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혜 May 05. 2020

[영화 리뷰#4, 힐링 영화] 리틀 포레스트 ep.1

잠시 쉬어가도 돼. 아주심기. 나만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는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포근해지며 부러운,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갖고 싶어 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매년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유독 1월부터 지금까지 여유가 없던 날들만 이어지는 해가 있었을까?(물론, 지난날들도 분명 난 힘들다고 징징거렸을 테지만)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던 영화.


 나만의 작은 힐링 영화. 이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하여 다시금 겨울을 지나 봄에 끝이 난다.


 왜 겨울이고, 봄일까? 지금이야 사계절이 사라져 간다 하지만 나 어릴 적만 해도 사계절이 뚜렷했다.(그렇다고 내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 각자의 매력들은 정말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고 소중하지만 특히나 나는 겨울과 봄을 애정 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난 후의 아침 고요함도 좋았고, 하얀 눈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도 좋았으며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봄은 색들로 물들어가는 그 순간과 저마다의 것들이 힘든 겨울을 지나 피어나는 것도 참 좋았다.


 그리고 겨울은 춥다. 봄은 따스하고 생동적이며 시작이다.


은숙, 혜원, 재하_리틀포레스트


 겨울
배가 고파서 내려왔어

 영화 속 혜원은 임용을 준비하다 떨어지고, 어릴 적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함께 시험을 준비했던 남자 친구는 합격하였으나 자신만 떨어진 상황에서 지쳐버린 혜원은 왜 돌아왔냐 묻는 친구 은숙에게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라고 답한다.


 물론 성격 상 지고 못살며, 자존심 강한 성격 탓에 스스로가 못마땅하고 억울하여 내려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인스턴트는 자신의 허기를 달래주지 못했다 하는 혜원은 오자마자 한 일이 따뜻한 배춧국과 함께 밥을 지어먹는다. 어쩌면 편의점 도시락보다 반찬 수도 없고 더 별거 없을 수 있으나 배부르고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한다.


 정말 배가 고팠다는 듯이.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들, 같은 또래의 청년들만이 아닌 이미 이 시기를 살아왔을 사람들도 그 장면을 보고는 허기가 지고 배가 부르지 않았을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간단한 한 끼 였으나 어떤 다양한 반찬들보다 훨씬 따스했고 푸짐했다.


 마치 우리가 힘들고 나서 엄마 음식을 찾는 것처럼.


 그리고, 또 다른 어릴 적 동네 친구 재하가 데려 온 오구(강아지)는 아닌 듯, 혜원의 시골 생활에 큰 위안을 주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
 온기가 있는 생명은 의지가 되는 법

 온기. 서울에서도 혜원의 곁에는 친구도 남자 친구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굳이 '온기'라는 이름으로 혜원에게다가 온 오구는 어떤 존재였을까?


 모든 생명이라고 온기를 가지고 있나? 나는 누군가에게 온기가 되어 주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온기가 되어 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또 하나의 허기를 채워 준 것이 바로 오구이고 어릴 적 친구들이 주는 위로 아닌 위로였을 것이다.


 재하는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돌아와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배우고 정착하고자 한다. 그런 친구를 보며 혜원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돌아왔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골에서 매일 같이 매 끼니를 채워가며, 바쁘게 산다. 시골의 시간대로, 자연의 흐름대로.


 리틀 포레스트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하고 예쁜 음식들이 아닐까? 마치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한 끼를 소중히 만들어 먹는 혜원은 그 자체로도 힐링이었다.


 단순히 때운다는 느낌이 아닌 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그건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와의 추억을 담고서


땅 속 온기는 감자 싹을 품어 밖으로 피워낸다. '타이밍'이다.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보고 난 후 갑자기 사라진다. 편지만을 남겨 놓은 채. 어릴 적부터 둘이 살아왔던 혜원에게는 큰 충격과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레시피를 요리하며 혜원은 '엄마와의 대결'이라 생각한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엄마의 레시피와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렇게 혜원은 매일을 열심히 산다.


 그리고 엄마가 남겨 둔 편지 속 '메시지'를 읽고자 한다.


 봄이 되어 혜원이 한 일은 겨우내 차갑게 얼었던 땅 속에 감자를 심는 것. 땅 속 온기는 감자 싹을 품어 밖으로 피워낸다. 그리고 그 싹은 꽃이 되고 열매를 맺는다. 이게 '타이밍'이다. 그리고 '기다림'이다.


 마치, 차가운 현실 속 열심히 버티고 버텨 영양을 가득 품은 내 안에 무언가를 심고 타이밍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감자를 심는다. 그리고 그 건 아마 이 영화를 본, 그리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려 하는 모두가 기다리는 타이밍이겠지.

 

봄 파스타

 이 파스타를 보고 집에서도 여러 번 해 먹었다. 물론, 아무 꽃이나 따다 만들었다가는 배가 아플 테니 허브를 찾는 다던가 아님 집에 있는 꽃 몇 송이를 엄마 몰래 따가 살짝 올리기도 했다.


 암튼, 예쁜 것도 있었고 생각보다 만들기 쉬우면서도 있어 보이는 메뉴인 것도 있었으나 나에게 주는 일종의 힐링이었다. 한 끼를 먹어도 예쁘게 고생한 나에게 주는 상이라며

 

아카시아 튀김

 처음에는 잠시 뒤 서울로 다시 올라갈 거라며 했으나, 혜원은 겨울만을 보내기에는 아쉽다며 이 곳에서 봄을 맞이하고, 또 여름을 맞이한다. 그리고 각 계절을 온전히 느낀다.


여름
잡초는 마음의 걱정처럼 계속 자라난다.

 어릴 적 주말농장을 한 적 있다. 매 주말이면 가서 심어둔 토마토, 배추, 옥수수, 고구마, 등등을 돌보며 잡초를 뽑았다. 참 열심히도 뽑았으나 또 가면 잡초는 어느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제거해도 잡초는 계속 자란다.


 마음의 걱정도 그렇단다. 마치 잡초 저럼 제거해도 자라고 또 자란다.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까? 없다. 잡초를 제거하겠다고 약이라도 뿌리면 주변 것들까지 다 상하고 다치겠지.


 마음도 마찬가지다. 잡초를 제거하겠다고 약을 뿌리고, 그 밭을 괴롭히는 것처럼 걱정을 제거하겠다고 계속해서 괴롭힌다면 지치고 약해지고 건강했던 것들까지도 다 망가질 터다.


 건강하게 때론 자연의 섭리처럼 힘들기도 하고, 잡초가 자라며 양분을 뺏을 수도 있으나 꾸준히 보아주고 관리해준다면 누구보다 건강하게 자랄 거다.


 오히려 잡초를 뽑아대다 상처 입은 걸 발견하고 더 아껴줄 수도. 그럼 더 건강하게 자라겠지.


 잡초는 아무리 제거해도 계속 자랄 거고, 마음의 걱정 역시 잡초처럼 계속 자랄 거다.


 하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베테랑 농부처럼 때론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금 일궈내겠지.




 아직 가을과 겨울 그리고 다시금 봄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추운 겨울을 지나 씨를 뿌리고 영양을 준 땅에서 어떤 것이 자라고 수확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리뷰#3, 영화 속 심리] 인사이드 아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