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일지: 무의식적인 반응을 확인하다
아는 분 중에 운전을 힘들어해서 운전을 안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변호사를 하면서 워낙 충격적인 사건 사고를 많이 맡다보니운전할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게 느껴지신대요.
오늘은 제가 운전하면서 길을 가는데 그 분이 걸어가고 있는 걸 봤어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었어요.사람이 산책을 하거나 걸어 갈만한 길은 아니었지요. '오늘 운전 안 하시고 걸어가시는구나. 어차피 내가 가는 길이니까 태워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고 그 분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었어요.
"**님, 어디 가세요?"
"아 교도쇼요. 바로 앞이라 걸어 가려구요"
"그렇군요. 네"
대화가 끝나고 돌아서서 저는 좀 이상했습니다. 주고 받은 말만 보면 저는 안부차 인사하려고 차 잠깐 세운 사람이 됐거든요.
대화를 먼저 걸었던 저의 의도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도움이 필요한지 제대로 여쭤보지도 않았거든요. '바로 앞이니까 걸어가려구요.' 라는 말을 '도움이 필요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제 친절한 마음을 미리 접어버린 겁니다. "저 어차피 가는 길이라 태워드리고 싶은데 괜찮으면 타실래요?" 정확히 물어본 후, '걸어갈게요. 괜찮아요' 라는 거절을 듣고 제 마음을 접어도 늦지 않은데 말이지요. 똥을 누려다가 방구만 꼈는데도 스스로 만족해 버렸달까요? 그 분을 돕고 싶은 본심이 있는데도, 그걸 끝까지 관철하지 못해서 대화가 끝나고 나서도 찝찝했어요.
관계일지를 쓰면서 얻는 효과
우리는 순식간에 일어난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적인 선택보다는 무의식적인 반응에 가깝지요. 주고 받은 대화, 자신의 말을 찬찬히 살펴보면 무의식적이고 순식간에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짧은 대화를 통해 저를 이해하게 된 점은 '상대의 반응에 바로 위축되고 숨어버리기'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반면에 상대도 누군가를 걱정끼치고 부담을 주고 싶어하지 않는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무심코 지나쳤던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고 돌아보기 위해 일기를 쓰구요. 배우, 가수, 개그맨들은 자신의 영상을 수백번 돌려봅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마찬가지로 대화를 개선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장면을 슬로우 비디오처럼 돌려보기 위해서 관계일지를 추천 드리고 있습니다.
관계 일지의 목적은 자책이나 반성하려는 목적은 아닙니다. 대화법을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스스로 셀프 피드백이 가능합니다. 이걸 하고 나면 보이는게 있고 혼자서도 느껴지는 바가 있습니다. 오로지 알아차림이 목적입니다.
관계일지 쓰는 형식
누구나 시간만 내면 할 수 있는 간단한 형식을 소개해 드립니다.
상황 간단히 3줄 : 간단하면 간단할 수록 좋습니다.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간단히 기록합니다.
축어록 3~4번 : 상대와 나누었던 세 네번의 대화를 적습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느낀점 : 소감으로 어떤 것도 좋습니다. 반성보다는 새로운 배움을 선택하기를 권장합니다.
대화법은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바라보는 알아차림이며, 사람을 보는 관점과 태도입니다. 관계일지 인증방에는 지금 50명의 넘는 사람들이 글을 모여 자신의 관계일지를 쓰고 있습니다. 서로의 대화를 보며 읽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더라구요. 매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자신을 포함한 사람을 사랑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