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닿아 Aug 11. 2022

생일 주간

서른에게 14

기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읽으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문장. 괜히 집 앞을 빙빙 돌며 산책하고 싶어지는, 깨끗하게 빤 운동화에 발을 집어넣는 기분 같은 단어의 집합체. 요즘의 내 글은 자꾸만 답 없는 물음과 다짐으로 흐른다. 불안과 우울을 꾹꾹 눌러낸 티가 나는 뻣뻣한 글. 그도 그럴 것이 감정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러 물기를 빼 있는 듯 없는 듯한 모습으로 두려고 애를 썼다. 그냥 놓아두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몸집이 불어난 마음에 먹힐 것만 같았다. 무력하면 잠을 자는 습관은 평일 오전을 뒤덮었다. 피로로 인해 일어나기 힘든 날은 별로 없었다. 알람을 끄고 더 자는 일을 택한 것이다. 잠에 빠져 순식간에 20분씩을 축내는 오전은 한심하면서도 달콤하다. 8시부터 울리는 알람을 뒤로하고 열 시쯤 눈을 뜬다. 그마저도 매일 오전에 도착하는 뉴스레터를 누워서 읽다 졸다가를 반복하다 11시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생일을 맞아 위시리스트를 채우는 일은 재작년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조금은 유난스럽고 부담스럽게 느껴질까 싶어 하지 않았는데, 이왕 같은 금액대라면 필요한 선물을 받아 요긴하게  쓰는 것이 선물을 주는 이도 받는 이에게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역시 생일인 지인이 위시리스트를 차곡차곡 채워둔 사람을 보면 반갑다.) 이번 생일에는 유독 생필품이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때맞춰 치약 칫솔이 떨어지고, 샴푸와 컨디셔너도 바닥을 보였다. 장마철이 한차례 지나고부터 묘하게 퀴퀴해진  냄새를 가꾸고 싶었고,   용도로는 정작    적이 없는 흔들의자에 옷가지들이 걸려있는 모습을 그만 보고 싶었다. 특히 책상과 의자가 필요했다. 집에 있는 앉은뱅이 책상에서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허리가 쉽게 아팠고, 무엇보다 옆에 있는 침대로 올라가기가 너무 쉬웠다. 그러다 보면  낮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일터는 늦은 오후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오전 오후 시간을  식대로 부지런히 보낼  있다. 촬영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문제는  시간들이 너무 간헐적으로 허락된다는 . 대부분은 겨우 일어나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노트북을  채로  있다가 식곤증을  이겨 침대로 올라간다. 그렇게  시간 즈음 졸다보면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걸어갈 때는 사십 분쯤 여유를 두고 움직였는데, 요즘은 날이 맑으면 따릉이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 일어날  있다. 어쨌든 하려던 말이 이게 아니지, 그래서 자세를 잡고 앉아  일을 해낼 책상과 의자가 필요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만나 벌써 10 지기가  친구 셋은 생일이 8월에 나란히 모여 있다. 매년 8월이 되면 셋의 생일을 한꺼번에 챙기는 것이 어떤 의례처럼 되었다. 올해는 가격대를 정해 서로 갖고 싶은 것의 링크를 대화방에 하나씩 올리면 나머지 둘이 그것을 함께 사주기로 했다. 나는 제법 괜찮아 보이는 접이식 책상을 골랐다. 조립을 처음부터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고. 도착한 상판들을 힘겹게 옮기고 설명서를 읽는데 웃음이 실없이 배어 나오는 거지.


하지만 6년 차 자취생은 강했다.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아흔 개가 넘는 나사를 드라이버로 낑낑대며 조립했다. 동봉된 드라이버가 너무 작아서 힘을 못쓰길래 서랍장을 뒤적였더니 조금은 큰 드라이버가 나왔다. 전동 드라이버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해낸 게 어디야. 오른손 정중앙에는 조그만 물집이 잡혔다. (영광의 상처..)


오늘은 강남으로 면접을 보러 다녀왔다. 몇 차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고치느라 진이 빠졌는지 면접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섰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예상 질문들에 대한 답을 피드백받고, 하고 싶은 말을 키워딩하여 내내 읽었다. 꽤나 긴장하며 갔는데 생각보다 인터뷰가 도란도란하게 진행이 되어서 재밌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즐거워도 면접은 면접인 것을 잊고서 또 너무 하하호호하고 온 것인가 싶어서 뒤늦게 걱정도 일지만, 이미 지나간 일. 후련함이 더 크다. 파트타임이 아닌 입사의 개념으로 일을 하는 것은 빵집에서 매니저 일을 한 것 이후로 두 번째다. 지치지 않고 하다 보면 무언가 되어 있겠지, 하는 낙관으로 좋아하는 일을 쌓아왔다. 덕분에 즐거운 순간이 많았지만, 막상 어엿한 프리랜서를 하자니 수익이나 방향성 앞에서는 막연함부터 올라오는 것이 문제였다. 우선순위를 크게 두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지내왔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조금 더 뾰족하고 선명한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프리랜서는 나중에 해도 괜찮으니, 우선 '커리어'랄 만한 것을 만들어야 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콘텐츠 삼아 수익을 내고 있는 F&B 브랜드. 맥주와 와인을 큐레이션하는 바틀샵 및 그로서리 스토어라 관심사에도 알맞고, 그간 진행해온 파트타임의 경험으로 조금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왠지 붙을 수 있을 것 같은 거지. 면접 결과가 빨리 나오면 좋겠다. 기대에서 피어나는 미래를 그리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위태롭다. 가슴 정중앙에 근육이 온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기분. 간질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속이 갑갑해서 얼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어진다. 긴장도 모쪼록 즐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내가 즐길 수 있는 삶의 긴장은 아직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것뿐이다. 언제 어른이 되나? 나는 아직 애기인데. 왜 내 친구는 벌써 결혼을 했나? 사실 영영 어른이 아닌 척 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면접 결과가 나왔다. 뭐야, 생일선물인가 봐.


매거진의 이전글 differ's self Q&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