들, 누굴 원망하면서 우는 아이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공감과 동정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의 고민과 슬픔을 지칠 때까지 울고,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마음이 아주 가벼워진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면 나는 아이들이 더 울도록 그들의 마음을 더 헤아린다.

그런데 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다음 날 표정이 한결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부에도 더 매진하고, 미소도 자주 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짐을 알 수 있다. 온종일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입시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우리 아이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신이 아닌 이상 바꿀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줄 알고, 싫으면 적어도 싫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이야기해서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속에 의사를 표현할 때 마음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다. 마음도 하나의 그릇이기에 슬픔과 기쁨, 서러움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그릇이 넘치게 되면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줄 수 있어서, 울고 고함을 질러서라도 비워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고 있는지 하루에 10분씩만이라도 생각해야 한다. 어떤 동기부여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뭐 여러분 자신을 돌아볼 생각도 없고, 미래도 생각도 없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내 인생에서 지금이 정말로 황금 시기인지 그런 걸 몰랐어요? 여러분 부모님이 아버지가, 네 엄마가 너 낳을 때 뭐라고 그런지 알아요? 세상을 얻을 줄 알았어요. 세상을…. 그렇게 소중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여러분은, 지상 누구보다도 소중합니다.”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어머님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으로 평생 기억한다. 모유를 먹는 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보이고, 아이가 새근새근 잠이 드는 모습을 보며 잠시 눈을 붙이신다. 어디가 아프면 걱정 어린 눈빛으로 옆에서 지켜주고, 아이와 잊지 못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많은 사랑을 가지고 노력한다.

엄마는 말 그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되어 주셨다. 입맛이 없으면 요리사가 되어주시고, 아프면 간호사가 되어주시고, 모른 것을 물어보면 선생님이 되어주시고, 일이 생기면 해결사가 되어주시고, 고민거리가 생기면 상담가가 되어주신다. 지금도 이런 사랑을 받는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다.

사춘기가 접어둔 남학생들은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젊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친구 혹은 감정에 휩쓸려 독립하려는 마음이 너무나 강하다. 예전에 고등학교 남학생 두 명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학교생활에 충실한 녀석들인데 사춘기가 접어들면서 그리고 이성에 눈을 뜨면서 방황을 하였다. 그때 내가 물어본 질문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아버지 손을 본 적 있니?”

“이런 날씨에 매일 일을 한다는 자체가 힘든데, 왜 그러실까?”

“엄마가 너희들 잘되기 위해 얼마나 마음 졸이는지 아니?”

“엄마가 너희들 학교생활 힘들까 봐 말씀은 못 하셔도 얼마나 걱정하신 지 아니?”

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덩치가 큰 두 녀석은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줄 모른 채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함을 몰랐다. 젊었을 때는 세상이 온통 힘들어 보이고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은 변한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경찰대학교 박상미 교수는 ‘누구나 공통점이 있어요. 어떤 경우에도 나를 믿어주고 무조건 응원해주는 한 사람이 그 옆에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없기에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지치지 않도록 한결같이 믿고 응원해주는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아온 사랑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인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단 한 명이기에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산 정상에 오르다가 힘들면 잠시 쉬어 산 소리, 새 소리, 물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주위 경관을 보며 재충전하고, 또다시 오르다가 힘들면 잠시 쉬어 결국 정상에 올라 우리는 ‘야호’라고 고함친다. 마찬가지로 살아가다 힘들면 마음을 비워내 재충전하면서 지금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어느새 우리는 ‘야호’라고 고함칠 꿈의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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