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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Apr 19. 2021

<場글 Book> 나는 무얼 바라 다만,

그림책 <세상끝에 있는 너에게/고티에 다비드, 마리 꼬드리 글그림>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라 책상 앞에 앉았다.  빼앗긴 나라에서 시인의 인간적인 고뇌와 번민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는 깊은 뜻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절대 다시는 이 짓은 안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의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또다시 공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분명 시작할 때는 '하다가 힘들면 그만 두면 되지 뭐.' 하는 부담 없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에 끌려가고 있다. 때가 되면 연구 과제를 내고, 때가 되면 시험을 보고, 이것만 끝내면 정말 휴학을 하든가 해야지 못해먹겠네, 하면서도 책상 앞에 앉아 돼도 없는 머리를 쓰며 자괴감에 빠진 나를 마주한다. 가끔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속에서 식자들의 모습을 보면  '세상에 저렇게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있구나. 정말 배운 티 팍팍 나네. 배움이 깊어서 일까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참 고급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부러운 마음에 어설픈 흉내도 내본다. 나는 언제 저렇게 될까.  그런 때가 오긴 할까.


'도대체 난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이렇게 침전하는 것일까.'


  살림과 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나에겐 정말 고단한 일이다.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늘 허덕거리며 살다 보니 몸은 몸대로 상하고, 마음은 마음대로 지친다. 빠듯한 생활에 아이 뒷바라지에 내 공부까지 하려니 늘 통장 잔고는 간당간당하고, 통장이 텅장이 되어갈수록 본전 생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투자했으니 좀 더 벌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웬걸 돈을 더 벌고 싶었다면 공부를 할게 아니라 다른 투자를 했어야지 하는 뒤늦은 후회도 밀려온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박사라고 다 같은 박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빨래 박사, 살림 박사, 요리박사만도 못한 박사 타이틀이 나에겐 왜 필요했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남들보다 많이 배웠다고 잘난 척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도 아닌 게 괜히 잘난 척 한달까봐 오히려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잘난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알량한 자존심만 높아져  쉬 상처받는다.  이런 게 내가 정말  바던 삶일까.


  며칠 전 그림책 에세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그림책 영상 파일을 녹음하다가 울컥 눈물이 나서 녹음을 잠시 중단했던 적이 있다. 고티에 다비드와 마리 꼬드리 부부의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란 그림책이었다. 부부가 자신의 아이들 안나와 아르도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책은 겨울잠을 자려던 곰이 사랑하는 새를 찾아 남쪽 섬으로 떠나는 긴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곰은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편지글로 써서 새에게 보낸다. 가는 곳곳마다 만나는 동물들과 겪었던 일들을 상세히 적어 보내는 세상 스윗한 곰의 모습에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는데, 너무 행복한 걸 보면 작동하는 눈물샘이 주책스럽게 또 아무 때나 발동이 걸렸던 모양이다.

그림책 <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사랑하는 새에게,
집을 떠나 이렇게 먼 길을 혼자 가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
널 다시 만날 생각을 하면 너무나 행복하면서도
사실은 아주 조금 겁이 난다는 것도 말해야겠지?
다정한 뽀뽀를 보내.
너의 곰이


나의 새에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어.
오늘 아침에 곰 친구와 헤어질 때는 마음이 아팠어.
우리는 너무나 마음이 잘 맞았거든! 나는 조금 울기까지 했어.
...
너한테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기뻐.
그러면 힘든 것도 잊고 용기가 생겨.
더 이상 아주 멀리 있지는 않은 너의 곰이


나의 사랑하는 새에게
나는 사막에 와 있어.
여기는 너무 더워. 네가 사는 남쪽도 그렇겠지?
...
나의 새야, 한시라도 빨리 너한테 가고 싶어.
목이 바짝 마른 너의 곰이

 

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바다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바짝 른 사막을 건너기도 하고, 끔찍한 전쟁의 위험을 겪어내야 했다. 고통만 있었던 게 아니라 여정을 멈추고 싶을 만큼 달콤한 유혹도 있었다. 맛있는 음식, 편안한 공간, 재미있는 축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랑 너무 잘 맞는 친구. 그런 친구와 헤어져야  했을 땐  눈물이 날만큼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안락한 일상을 놓고 떠나는 시작부터 여러 희로애락을 겪어나가며 때론 후회도 하고 주저앉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이만하면 됐.'타협하고 싶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곰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운 새를 만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걷고 또 걸었다.


나의 새에게,
난 도착했어. 넌 어디 있는 거니?
독수리 모양을 한 바위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
얼른 와.
너의 곰이


드디어 도착한 곳!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새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세상 끝까지 갔던 곰은 과연 새를 만났을까.

혹시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고 갔는데 새가 거기 없거나,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나라면 어땠을까?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아마 애초에 출발부터 잘못되었다고 자책을 하고, 중간에 놓아버린 기회들을 아까워하며 후회하고, 꽤나 분통 터져했겠지. 그리고 내뜻대로 되지 않은 모든 원인을 결국 아무 잘못 없는 새 탓으로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애타게 보고 싶던 새가 거기에 있었다면, 그래서 운 좋게 만났다면 또 어땠을까? 정말 천년만년 해피엔딩이기만 할까?

그 어떤 상황도 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그러니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가는 길에서 너를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꼭 만나면 좋겠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떠난 길이 다 무의미한 것은 아닐 테다.

그 길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과 다양한 경험이 모여 차곡차곡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니까.

가보지 않았으면 하지 못했을,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나는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런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꾸역꾸역 또 어렵고 힘든 일을 해 낼 수 있었던 것이겠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지나고, 내일 또 다른 길 위에 놓여 난 또 생각할 것이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인가.'


뭔가를 하고 있어도 불안하고, 하지 않아도 초초한 매일을 살고 있다면 끝이 어딘지 그 끝에서 무얼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냥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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