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고 하면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만 나는 너무나도 사실적인 이야기때문에 가혹한 마음을 느꼈다. 이 이야기엔 명확한 선과 악의 대립도 없고 큰 갈등이 일어나는 사건 또한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걸 느낄 수 있는 매력과 배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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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일류.
명문대에 진학한 자녀는 뒷바라지하시는 부모의 마음 속에 항상 그렇게 각인된다. 때로는 사실이다. 기특한 우리 자식은 나의 희생으로 인해 더욱 빛날 것이고 좋은 직장을 가져 나에게 보상해줄 것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한 우리 자식.
대학을 바라볼 때는 한가지만을 바라보면 됐다. 왜냐면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뒤따라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이름 앞에 00대 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나는 기막힌 성장을 해낸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대학에 들어오자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미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장학금까지 따내 부모의 고생을 덜어낸 주인공 ‘라엘’은 행정고시 재경직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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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강물은 우물이 된다
고시촌에는 강이 흐른다. 말 그대로 도림천이 흐르기도 하지만 수많은 입구들에서 다양한 물이 들어온다. 그러나 출구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꾸준히 급류에 몸을 맡긴 이만이 새로운 강으로 건너가 바다를 향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은 어떤가? 그들은 깊고 넓은 곳으로 흘러가 우물처럼 고이기 시작한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나와 밖을 분리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이 강은 웃기게도 순환이 된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들어오며 누군가는 다른 형태가 되어 나가기에. 혜옥이의 방은 누군가가 쓰던 더러운 방. 합격자의 기운을 받기 위해 어머니가 혹한 청소가 안된 방. 그리고 혜옥이의 방에도 누군가가 들어오게 된다. 같은 함정에 빠져서.
혜옥이는 누구보다도 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생활을 했지만 세상은 혜옥이를 중심으로 바뀌지 않고 혜옥이가 나간 자리에 다른 누군가를 들인다.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라엘이가 혜옥이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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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
가장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던 스터디 장면.
라엘로서 고시 세계에 진입한 혜옥이는 처음에 자신이 있었다. 이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만 같았고 길게 잡아야 2년 안에 벗어날 것만 같았다.
스터디 내에선 다들 연차가 많은 고시 선배들이 있고 스스로를 낮추면서 초시생인 라엘보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비결이 뭔지, 다음에도 나올건지 등등.
그러던 와중 한 사람이 자리를 세게 박차고 나간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어떤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우리에게 뭐가 화나서 나갔을까? 어딘가 이상한 사람인가?
그 다음 해 라엘은 스터디에서 새로운 초시생을 받는다. 기존 멤버들이 라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비결을 물어본다. 인생에서 스스로만 주인공이었던 줄만 알았는데 누군가의 스포트라이트를 지켜보고 있는 심정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인생에서마저 순위가 밀려버린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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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돼지우리 속 혼자 두리번거리는 돼지 한마리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이 독서실에서의 혜옥이의 모습과 꽤나 닮았다고 여겨졌다. 흔히 저런 독서실을 닭장이라고 묘사한다. 숨이 턱 막히는 듯이 따닥따닥 붙어서 서로에게 일말의 안중도 없다.
영화에서 부분부분 전개되는 장면으로 고깃집의 돼지고기 품질에 대한 컴플레인 장면이 있다. 돼지의 품질이 한돈이 아니라며 계속 새로운 고기를 내오라고 한다.
일류인줄 알았던 라엘이도 알고 보면 가짜 일등급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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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뺏어가는 딱지들
이 부분에 대해 잘 서술할 자신은 없지만 라엘의 가정은 이전에 압류 딱지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취방 구석구석에 붙은 포스트잍을 보고서 압류딱지같아서 보기 싫다고 말한다.
처음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한 쪽지들이었지만 어느새 말할 곳 없는 마음을 꺼내놓는 용도로도 쓰인다. 방 온 곳에 붙은 포스트잍들이 그녀를 쳐다보듯이 옥죄는 것만 같다.
한동안 계속 기침을 해서 병원을 찾아간 그녀. 수험병이라도 걸린듯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을 가진다. 그런 그녀에게 의사는 도박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들은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혹시 모를 희망이 있기 때문에.
혜옥이를, 라엘이는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기계적일 뿐이다. 다만 자신을 향한 말들을 쪽지에 옮겨적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한다. 처음엔 ‘할 수 있어’ ‘넌 일류야’ 이후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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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라엘이고 싶었다. 혜옥이라는 이름을 기어이 지어온 어머니에게 나는 라엘이라고, 라엘이는 뭐든지 해낼 수 있는 힘을 아직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꼭 혜옥이가 되지 않더라도.
오기가 생겼다. 몇년의 공부 중에 힘이 생겼다. 1차를 붙었다. 첫번째 성취였다. 한걸음 나아간 것만 같았다,아니 나아갔다.
그런데 정말 사소한 실수 하나로 무너지고 말았다. 기회조차 잃고 말았다.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고 올리면 정말 한심하다고 지탄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엘이를 아는 사람은 감히 누가 뭐라할 수 있을까. 라엘로 남고만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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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성공을 한 ‘라엘’ 이를 응원하며
고시 생활을 물로 비유한 이유 중 여러가지가 있다. 흔히 고이기 마련이며 자신을 잃기 마련이기도 하고. 어디에서 흘러들어온진 알지만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기도 하다.
영화 내내 매몰비용의 오류가 언급된다. 그렇게 어렵거나 중요한 개념은 아니다. 쉽게 말해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발 빼자’ 라는 뜻이다. 스터디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한 사람도 어쩌면 경제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라엘이는 결국 이 우물을 떠나기로 한다. 어떤 방향인진 모르지만 그녀는 이 흐름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실패한걸까?
당연히 시험이라는 길에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길을 알아보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그녀 나름의 방법대로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고깃집 알바도 하며 돈을 번다.
그녀는 고깃집 사장님에게서 ‘요령 없다’ 는 말을 듣는다. 처음엔 고시를 준비했다는 이유로 알바를 뽑아주고는 그녀를 일 못한다며 구박한다. 사장은 가짜 한돈을 팔며 입을 터는 돈에 미친 사람이다. 사장에게 그녀는 쉽게 부리기 좋은, 가스라이팅하기 좋은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으로 비춘다. 그래서 타인에게 가르치길 좋아한다.
라엘은 사장에게 왜 이리 욕심이 많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어머니가 목격한다. 어머니는 그녀가 합격한줄로만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주위가 자신에게 요구하던 모든 것들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나에게 욕심을 가지지 말아달라고. 그건 하나의 급류를 벗어나는 탈출 방식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그 지옥을 벗어났다.
원하던 삶은 아니다. 일단 어머니가 원하는 삶은 아니다. 그렇지만 라엘이가 타인이 원하는 삶을 찾아 긴 시간을 보낸 만큼 꼭 어딘가에 있을 행복을 ‘라엘’로서 찾아내길.
노력한 만큼 방황했으니 방황한 만큼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