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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r 06. 2021

<재수생 육아일기> 애먼 스티브 잡스 탓을 해봐도...

상전 대접해주기


"엄마, 5분만 등 좀 만져 줘."

알람 소리에 어김없이 내 방으로 건너와 등을 내미는 우리 작은 아드님.

"5분 지났어. 이제 씻어. 응?"

"3분만 딱 더."


  이 소리는 매일 아침 5시 40분, 우리 집 재수생이 기상하는 소리입니다.


수능이 끝나고 낮인지 밤인지 모르게 놀다가, 다시 시작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고 고될까요.

그런대로 투덜대지 않고 알아서 알람 소리에 잘 일어나는 편이에요.

엄마 방으로 건너와 등을 내밀며 어리광을 부리는 아들이 기특해 매일 5분, 3분  등을 쓰윽쓰윽 문질러 줍니다. 그러엉덩이를 톡톡 치며 '일어나야지.' 하면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죠.


  아이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전 간단 아침을 준비합니다.

평일 집에서 먹는 유일한 한 끼라 뭐 근사한 거라도 차려주고 싶지만, 늘 최대한 '간단히'를 주장하는 아들을 위해 오늘의 메뉴는 간장계란밥과 된장찌개, 나박김치입니다.

간단한 식사이지만 식지 않게 식탁에 앉을 시간에 딱 맞춰 밥상을 차립니다.

식탁에 앉으면 마주 앉아 잠깐이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밥을 다 먹을 즈음, 홍삼 스틱과 따뜻한 차를 내줍니다.


 양치를 하고 아이는 정확히 6시 30분에 집을 나선답니다.

그 시간에 집을 나간 아이에 대한 하루의 소식은 2통의 문자 메시지로 확인할 수 있죠.


홍승제 학생이 2021년 0월 0일 7시 20분에 정상 등원하였습니다.
홍승제 학생이 2021년 0월 0일 21시 50분에 정상하 원하였습니다.


정상 등원과 정상 하원의 소식과 함께 점심 즈음,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 즈음 또 다른 문자가 옵니다.


삼성 0000승인
1200원 일시불
00/00 00:00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 먹었나 봐요.


  등원 후 폰을 내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 4통의 문자로 아이의 하루를 가늠해 본답니다.

그리고 파이널로 하원 문자와 함께 걸려 오는 한 통의 전화가 '찐'이죠.

"엄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어떤지 온 신경을 곤두세워 전화를 받습니다.

오늘은 목소리가 밝네요. 별일 없이 잘 보냈나 봐요.

순간 아이의 목소리 하나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건 과민한 엄마의 과민 반응일까요!

그러지 말자 싶으면서도 그게 맘대로 안되네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안아봅니다.

"아, 잠깐만 엄마. 좀 씻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어요.

저렇게 서둘러 들어가는 이유가 다 있거든요.

"으이구, 담배냄새. 피지 말라니까. 아빠도 안 피우시고 형도 안 피우는데 넌 뭐야."


 이 녀석이 언제부턴가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안을 때마다 냄새난다고 뭐라 했더니 저러네요.

안 피울 생각을 해야지 엄마 피할 생각을 하는 녀석의 궁댕짝에, 그래서 시원하게 킥을 날렸죠.

왜 저렇게 빨리 어른 흉내를 내는지 속상해요.


 씻고 나오면 가끔 학원 선생님 얘기도 하고, 공부에 대한 얘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핸드폰은 손에서 놓지 않고 뭘 그렇게 보는지. 잠깐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11시 반, 12시가 후딱 넘어가 버리네요.

피곤할까 봐 어서 자라고 방으로 들여보냅니다.

집에 와서 더 공부를 한다고 해도 피곤할까 봐 말릴 판인데,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혹시 수면 시간이 부족할까 싶어 늘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초반엔 학원 가서 졸지 않고 양질의 학습을 하기 위해 귀가 후 시간은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까지 그냥 두라는 선배 재수생들의 말씀도 있고 해서.

저도 재수생 엄마가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그 말에 동의는 하거든요.


 안쓰러운 맘에 겨우 방으로 들여보냈더니 방에 들어가서 하는 소리가,

"노래 한 곡만 더 듣고 잘게요."

그래. 노래 한 곡, 길어봐야 3분.

그런데 그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질까요.

그 몇 분 동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고등학교 내내도 핸드폰 때문에 애랑 참 많이 싸웠거든요.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만 아니었으면... 하는 하나마나한 원망을 다 했다니까요.

웹툰<대학일기 中>


새벽같이 나갔다 오면 피곤해 곯아떨어지는 게 정상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핸드폰 보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아이는 아닌가 봐요.

"피곤하면 자고 싶지 않아? 핸드폰 많이 보면 자면서 잔상이 남아서 더 피곤...."어쩌고 저쩌고 듣지도 않는 소리를 하다 말았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둬야 하나 봐요. 그게 나름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니 어쩌겠어요. 하긴 저도 화장실 갈 때도 폰을 들고 가긴 하네요. 애 타박만 할 처지는 못되지만 그래도 재수생은 쫌 안 그랬음 싶은데.. 어쩌겠어요.

저러다 진짜 피곤하면 자겠죠. 


 학원에 있는 시간 동안 잘하고 있겠죠. 그렇죠? 그랬겠죠?

그렇게 믿을래요.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게 나을 것 같아요.

내일 시험이 있다는데,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죠.

큰 아들 친구 중에 재수했던 녀석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 이뤄놓은 것도 없으면서 상전 대접받고 싶어 하는 게 재수생이야. 식구들 숨소리 하나에도 눈치가 보이니까 일부러 더 큰소리치는 거야. 그니까 그냥 냅 둬."


 대학! 그까지게 뭐라고... 호기롭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 저도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보통의 엄마다 보니 이런 말이 쉽게 나오질 않네요.

밖에 나가서 남한테는 참 잘도 하면서 말이죠. 참 이중적이라 좀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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