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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Jun 24. 2023

기자가 빨래방을 차렸다고요?

김준용, 이상배 -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리뷰


미움은 쉽고 사랑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잠시만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면 누군가가 누구를 죽였다는 둥, 누가 누구에게 막말했다는 둥 미움이 뚝뚝 떨어지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미움이 사랑보다 쉽게 전파되는 게 가장 큰 이유일 테다.


사람 간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큰 고민 없이 소비되는 문화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나는 미담을 더 좋아한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 이야기 대신 익명의 독지가가 남몰래 선행을 했다는 뉴스 기사를 애써 찾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아직 우리 세상이 살만하다고 흡족해한다.


사람들이 살인, 강간 등 자극적인 강력범죄 이야기에 열광할수록 다소 투박하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따금 인류애를 저버리게 만드는 떠들썩한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래도 보통의 사람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숙명을 지닌 미디어가 해야 할 역할인 셈이다.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높은 책이다.

자칫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산복도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기자의 시선으로 차곡차곡 눌러 담았다.


이 책은 <부산일보> 콘텐츠 '산복빨래방'이 영업을 시작하게 되는 시점부터 문을 닫는 순간까지의 기록이다. 언론사에 다니는 기자가 왜 빨래방을 차리게 되었는지부터 장소 선정, 운영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등에 대해 썼다. 부산의 역사를 관통하는 호천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책 사이사이에 보석처럼 담겨 있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기자들의 시각이다.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이야기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나하나 다듬은 뒤 독자에게 선보인다.

그 속에서 저자들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는지 느낄 수 있다. 산복빨래방과 저널리즘의 관계에 대해 쓴 부분을 읽을 때면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전달되는 듯 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세상은 산복빨래방의 비효율을 칭찬했다.
그냥 산복도로에 사는 어머님, 아버님을 섭외해서 인터뷰하면 될 방식을 두고
굳이 빨래방을 차린 비효율에 박수를 보냈다. 
미리 주제를 정해 놓고 취재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보도의 주제를 정하고
한 번도 언론에 나온 적 없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었다.


저자들은 '산복빨래방'을 통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겸손을 보인다. 하지만 산복빨래방 영상 대신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들의 진정성이 느껴질 정도라면 그들이 받은 사랑은 결코 과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전파 속도가 빠른 미움이 효율적이라면 쉽게 묻히고 전달 속도가 더딘 사랑은 비효율적이다. 산복빨래방이 이렇게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사람들이 언론에 바라는 점과 이들의 진정성이 맞아떨어져서일지도 모른다. 

기성 언론이 갈등과 불화를 조장하는 미움의 언어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의 언어를 찾아 전달해달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덕분에 오늘도 하나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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