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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Feb 14. 2021

<場글 Book>왜 울어?

그림책 <엄마, 우리는 왜 울어요?/프란핀타데라 글, 아나센 데르 그림>

'마음 쓸 꼰대' 맘이 전하는 마음의 이야기


'생각할 꼰대' 맘이 나누는 책 이야기





  TV 프로그램을 보면 패널들이 자신의 힘들었던 얘기를 하다가 울컥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남 우는 모습이 썩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공감하고 같이 눈물 흘렸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사람의 아픈 눈물을 는게 왠지 피해버린다.


  대신 아무 때고 내가 우는 게 문제다. 딱히 슬퍼서도, 억울해서도, 어디가 아파서도 아닌데... 그냥 드라마를 보다가, 운전을 하다가, 책을 보다가,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찔끔 나다. 절대 울만한 내용의 드라마도 아니고 , 울 타이밍도 아닌 상황에서 혼자 하고 눈물이 터지니, 혹시 벌써 갱년기인가.


어릴 때부터 까탈스럽고 유난스럽게 잘 울던 아이였다는 건 엄마한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나이에 새삼스레 예측 불가한 눈물바람은 좀 남세스럽다.

하루는 거실 바닥에 뒹굴대며 한가하게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훌쩍 거리는 소리가 나니 작은 아이가 빼꼼 내다보며 물었다.

"엄마 울어? 갑자기 왜 울어?"

"아니. 그냥 드라마 보다가..."

"뭔데... 슬픈 내용이야?"

"아니, 행복한 내용이야."


그랬다. 난 요즘 행복해도 운다. 행복하면 웃음이 나야 하는데 눈물이 먼저 쏟아진다. 이쯤에서 누군가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한 일이 무언지 물어본다면, 아쉽게도 눈물이 날만큼 딱히 뭐가 좋았던건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 나만의 지점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나는 것이라 정말 일례를 들려해도 기억이 잘 나 않는다.


  평생을 살면서 드러내 놓고 흘려도 좋을 울음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과 불행의 총량처럼 말이다.

말로 의사 표현이 안 되는 아기들 같은 경우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운다.

'배가 고프다.'

'기저귀가 축축하다.'

'아프다.'

'졸리다.'

'더 많은 사랑이 고프다.'

'관심이 필요하다.'


울음 속에 담긴 많은 감정을 온전히 이해해주고 해소해 줄 수 있는 믿음직한 대상이 있으니, 맘 놓고 눈물을 흘려도 좋을 나이. 그래서 부끄럽지 않을 그 나이 때 우리는 마음껏 눈물의  권리를 누렸었다.

  조금 크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참는 법을 배다. 혼자 감당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런데 간혹 술만 마시면 우는 사람들 있다. 혹시 마음속에  감당하지 못할 눈물이 고여있. 그래도 될 나이에 눈물의 권리를 맘껏 누리지 못한, 그래서 술의 힘을 빌어 부끄럽지 않을 그 나이로 돌아가 때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친정 엄마가 자주 눈물을 보이신다. 얼마 전 가까이 살던 큰 오빠네가 용인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내려간 뒤  며칠 동안 전화할 때마다 우셨다. 엄마 우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어 괜히 언성을 높였다.

어디 해외로 나간 것도 아니고 자주 올 텐데 뭘 그러시냐고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쌀쌀맞은 딸년이라고 속으로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젊은 시절 남편과 자식들 건사하느라 속으로 삭혔던 눈물이 이제야 터져 나오는 건가. 다 못쓴 눈물의 총량을 맞추려고? 어쨌든 고이면 넘치게 마련이니까, 엄마의 눈물이 슬픔으로 고여 넘치기보단 기쁨과 행복으로 넘쳐흐르면 으련만.



그림책<엄마,우리는 왜 울어요?中>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그림책 <엄마, 우리는 왜 울어요?>.

초록색 싱그러운 잎과 노란 나리꽃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 '마리오'. 아이의 두발이 눈물 웅덩이에 잠겨버렸다. 제목과 표지에 끌려 펼쳐 든 책 속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마리오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우리는 왜 울어요?"

엄마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다양한 눈물의 의미를 이야기해 준다.  


슬픔이 넘쳐서,

화가 너무 나서,

세상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지 못해서,

그리고 아파서,

몸을 얻어맞을 때마다 아파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거라고.


그런데 훨씬 더 아픈 건,

마음 깊은 곳을 맞았다고 느낄 때,

벽에 부딪쳤다고 느꼈을 때,  

더 많이 아파서 운다고.


 채널A 육아 프로그램 중 <금쪽같은 내 새끼>를 즐겨보는데, 솔직히 출연하는 금쪽이들의 초반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진다. 불안한 아이, 욕설을 쏟아내는 아이, 폭력성을 보이는 아이 등 문제 행동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아이들의 전반적인 공통점은 이런저런 이유로  운다는 것이다. 정말 우는 것이 최고의 권리라는 걸 아는 것처럼 악을 쓰고 운다. 그 모습을 보는  힘들 때도 있지만, 오은영 박사가 어떤 솔루션을 제시하고, 아이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된다. 솔루션을 받은 부모의 노력에 금쪽이들이 달라는 것볼 때마다  신기다. 따뜻한 부모의 지지 속에 금쪽이들은 이제 울기보단 말로 감정을 표현하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에 덩달아 행복  눈물바람을 하고 만다.


 금쪽이들은 부모나 주변 환경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슬프고 외롭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분노하고 공포와 좌절감에 눈물을 쏟아 것이다. "왜 울어?"라고 묻지만 아무도 정말 왜 우는지 귀담아 들어주지 않으니 수많은 메시지를 담아 눈물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그렇게 울기라도 해야 살겠으니까.


  '남자는 평생 세 번만 눈물을 흘려야 한다느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느니.' 하는 말로 눈물을 참는 게 미덕인 것처럼 교육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울기만 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울지 마.'라고 는 게 가장 큰 위로고 해결 방법이라 여겼었다.  눈물 나약함, 패배, 찌질함의 상징처럼  치부했니까.

하지만 눈물마냥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 아니다.  경험해 봤다시피 울고 나면 오히려 후련해지는 기분 들고, 그래서 괜히 더 슬픈 음악을 듣고, 슬픈 영화를 보며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 것이다. 우리가 울 때 몸에서 나오는 아드레날린과 옥시토신이 진통제 역할을 해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알지 못더라도 이다.

눈물은 우리가 성장하도록 도와준단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천천히 우리에게 물을 주는 거야.
울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바위로 변하게 될 거야.

분명한 건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다.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마리오는 엄마를 힘껏 껴안는다. 마리오가 자라는 모습이 기특한 엄마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왜 우는지 궁금해진 마리오의 물음.

 엄마, 왜 울어요?
너무 행복할 때도 눈물이 난단다.

마리오의 성장을 바라보는 엄마의 흐뭇한 마음이 한 방에 느껴지답이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행복에도 덩달아 눈물이 날 정도인데,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찾은 행복에 어찌 눈물이 안 날 까.

나에게 더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아 있다면 슬픔과 아픔의 눈물보다는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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