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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May 26. 2021

원망에 대하여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읽다가

예상치 못한 휴가가 생겼다.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대대적인 책 정리를 했다. 촘촘히 북 다트가 꽂혀 있는 책이 있길래 정리를 마치고 책을 펼쳐 들었다. 책 제목은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책은 총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3부 엄마의 믿음 편'에서 이 글과 같은 제목인 '원망에 대하여'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한테서 받은 상처를 내 나이 사십, 어머니 나이 일흔이 넘어서 그것도 책이라는 형태로 평생 처음 고백을 했다. 그런데 그걸 읽은신 어머니는 내가 너한테 그렇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무슨 해결이 나겠는가. 그때는 기가 막혔지만, 다만 그러면서 엄마는 말하셨다. 내가 그랬다면 미안하다고. 엄마가 열세 식구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정신 없이 사느라 너희들을 올바로 가르칠 줄 몰랐다고. 내가 더 무슨 말을 할까.

-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얼마 전 엄마는 내 나이를 세어보더니 '내가 네 나이 때는 정말 바빴어.'라고 말했다. 기억 속에 엄마가 내 나이였던 시절. 부모님은 정말 바빴다. 특히 엄마는 일, 육아, 살림을 저글링 하듯 살았다. 돌봐줄 가족이 없었기에 육아는 엄마의 몫이었다.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날을 사느라 내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도 있었겠다.

저 문장에서 읽기는 그 마음을 헤아려지는 나이가 됐다는 게 참 묘하다. 나는 나 하나도 내 뜻대로 안 돼서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내 부모님들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을까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이를 먹어서 좋은 일은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나서 이해하지 못했던 일을 이해하게 되다는 것이다. 평생 내 부모는 나보다 나이를 먼저 먹어 그 뒤를 쫓아가는 모습이 되겠지만...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설사 그 모든 게 엄마 탓이 맞다고 해도, 이 긴 인생에서 내가 언제까지 누굴 탓하고만 살아야 할까.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나를 방치한다면 그건 결국 누구의 손해일까. 그때부터 나는 내 상처를 조금씩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상처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 그걸 준 사람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책임도 되더라. 누구 때문이든 결국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니까, 내게는 누가 주었든 그 상처를 딛고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은 죄책감을 덜기 쉽다. 탓을 하면 그만 이니까. 특히나 어린날의 상처는 어린 나와 어른인 부모의 관계 이기에 원망하는 일이 타당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서른이 넘고 인생을 살아보니 내가 그렇듯 누구나 주어진 인생을 잘 살아내려고 분투하며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충분지 못하다고 자책하는 어른이 된다는 사실도. 이리저리 치이다 24시간 하루를 살아 내는 일이 어떨 때는 너무 고단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래서 어릴 적 부모가 내게 준 상처를 어른이 된 후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살아보니 힘이 부치는 날은 제정신을 놓아 버리고 싶고 매일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게 느껴지는 날 있다.

산 같고 늘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부모도 그저 내 나이에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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