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소영 Feb 05. 2021

<場글Book> 넌 원치 않은 널 위한 소리

그림책 < 마음 수영/하수정 글그림  >

'마음 쓸 꼰대' 맘이 전하는 마음의 이야기


'생각할 꼰대' 맘이 나누는 책 이야기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 눈앞에 뻔히 보이는 괴로움을 감수하라는 조언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신중을 기하기 위해 걱정만 앞세우는 건 인간의 노력에 대한 모독이며 신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 아닌가...어려서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강요받는 그녀가 나이들면서 로맨스를 배웠으니, 부자연스러운 시작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을까.

                                       -제인 오스틴의 <설득>中




"오랜만에 다 같이 밥 먹는데, 대화도 좀 하고 그러면 참 좋잖아. 근데 승연이는 말도 한마디 안 하고 승제는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에이 참, 엄마! 아들들 다 그래요."     


많지도 않은 네 식구!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몫을 하느라 그동안은 다 함께 모여 밥 한 끼 먹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왠지 어색하고 편치 않은 기분이 드는 건.

나 혼자 또 과민했던 건가 싶어 아이들에게 속내를 꺼내 본다.     

가만히 내 얘길 듣던 큰 아이가 꺼낸 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 가족 대화하는 거 가만 보면 다들 너무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대화를 가장한 일방적인 조언과 충고.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얘긴 건 알겠는데, 듣다 보면 괜히 짜증 나고 와 닿지도 않는단다.

어떤 얘기로 시작해도 기승전-충고!

친구들 얘기를 하다가도 '걔는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못하냐'는 식의 뉘앙스가 느껴진다고.

그러니 입을 다물거나 날을 세우거나. 어떤 선택을 하든 듣는 쪽도 말하는 쪽도 결국 모두 삐딱선을 탈 수밖에 없었단 얘기다.     


‘유키즈 온 더 블록’( tvN 프로그램)에서 충고와 잔소리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한 초등학생이 했던 찰떡같은 명언? 이 떠올랐다.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충고를 밥 먹듯 하는 어른들의 뒤통수를 크게 한 방 친 말.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다 너를 위해 하는 말’, ‘너 잘되라고 하는 말’ 이었 텐데

마음에 닿지 않던 것이다.  받을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던져진  많은 말은 잔소리든 충고든 기분만 나쁠 뿐었다. 


걱정스러운 마음 앞섰던 것 같다.

이 말을 지금 해주지 않으면 혹시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해서.

행여나 낭패를 보지 않을까 해서.

난 엄마니까.

먼저 살아본 어른으로서 미리 알려주면 내가 겪었던 힘든 일들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를 위한 말이라고 뱉은 그 말은 사실 참을성 없이 튀어나오는 나의 앞선 걱정일 뿐이었다.      

내가 지금 우리 아이만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도 어른들의 말이 어지간히 듣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때론 하루에도 몇 차례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가 귀찮아 받지 않았던 적도 있고, 받더라도 무뚝뚝하고 쌀쌀맞게 받 끊어버리곤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힘들까 봐

걱정하시는 말씀이 다 나를 위한 말인데도 썩 달갑지 않았다.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난 미리 걱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최대한 모른 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잘 알아서 할게요.’하고 더 이상의 말 차단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걸 아는 사람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처럼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그렇게 안 살아야지.’ 하면서도 늙은 엄마의 모습에서 자주 나를 발견한다. 아니 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아무튼 요즘은 늙은 부모의 마음도 조금은 알겠고,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자식의 마음도 조금은 헤아려진다. 그럴수록 말의 자리를 가려야 한다는 건 알지만 쉽지가 않다.          



 훌쩍 커버린 딸아이와 부쩍 늙어버린 엄마가 자신의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

      

엄마의 얼굴을 이제야 봤어.
많이 외로워 보여.     
네 얼굴을 이제야 봤어.
언제 저렇게 커버린 걸까.    


  하수정 작가의 그림책 <마음 수영>의 일부이다. 수영장 투명한 물빛의 변화로 중년의 엄마와 사춘기 딸의 미세한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지금의 내 마음과 맞닿아 있어 한 장 한 장 공감하며 보았던 그림책이다. 작가가 엄마에게 바치는 이 그림책은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게 한다.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자녀가 있는 집, 생각만 해도 아찔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긴장감. 언제 어디서 어떤 포인트에 터질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

나도 겪어봐서 안다. 둘째 아이가 찐하게 사춘기를 보낼 그 시기 나도 예비 갱년기였으니까. 아이가 삐딱선을 탈 때마다 난 원치 않는 너를 위한 말들을 수시로 쏟아냈고, 아이는 더 강력하게 귀를 막고 입을 닫았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상 속에 잔뜩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지... 원치도 않는 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봤더니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더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게 돼.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봐.’

‘파이팅.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야.’     


  나도 듣기 싫어했던 많은 충고의 말들. 싫었던 기억은 저 멀리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린 걸까. 배운 대로, 들었던 대로 아이에게 그 싫었던 말을 또 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는 힘내라는 말, 파이팅하라는 말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듣기 싫다고 했다. 하긴 힘이 안 나는데 자꾸 힘을 내라니, 참 가혹한 말이긴 하다. 어쭙잖은 충고보단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고 곁에 있어주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주절주절 충고가 하고 싶어 입이 먼저 근질근질하니 참 고질병이다.


“내가 나란히 있을게. 겁이 날 때 손잡을 수 있도록.”          

 

그림책 <마음 수영 中>


무슨 많은 말이 필요할까. 잔소리든 충고든 지금은 들을 맘이 없는데. 조바심 나고 걱정이 돼도 앞서지 말자 다짐해 본다.

찾을 때, 잡아달라고 손 내밀 때, 그때 곁에 있어주면 되는 것이다.      

위를 헤아리고, 아래를 살피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 갖게 되길... 말의 자리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場글Book> 좋아하니까 닮아가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