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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했을까?(6)

숙제만 하신 삶

by 메멘토 모리

어릴 적 눈이 펑펑 오는 날 따뜻한 마중물이 든 물동이를 이고 가 펌프수도에서 물을 길어 오시던 엄마 생각을 한다. 아마, 그 물로 저녁을 했던 것 같다.

따뜻한 봄이 오면 개울가에서 몽둥이로 빨래를 두드리던 엄마, 밤이면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깎던 엄마, 나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와 늘 몸빼 차림으로 논과 밭에서 땀이 흥건했던 엄마...

나의 학창 시절 시절 새벽에 일어나 나와 형, 누나, 동생의 도시락 5~6개를 준비하신 엄마, 늘 머리에 무엇을 이고 다니신 엄마, 머리에 무엇을 이고도 나를 보면 손을 흔들며 웃어 주셨던 엄마...



엄마는 숙제의 달인이다. 평생을 숙제만 하셨다. 5남매를 키우는 숙제, 시부모님을 모시고, 치매이신 시아버님을 집으로 모셔와 병시중을 하셨고, 일찍이 홀로 되신 엄마의 엄마를 돌보시고...

나의 기억에 엄마가 화장품을 쓰시던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가 본인의 옷을 사셨던 기억도 거의 없다. 엄마가 엄마 본인을 위해 무엇을 하셨던 기억이 거의 없다.

평생을 남을 위한 숙제만 하셨다. 엄마에게 엄마 본인을 아끼고 위하는 숙제는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간의 모든 숙제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숙제로, 엄마의 숙명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엄마가 엄마 본인을 위한 삶을 조금이라도 살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56살이 된 이제야 하고 있다. 슬픔이고 아픔이다. 나 같은 아들을 둔 엄마, 엄마는 평생을 외롭게 사신 것이 맞다.


엄마 포옹 유아 옆에 해변 어버이날 인용구.png

어제는 누워계신 엄마 손을 보았다. 그 손으로 눈 오고 추운 날 물동이를 이고, 그 손으로 몽둥이를 두드리며 냇가에서 빨래를 하셨고, 그 손으로 모내기를 하셨고 볏단을 쌓고 추수를 하셨다. 그 거친 손으로 우리 5남매를 키우셨다. 주무시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아 보았다. 돌덩이처럼 거칠고 딱딱했다. 엄마의 삶은 엄마의 손처럼 무겁고 거칠었을 것이다. 평생을 무거운 숙제로 살아온 삶이기에...


엄마손2.png


한평생을 희생의 숙제만 하셨던 엄마는 행복했을까?


엄마 집을 나서며 기도했다. “엄마,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그 삶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엄마의 그 희생으로 우리 가족은 행복했습니다. 엄마, 엄마 다음 생은 숙제 없는, 축제만 있는 인생이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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