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레아 Jan 13. 2019

낙엽 하나,
느리게 살아도 좋다 (2)

아이들에게 배운 것


그리스 작은 섬의 아이들은 어떤 반짝임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목소리와 어떤 표정으로 오늘을 이야기할까. 아침 일찍 일일교사가 되기 위해 학교로 향하며 아이들을 만날 기대로 잔뜩 들떴다. 어제저녁 카페에서 늦게까지 잡담을 나누던 말괄량이 비키는 어느새 선생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라보스타모스 학교 앞에 내리자 눈 앞에 생각지도 못 한 풍경이 펼쳐졌다. 학교 주변엔 좁은 도로 대신 드넓은 바다가 있고, 빽빽한 건물들 대신 다듬어지지 않은 초록 언덕이 있었다. 섬이니까 자연스러운 것일 텐데도 내가 알고 있던 학교의 풍경과 너무 달라 한동안 뛰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문득 이런 풍경을 가진 곳에 공부 스트레스라는 말이 존재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학교에 들어서니 마치 초임교사가 된 것처럼 잔뜩 긴장이 되었다. 첫 번째 수업은 비키의 컴퓨터 수업이라고 했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그녀를 따라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랐다.



1교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첫 시간, 낯선 아이들과 인사했다. 한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가진 삶의 작은 조각을 나누었다. 다르게 생긴 세계가 만나 작은 접점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기꺼이 내 세계를 맞아 주었다. 


‘안녕 [An Nyoung] = Hello’라고 칠판에 또박또박 적었다. 마치 한국 대표라도 된 듯 신중히 분필을 움직였다.


“안 니영, 안니엉“


아이들은 내 말을 따라 병아리처럼 입모양을 만들며 한국말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발음이 제법 그럴 듯 해 괜스레 뿌듯해졌다. 여행을 다니며 그 지역의 인사와 생활방식을 배워만 왔지 내 언어를 가르치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이 '안녕' 하는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소개를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다섯 학생 중 두 명이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데, 그중 한 명은 어젯밤 카페에서 비키가 자신의 학생이라고 소개했던 아이였다. 사실 그때도 적잖이 놀랬다. 새벽 늦게까지 노는 라이프스타일이 학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에! 다른 한 명은 어제저녁 출출해서 들린 피자집에서 일하던 청년이었다. 당연히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아르바이트생이겠거니 했지만 알고 보니 피자집주인의 아들이었다. 


‘오전에는 학교를 가고, 다녀와서는 아빠를 도와 홀에서 손님을 맞는구나.’


불과 몇 마디에 지나지 않는 인사였지만, 그것 만으로도 아이들의 일상이 그려지며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내게도 이런저런 질문공세가 퍼부어졌다. 이곳에 왜 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나라를 다녔는지,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아이들은 섬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인지 나를 저 멀리 별에서 나타난 외계인처럼 신기해했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아이들로 옮겨갔다. 나는 예능의 게스트가 된 듯, 흥미로울 만한 얘기를 쭉쭉 뽑아냈다. 학교를 마치고 또 학원을 가는 것이랄지, 교복을 입고 다니는 문화 같은 것을 소개했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생활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칠판에 교복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성을 냈다. 

아이들은 액정이 큰 핸드폰을 돌려보며 흥미로워하기도 했다. 이곳은 육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섬이라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된 지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한국인이 이 네모를 가지고 있고, 네모 너머에는 언제나 접할 수 있는 다채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컴퓨터 수업이었지만 이 시간만큼은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비키는 계획돼 있던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먼 나라 한국의 신선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더 의미 있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의 방해를 재미있는 이벤트로 받아들여 주어 기뻤다. 아이들도 앞다투어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다. 잡담인 듯도 하고, 토론인 듯도 한, 모두가 함께 버무려 만드는 수업. 

아이들은 아직은 낯설지만 적극적인 몸짓으로 다가왔다. 어떤 경계심도 없는 투명한 눈빛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한없이 넓은 그들의 눈 안에 담겨있는 세계를 더 알고 싶어 졌다.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걸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지나는 일상을 떠올리며. 그러다 문득 계단 앞에 멈춰 섰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엷게 미소를 뗬다. 창문 밖으로는 바다가 일상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학교와 바다, 그 옆의 절벽. 한 번도 머릿속에 함께 그려본 적 없는 이질적인 조합들이 콜라주처럼 한 캔버스에 그려져 있었다. 이 거짓말 같은 풍경을 매일 보는 아이들. 아이들의 네모 너머에는 진짜 세상이 있었다.




2교시, 다른 것과 같은 것


작은 학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선생님이 지금껏 만들어온 문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때로 우리가 같음을, 때로는 다름을 환기시켰다. 그 때문에 당황도 했다가 신기해하기도 했다가 또 한바탕 웃게 되는 것이었다. 


2교시에는 진짜 선생님이 되었다. 7학년 영어수업의 보조 선생님으로 교단에 서보기로 한 것이었다. 유일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게 영어인지라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리라 마음먹었다. 내 역할은 아이들과 함께 다이얼로그를 읽는 것이었다. 지문은 책 앞부분에 단골처럼 나오는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처럼 서로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상대 아이는 조금 긴장한 채 남자의 대사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고, 나도 그 속도에 맞춰 여자의 대사를 읽어 나갔다.


“Give m a... 으잉?” 


