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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Apr 02. 2021

<場글 Book> 너에 대해 제일 모르는 사람은, 너야

그림책 <민들레는 민들레/ 중요한 사실>

'대한민국 남자들 공공의 적, 이벤트의 왕, 금손 사랑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배우!

나와 같은 사오십대는 아마 언뜻 이 사람을 떠올지 않을까 싶다.  바로 우 최수종이다.  

 한참 전  sbs 동상이몽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오랜만에 그가 나오는 걸 보았다.  런데 그의 행동이나  표정, 말투가 왜 그렇게 낯설고 과장 보이던지. 눈살을 찡그리며 채널을 돌려버렸던 기억이 난다. 내와 아이들에게도 깍듯하게 존대를 하고, 사소한 얘기를 하다가도 '툭'눈물을 흘리모습이 억지 연출 같아 거부감이 들었었다. 아무리 방송이고, 캐릭터 설정이 그렇다 쳐도 왠지 좀 오버스러워 불편했다. 


 그런데 새벽녘에 잠이 안 와 틀어본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그 부부가 사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내 하희라가 남편 최수종에게 결혼 26주년 기념 이벤트를 하는 장면이는데,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모습이 카메라 때문에 억지로 연출한 것만은 아닐 수 있겠 생각이 들었다.

  남편 최수종이 아내를 대하는 모습 속에서 속사정까진 모르더라도  26년을 한결같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배우 누구누구가 아니라 '하희라 씨'  자체를 존중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곰살맞은 남편과 달리 무뚝뚝해 보이던 아내도 그 한결같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보답이라도 하듯 스케치북에 짧은 글귀를 적어 소박한 마음을  전하는 모습에 갑자기 울컥했다.


“사랑하는 오빠 그리고 여보~ 19살에 만나 50살이 넘었네요.
첫사랑이 곰삭은 사랑이 되어가네요.
26년이라는 시간을 당신의 아내로 살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쩌면 당신이 말하는 설렘이 나에겐 늘 있기에 그것이 설렘인 줄 모르고 살고 있나 봐요. 감사합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나의 첫사랑이자 나의 마지막 사랑인 당신을 사랑합니다”


 남의 부부 오랜 사랑타령이 부러워 꺼낸 얘기는 아니다.

첫사랑이 곰삭은 사랑이 되어 가는 동안 한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사랑할 수 있었던 마음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마도 서로에 대 존중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존중함으로 존중받은 사람들.

'겉절이를 좋아하면 그런대로, 묵은지를 좋아하면 그것도 그런대로'

상대를 바꾸어 내가 원하는 모양의 사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사랑하듯' 상대를 배려하며 사는 것 말이다.


그런데,

존중함으로 존중받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실천하는 것이 나에겐  왜 그렇게 어려 일이었을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난 이 노랫말처럼 어려서부터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스스로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귀한 사람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 것 같다. 받은  만큼 베푸는 게 인지상정인데  난 더. 더. 더  받고만 싶어 했었다. 어떻게 하면 칭찬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집중했고, 남들보다 뭐든 잘해야  한다고 아등바등 욕심을 부렸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도 지나친 욕심은 늘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상처 받았고, 늘 의기소침 화가 많은 사람이 되어갔다.


남과 다른 나는 불안하고, 나와 다른 남은 불편한, 종잡을 수 없는 마음 때문에 로웠다.

불안한 것도 싫고, 불편한 것도 싫서, 종종 나도 바꾸고, 너도 바꾸고 다 바꿔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곤 .

그런데 나를 바꾼다는 여간 어렵고 귀찮은 일이 아니다.  차라리 나를 위해 들이 좀 바뀌어줬으면! 

바람은 그러하나 그것도 어디 내 맘 같아야 말이지.

그럴  때'사람 고쳐 못쓴다.'며 혀를 다.  내 탓이 아니라 상대방 탓이라는 듯이. 그 사람이 틀린 것이어야 내 잘못이 아닌 게 되는 거니까 속 편하게 그리 결론지어 버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난 가끔 피해자 코스프레를 다. 사실에 과장을 한 두 바가지를 보태서

 "내가 얼마나 불쌍한 상황을 겪었나 들어 봐. 그리고 날 좀 위로해 줘."

하는 심정으로.

인정은 아니더라도, 

아쉬운 대로 동정라도 받고 싶어 했다.

 

이런 속내를 혹시 남이 눈치챌까 싶어 겉으로는 꽤 괜찮은 사람인척 하며 살곤 있지만, 가끔 이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이 싫은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봄날, 두 권의 그림책 따뜻한 로를 받았다.




  산과 노래와 그림을 사랑하는 아저씨 김장성 작가와 꽃 나무, 새싹 나는 봄을 좋아하는 오현경 작가가 그린 그림책 <민들레는 민들레>!


 하늘 아래 , 어느 자리에서든 꿋꿋이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우고, 그 자리에서 잎을 키우고, 노란 꽃망울터트려, 끝내는 홀씨 날려 보내는 민들레.

 지붕에 뿌리를 내려도, 돌 틈에서 꽃을 피워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민들레는 민들레'란 진리다. 잘난 척, 아닌 척, 괜찮은 척, 이런저런 가면을 쓰고 살아도 그 자체가 나라는 사실처럼 말이다.

 그림책 겉표지를 넘기면 면지 가득 다양한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마지막 면지에서 꽃을 피운 민들레, 홀씨를 날려 보낸 민들레, 아직 싹을 틔우기 전 민들레로  그려 다.

꽃이 져도 민들레
씨앗이 맺혀도 민들레
휘익 바람이 불어도
하늘하늘 날아가도 민들레는 민들레


  민들레가 민들레인 것처럼 세상엔  너무 당연해서 잊힌 '중요한 사실'들이 너무도 많다. 언제나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선물 같은 그림책, <중요한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깨닫해 주었다.

 한 장 한 장 책 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이야기가 시처럼 낮고 조용하게 들려다.

그림책 <중요한 사실 中>

비와 눈에 대한 이야기, 매일 사용하는 숟가락에 대한 이야기, 주변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에 대한 이야기, 바람이 불고,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고, 하늘이 언제나 거기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 주는 편안함.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숟가락은 작은 삽처럼 생겼고, 손에 쥐는 것이고, 입에 넣을 수 있고,
숟가락은 납작하지 않고, 숟가락은 오목하고, 그리고 숟가락으로 뭐든지 뜨지.
하지만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그림책의 하이라이트는 바예상치 않은 상황에  낯의 ' 모습'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  마주한 '나'에게 전하는 한 마디.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내가 아기일 때나, 어린이일 때나, 이젠 어른이라고 말하는 시기가 되서도 변함없 '중요한 사실'

", 민들레는 민들레'란 사실이다.

못나건 잘나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난 존재 자체로 의미 있는 사람이니까.


 나조차 사랑하지 못했'나',

'나조차 내 편이 아니었던  나'를 나보다 더한 측은지심으로 사랑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오늘도 셀프 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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