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보다가 한 여학생의 인터뷰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익숙한 이름인 것 같아 다시 한번 보니 약 8년 전에 지도했던 여학생이었다. 이 여학생이 그때 나에게 했던 말이 갑자기 기억났다.
“선생님 저 너무 바빠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일을 너무 많이 맡기고, 시험 때가 되면 제가 미처 하지 못한 공부들이 많아서 시간이 촉박해요. 동아리도 꾸려나가야 하고, 방송국 방청객으로 참석해서 내용 요약 정리해서 발표도 해야 해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내가 지켜봐도 너무 바쁘고, 학교에서 맡긴 일도 그렇지만, 수행평가와 내신 준비 그리고 수능까지 준비하느라 모든 면에서 바빴다. ‘힘들다고’ 투정은 자주 부렸지만, 끝까지 시간을 쪼개면서 자신이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결국은 원하는 중앙대 심리학과에 합격하여 지금은 자신이 나가야 할 길을 더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아마 바쁜 생활을 보내지 않았다면 자기 관리도 못 하고 주어진 일에 소홀히 하여 단지 평범한 학생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이런 남학생도 있었다.
“요즘 수행평가와 곧 시험이 다가오니 아주 바쁘지?”
“아니요. 하나도 안 바빠요. 수행평가는 어떻게 할지 몰라서 친구 들 거 베끼면 돼요. 시험공부는 안 해요 (하하하)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그냥 뭐 시간만 보내요.”
이 남학생은 소홀히 하다 보니 자신에게 맡겨진 일도 없어서 유일하게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었다. 그런데 유독 바쁜 것이 하나 있었는데, 학교 끝나자마자 PC방 자리 잡으려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만 유일했다. 고3 때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미달인 대학교에 그것도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과에 입학했다. 자신의 꿈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학과는 오히려 대학 생활을 지루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1학년도 힘겹게 다니다 자퇴하고 군대에 갔다. 비싼 등록금만 날린 셈이다.
이 두 학생의 사례를 보면 누가 능력자인지 알 것이다. 그러면 능력자인지 아닌지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바쁘다’라는 것이다. 바쁘다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이유 없이 바쁜 것은 없다. 그런데,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자신의 꿈이 있어 바쁜 학생이 있고, 반면에 그냥 하루를 보내면서 쓸데없이 바쁜 학생도 있다. 그리고 남들이 자기에게 위임하는 일을 비교해 보면 안다. 자신이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변에서 판단되면 더 많은 일과 동시에 더 많은 보상이 있지만, 주변에서 주어지는 일이 많지 않다면 그만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일을 더 많이 준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을 준다는 점을 의미한다. 맡은 책임을 수행하는 면에서 힘들다는 것 자체가 ‘능력자’라는 증거다. 물론 바쁘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임을 수행하는 바쁜 활동은 우리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에 그 과정을 통해 최대한 성장하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만약에 ‘피겨여왕’이라고 불리는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가 현역시절에 식단을 지키지 않고, 힘들어서 훈련을 하루에 30분씩 줄이고 잠을 늘였다면 즉시 성적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30분이라는 시간을 ‘겨우’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김연아에게는 30분이라는 시간은 실패라는 심각한 결과를 가지고 온다.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바쁘게 그리고 더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하면서 자신의 목표 점수를 향해 분발하는 것만 필요하다.
하지만 중하위권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까?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는 30분 아니라 3시간이라도 나태함이 허용되고, 실수해도 용인이 될 것이다. 왜? 최고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김연아 선수처럼 너무 바쁜 훈련과 스케줄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럼 중하위권에 있는 선수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슨 변화가 필요할까? 그렇다. 김연아 선수처럼 바쁘고, 더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하며 최대한 많은 훈련량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최고의 자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
더글러스 맬럭의 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좋은 재목은 쉽게 자라지 않는다. 바람이 강할수록 나무는 강해지는 법이다.”
좋은 나무는 강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 강도를 만들어 내는 것은 편안한 곳이 아니 척박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 나무가 많이 흔들리며 자랄수록 좋은 재목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바쁘다는 것은 좋은 재목이 되는 과정이며, 바쁘다는 것을 불쾌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보험회사에서 사용되는 하인리히 법칙인 1:29:300이 있다. 하인리히는 보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사고들을 보면서 이런 사고들에는 어떤 연관이 있고, 혹시 모를 어떤 법칙이 있을지 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는 300번의 사소한 사고가 29번의 더 큰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29번의 사고는 한 번의 대형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한 번의 대형 사고는 없다. 300번과 29번이 대형 사고를 유발하는 징후와 같다. 이것을 바꾸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 300번 바쁘게 노력한 것들은 29번의 멋진 결과를 가져오고, 29번의 멋진 결과는 단 한 번 누구에게나 쉽게 나타나지도 않을 멋진 결과를 가져온다.’
‘노력 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노력 없이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노력 없이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반드시 300번이라는 바쁜 노력이 필요하고, 그 바쁜 노력이 자신을 원하는 위치에 올려주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사소한 300번에는 시간을 쪼개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의대를 꿈꾸는 학생들은 진학을 위해 의학 동아리를 만들고,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미리 현장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손에 섬세함을 미리 익히기 위해 ‘기타’라는 악기를 배우면서 바쁘게 지내는 모든 것들이 바로 300번이다.
다음으로 자신이 능력자라는 또 다른 증거는 바로 ‘꿈’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최고의 대중 소리꾼으로 ‘찔레꽃’이라는 대표작을 남긴 소리꾼 장사익은 가난한 시골 생활로 인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다. 보험회사, 독서실, 가구점, 카센터 등 무려 25년 동안 열다섯 개가 넘는 직장을 거친다. 하지만 장사익은 평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태평소’를 계속 꿈을 꾸었는데, 어느 날 딱 3년만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태평소’를 하겠다고 결심을 한다. 자신의 꿈을 위해 시간을 만들어 이광수 사물놀이패를 찾아가 무임금 단원으로 합류했다. 장사익의 열심과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재능을 알아본 임동창의 추천으로 1994년 서울 홍대 앞 소극장에서 데뷔 무대를 열게 된다. 그러면서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다양한 드라마 OST에서 태평소 파트를 연주해서 유명해졌다. 그런데 처음 데뷔한 1994년, 그때 장사익의 나이는 46세였다. 장사익은 가난한 환경에 있었지만, 능력자라는 증거를 보여준 ‘꿈’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데뷔 나이가 46세라는 점을 보면 자신의 능력에 ‘나이’라는 숫자가 무색함을 보여준다.
상담하는 학생들 누구에게나 ‘꿈’에 관해서 물어보면 나름 자기만의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종종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환경과 비교하다 보니 부끄러워서 꿈을 말하지 않거나, 접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물에도 존재 이유가 있다. 분명 우리 자신도 무엇인가 이루어야 할 존재다. 그 자체만으로도 능력자라는 증거다.
집을 짓기로 했다면 먼저 건축 설계를 하고, 설계를 마쳤다면 그에 따라 바쁘게 집을 짓는 활동이 수반되면 집이 완성된다. 꿈이 있다면 설계하고, 그에 따라 300번이라는 바쁜 활동이 수반될 때 어느새 우리는 자신의 꿈을 건축하게 된다.
두 번 다시 능력자라는 증거를 불평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