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철인(鐵人)이었다.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다. 농사를 지으며 우리 5남매를 키우셨고,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님을 봉양하셨다. 난 엄마를 생각하면 천하장사를 떠올리곤 한다.
외가에는 외할머니 혼자 사셨고, 논과 밭이 조금 있어 엄마가 농사를 일구셨다. 외가에는 특히 감나무가 많았다. 내 기억에 7그루였다. 자두나무와 앵두나무도 많았다.
국민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하루는 엄마가 “남형아 외가 할머니 뵈러 가자. 가다가 장에서 장대를 사서 들고 걸어간다. 외가에 있던 장대가 망가졌어.” 내가 좋아하는 감을 따려면 장대가 필요했다. 나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이따금씩 동생과 같이 외가까지 걸어가곤 하였다. 8km...
시장에 들러 장대를 샀다. 장대 길이로 보아서는 깨나 무거워 보였다. 시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시골길이 나온다. 가을이라 햇살이 너무 따사로웠다. 엄마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또 한 손으로 장대를 잡고 걸으시며 나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네신다.
“남형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우리 둘째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엄마말도 잘 듣고...”, “외할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는 외로우실 거야. 자주 찾아뵈렴.” “엄마는 초등학교 때 셈본(산수)을 잘했단다. 남형이도 산수를 잘하더라.” 엄마와 나는 웃으며, 이야기 나누며 8km의 그 길을 걸어 외할머니 집으로 갔다. 중간중간 엄마는 나에게 동요도 불러 주셨다.
“엄마 장대 안 무거워?, 내가 도와줄까”라는 말에 엄마는 “너는 무거워 못 들어, 팔 빠진다.”라며 내 손을 꼭 잡고 걸으신다.
엄마는 키가 170cm였다. 그 당시에는 엄청 큰 키였다. 엄마는 그 큰 키와 긴 팔로 한 손에는 장대를, 한 손에는 내 손을 잡고 2시간 이상을 걸어 외가에 도착했다. 땀이 났고, 외할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해 가을 그 장대로 감을 따 곶감을 만들고 침감을 만들었다.
엄마와 손을 잡고 걸었던 그날은 56년 엄마와 함께하며 지나온 날 중 가장 따뜻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따스한 가을 햇볕과 엄마의 따스한 손, 엄마와 도란도란 나누었던 이야기... 이따금씩 그때 그 길을 걸어본다.
면사무소에서 신작로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45년 전 그때 엄마가 나를 바라보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 길에는 엄마가 계신다. 환하게 웃으시며...
행복한 사람은 고맙고 감사한 추억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한다. 엄마로 인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예쁜 추억을 만들어 주신 엄마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