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레아 Jan 26. 2019

낙엽 다섯,
따뜻하게 반짝이는 도시 (2)

우리가 바라던 빛과 우리가 발하는 빛


오로라를 보고 싶었어.


우리는 작은 차 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푸른빛이 하늘 가득 차오르길 기다렸지.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시작한 에리카,

십 년간 피디라는 직업으로 살아왔지만 

새로운 걸 하고 싶어서 떠나온 아키짱,

상처를 극복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은 나.


끔뻑 끔뻑

끔뻑 끔뻑


우리는 별과 눈을 맞추며 

아직은 밝히지 못한 까만 밤을 헤매고 있었어.


저 먼 행성에서 지구의 반짝임을 본다면 그건 우리일 거야.

우리의 반짝이는 꿈.


- 올해 가장 추웠던 날, 가장 추웠던 곳에서





기필코 오로라를 보리라는 다짐으로 투어버스에 올랐다.


오로라를 왜 그토록 보고 싶었을까, 아마 오로라가 가진 특별함에 닿고 싶었던 것 같다. 살아오면서 마주친 적 없는 신비로운 것을 마주한다면, 내게 특별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힘을 주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마치 마술 같은 광경이 내게 마술을 부려줄 것처럼.


한참을 가던 투어 버스는 이곳이 국립공원이라며 내리라고 했다. 날이 좋지 않아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며, 바로 오로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을 본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하늘 가득히 수놓은 별’이라는 표현이 이때를 위해 존재하는 말 같았다. 아니, ‘하늘 가득히’보다 ‘세상 가득히’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별 하나하나가 낚싯줄에 달려 저 멀리서부터 바로 눈앞까지 빈틈없이 대롱거렸다. 몇 발짝 더 걸어가면 손에 닿을 것 같이 아주 크고 가까운 별. ‘별은 살아있는 존재구나. 별은 살아 있는 거였어.’하고 생각했다. 크고 선명하게 아롱거리며 자신을 발하는 존재. 너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워서 혹시 아이슬란드 정부가 관광상품으로 달아 놓은 엘이디 전구는 아닐까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땅별. 지구의 다른 이름인 ‘땅별’이 마음 깊숙이 공감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무수히 많은 별, 그 아래, 건물도 없이, 해야 하는 일도,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없이, 가치관이나 지식, 돈, 그런 복잡한 것들은 다 먼지가 된 채로, 단지 ‘땅’을 가진 존재로서 다른 땅을 대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땅별이구나… 그 이름 참 좋다.’ 하고 미소 지었다. 나 역시 수많은 별들 중 하나, 그 별 하나 안의 무수한 존재들 중 작은 하나라는 생각에 초연해졌다.


두 시간째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인생에 그렇게 대책 없이 추위에 내몰렸던 순간이 있을까. 각오하고 옷을 네다섯 겹 껴입고 털이 잔뜩 달린 부츠를 신고 갔는데도 차가운 공기가 비웃듯 몸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발은 꽁꽁 얼어 아플 지경이었다. 이러다 발가락이 갑자기 뚝! 끊어지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끊어지면 진짜 웃기겠다.’며  실실 댔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 차리자. 다음에 오로라를 보러 온다면 기모 양말을 다섯 겹 신고 오리라. 다행히도 바람을 피할 작은 건물이 있어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며 오로라를 기다렸다. 혹시 놓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한 시간이 지나자, ‘놓치면 어쩔 수 없지, 뭐.’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일제히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기다린 지 두 시간 십 분쯤이었다. 나왔다! 초록빛이 희미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티비나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형광으로 크게, 밝게 빛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겹의 초록이 밤의 지휘자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하늘에 그려진 별 하나하나를 음표 삼아 연주를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나올 것 같았다. 한없이 맑고 투명한 선율이.


이때를 놓칠 세라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고 움직이던 셔터가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는 몇 배나 게으르게 움직였다. 찰...... 칵. 5초쯤 걸렸을까. 뷰파인더에는 눈 앞에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밤이 기록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건 노출이 길었던 탓인지 사진 속 오로라는 제법 인터넷에서 보던 것에 준하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빛이 쌓이고 쌓인 선명한 초록. 웃음이 났다. 그토록 보고 싶었고 기대했던 오로라는 사실 빛을 담는 장치를 통해 아름다움이 배가된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적당한 환상과 적당한 진실 앞에서 웃음이 났다. 


밤은 더욱 깊었고 별은 더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도시는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큰 얼음덩어리로 만들어진 세상도, 오로라가 휘황찬란하게 하늘을 덮는 환상적인 곳도 아니었다. 흔해서 환호받지 못 하지만 숨 막히게 아름다운 별들이 하늘 가득 흐르는 곳. 그리고, 흔한 우리 존재들이 꿈을 꾸고, 따뜻하게 사랑하며 별처럼 반짝이는 곳. 그것이 내가 만난 아이슬란드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낙엽 다섯, 따뜻하게 반짝이는 도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