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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했을까?(13)
엄마와 엄마 딸
by
메멘토 모리
Feb 27. 2025
“남형아, 오늘 엄마 집에 갔는데 엄마는 나만 보면 이년 저년 하면서 불평불만을 따발총처럼 쏟아 내, 잔소리 대마왕이고 두유도 싼 것 사 왔다고 막 뭐라 하는 것 있지? 어휴, 엄마는 내가 만만한가 봐”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퍼진다. 나는 안다. 엄마가 누나를 얼마나 편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지.
엄마는 큰 형을 제일 좋아한다. 맏이니 당연하리라. 큰 형은 공부도 잘했고,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어긴 적이 없다. 한마디로 모범생이다. 형수님도 시부모님을 끔찍이도 모신다.
엄마가 제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엄마 딸인 누나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딸이 제일 편하다고 한다. 우리 엄마도 딸이 제일 편한 것 같다.
올해 환갑인 누나는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형편으로 지방의 국립대학을 나와 오랫동안 학원을 했다. 대학교 다닐 때 늘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이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았다. 수학을 잘했던 누나는 보습학원을 했는데 학원운영이 잘 되어 아버지 봉급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렸다.
누나는 우리 집의 버팀목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보다 누나에게 용돈 받든 것이 더 쉬웠다. 누나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좋고 맛난 음식도 자주 사주셨다. 그런 딸이 엄마 눈에는 얼마나 예뻤을까?
지금도 누나 결혼식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엄마가 누나 방문을 열고 한참이나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세상에서 엄마랑 가장 친한 친구가 집을 떠난 것이다. 엄마는 허전한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엄마는 말이 없으셨다.
엄마가 없을 때 누나는 동생들의 도시락을 챙겼고, 할아버지를 살뜰히 보살폈다. 누나는 나에게 또 다른 엄마였고, 엄마는 그런 딸을 얼마나 믿고 의지했을까?
엄마는 농사일로 늘 피곤하셨고, 그 피곤함으로 주무실 때 잠꼬대를 하시곤 하셨다. 그 잠꼬대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누나 이름이었다. 엄마는 꿈에서도 엄마 딸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신 것 같다.
누나가 시집을 가고 난 후 한동안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나도 그랬는데 늘 누나를 믿고 의지한 엄마는 얼마나 허전했을까? 그때 문뜩, 5남매 중 딸이 둘이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엄마가 몸져누워 있을 때 엄마의 건강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곁에 계신 아버지, 누나, 이모였다. 나도, 형도, 동생들도 엄마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마음뿐이다.
엄마에게는 친구가 없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셨기에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엄마가 친구를 만나러 가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많이 외로우셨을 엄마. 엄마에게 친구는 딱 두 사람이었다. 딸과 여동생...
엄마가 서울에 계신 이모와 통화할 때 나누는 대화를 보면 친구 같다.
엄마가 이따금씩 나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남형아 누나 같은 사람이 없다. 누나가 막내 동생 업어주며 나 대신 키워줬다. 누나에게 잘해라”
명절에 누나는 매형과 조카들을 데리고 엄마 집을 찾는다. 엄마는 엄마 딸에게 “이거 해 와라, 저거 만들어 와라, 이것은 왜 맛이 없냐? 네가 사 온 과일은 단 맛이 덜하다. 싼 것을 사 와서 그런 것 아니냐, 비싼 것 사와라” 옆에 있는 나와 매형은 계속 웃는다.
엄마는 그동안 입속에 저장해 놓고 참아 왔던 말들을 쏟아 내신다. 누나는 그 말을 다 받아 준다. 엄마가 몸져눕기 전에는 누나가 엄마집에서 자고 가는 날은 그 이야기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그것이 사랑임을 안다.
이제 엄마는 엄마 딸에게 말을 쏟아 낼 기력이 없으시다. 엄마는 엄마 딸에게 그동안 내 푸념을 들어주느라 얼마나 고마웠는지 눈빛으로 이야기하신다. 아주 오래전 친구처럼
엄마는 엄마 딸로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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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을 공부했습니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에 관심있습니다. 나를 위해 매일 글을 씁니다. 삶의 모토는 살며.사랑하며.배우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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