지문을 읽어가던 나는 당황해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분명 처음 만난 사이인데 여자가 남자에게 ‘Give me a hug’라는 파격적인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수도 없이 읽었던 인사 다이얼로그였다. 당연히 첫 인사 다음에는 '취미가 뭐냐'와 같은 뻔한 레파토리가 나오기 마련인데 허그라니, 안아 달라고 하는 상황에 놀란 것이었다. 당황하는 내 모습에 교실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유럽에서는 'hug'라는게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자연스러운 것인데 내가 괜히 애정행위로 해석했다는 생각에 머쓱해졌다. 얼른 표정을 가다듬고 다음 대사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내 예상을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남자가 안아 주기를 거부했고, 그러자 여자가 갑자기 남자의 가슴을 만지는 돌발행동을 한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러지 말라!’며 소리를 쳤고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었다. 'hug'라는게 정말로 애정행위를 뜻했던 것이다.


지문을 다 읽자마자 헛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몇몇 아이들이 따라 웃었다. 아니, 이게 정녕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란 말인가? 점잖은 내용만 있는 한국의 교과서만 생각하다가 독특한 내용의 교과서를 보니 더없이 신선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문화충격 인가 보다. 작고 귀여운 문화충격. 덕분에 '교과서는 이렇다' 하는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게 되었다. 자유롭게 씌여진 스크립트가 본의 아니게 나의 지평을 넓혀 주었달까. 



친근함을 느낀 건지 함께 지문을 읽었던 아이가 수업 중에 장난을 걸어왔다. 오래전 중학교 수업시간에 다른 분단의 친구와 눈짓이랑 입모양으로 장난을 치던 것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기억에 장난기가 올라와 나도 선생님 몰래 장난을 쳤다. 짝꿍과 작당을 하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질 세라 나도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분명 보조 교사로 수업을 들어갔는데, 십 분만에 선생님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말썽꾸러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교사로서는 제대로 실격이었다. 하, 어쩌겠는가. 수업시간엔 장난치며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 인걸!


무언가는 다르고, 무언가는 같다. 

교과서가 작은 충격을 안겨주었듯 이곳의 문화와 사고방식은 분명 나와 거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거기에 똑같이 있었다.



3교시, 기쁘게 추억하기


빈 복도를 걷다 문이 열린 교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급하게 우르르 교실을 나간 아이들, 그 증거라도 되는 듯 흐트러져 있는 의자. 제 할 일을 마친 학교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애잔함이 느껴졌다. 나무와 쇠로 만들어진 말끔한 책걸상. 아무 멋도 내지 않고 오직 기능에 충실한 탓에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보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몸에 꼭 맞는 몇 뼘 안 되는 의자 위에 앉았다.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훑어본다. 그러다 모퉁이에 그리스어로 써진 낙서를 발견했다. 문득 친구가 나를 놀리겠다고 열 개가 넘는 별명을 만들어 내 책상에 써 두었던 생각이 났다. 도시락을 까먹던 기억, 시험날 책상에 몰래 메모를 해놓던 기억까지. 여기서 만들어졌던 많은 기억이 십몇 년의 시간의 산을 넘고 넘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때는 뭣도 모른 채 주어진 날들에 참 충실했는데. 꿈꾸고, 배우고, 웃고, 울고, 싸우고, 사랑했던, 돌이켜보니 작았던 세계, 그때는 아주아주 컸던 교실. 십 년이 또 지나고 나면 내가 보던 세상이 작았노라고, 그때 많이 자랐노라고, 웃으며 지금을 떠올릴까.




4교시, 아이와 꿈을 나누기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손에 연습장 하나를 든 채로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소년. 그 소년의 안경 너머에는 맑지만 고집 있는, 푸르지만 짙은 반짝임이 있었다. 그것은 꿈을 담은 눈빛이었다.


열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동그란 안경을 낀 남자아이였다. 학생의 선생님은 소년이 나에게 그림 하나를 보여주고 싶어서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수줍게 연습장을 내밀었다. 연습장 위에는 연필로 그려진 검이 있었다. 판타지 만화에서 나올 법한 화려하고,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진 검. 구불구불하면서도 비대칭적인 선들에서 독창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욱 눈길이 간 건 선 주위의 흔적들이었다. 종이가 거무튀튀해질 정도로 수없이 지우기를 반복했는지 몇십 개의 옅은 선들이 그림 주변의 종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도를 한 걸까. 연필과 지우개가 번갈아 지난 길 위로, 열중하는 소년의 모습과 마음에 담긴 꿈들이 겹쳐 보였다. 


선생님은 평소에 말을 잘하지 않는 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른 말 없이 이것만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그림을 내민 소년. 소년은 어떤 감정으로 나한테 온 걸까? 이방인 선생님에게 그림 그리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아니면 마음에 있는 뜨거운 무언가를 분출할 곳이 필요했을까. 


“네가 그린 거야? 멋지다! 뭔가 보고 그린 거야?” 


이것저것 묻자, 소년은 수줍은 듯 스스로 생각해서 그린 거라고 답했다. 소년은 선생님의 통역을 빌어 조금씩 입을 열었다. 입술 끝에는 떨림이 있지만, 가슴속에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의지나 열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게 귀엽고 예뻐 미간이 간질간질해졌다. 우리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좋아하는 마음’을 나눴다. 


참 고맙고 예뻤다. 나에게 꺼내어 보여준 것이. 보여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순수한 욕심을 부려준 것이. 소년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 속에서도 무언가가 발화되어 뜨겁게 지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묵직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마음에 품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소년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손을 잡고 그림에 대한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것뿐이었지만, 그는 예쁜 눈동자와 수줍은 웃음, 온기 있는 손과 꿈꾸는 마음, 소중한 그림과 용기. 그 모든 걸 가지고 먼저 다가와 주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그 안에 있는 꽃을 만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낙엽 하나, 느리게 살아도 좋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