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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Park Sep 28. 2021

코로나 시대,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

『28(정유정)』

『28(정유정)』


인간은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무엇이 인류의 끝을 불러올 것인가에 대해서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 그중에서 외계인의 지구 침략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지구의 종말이 우리에게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것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삶 속에 항상 있어왔다. 그 두려움이 사람들의 상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어온 경험이 되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역사 속에서 보았던 여러 전염병부터 '사스', '메르스'같은 전염병도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무서운 '전염병'의 공포 속에 여전히 있다. 2020년 난데없이 찾아와서 끈질기게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이제는 그 이름도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코로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염병'은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인간 사이로 옮겨가며 퍼져나가는 질병을 의미한다. <28>이라는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듯 그 시작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시작이 된다. 그 누구도 이것이 사람들의 삶을 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도, 예상할 수도 없다. 소설 속에서 '빨간 눈의 괴질'이라는 별명을 지닌 원인불명의 전염병은 치사율 100%에 가까운 질병이다. 이러한 전염병이 어떻게 삶을 휩쓸고 지나가는지 잔인할 정도로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책의 끝에서 이 소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28>은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가는 삶의 폐허를 어떤 휴머니즘적 기대도 없이, 처절한 리얼리티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재난의 한 복판에서 고국 분투하는 수많은 인물을 향한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후, '설마 이 사람은 죽지 않겠지'라는 안타까운 기대를 무너뜨리며, 냉혹하고도 절도 있게 방금까지 살아 움직이던 등장인물을 '차가운 시신'으로 만든다. 죽음을 향해 쾌속 질주하는 인물들은 '전염병의 공포'를 넘어 '대재앙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의 비극'을 증언한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읽었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시작되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보면서 소설 속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과 겹쳐 보일 때면 한 문장 한 문장을 더욱 곱씹게 되었다. 



소설을 보며 '설마 이 사람은 죽지 않겠지'라며 책장을 넘기는 그 마음이 코로나가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였을 때의 그 마음이지 않을까. '설마 나는 안 걸리겠지'. 그리고 전염병의 무서움은 그러한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에서 주변의 지인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님의 지인이 코로나로 사망하셨다는 말을 들으며, 나도 걸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커져갔다. 




#인수공통 전염병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시선뿐 아니라 '인수공통 전염병'앞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 '개'의 시선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보면 그 존재가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이 된다. 


"종의 다름이 인간과 동물의 취급 차이를 정당화할 수단이 되는가?"

유구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영혼에 깊이 스며든 동물에 대한 도구적 관점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해 겨울, 그러니까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생매장을 당하던 '충격의 겨울'이 없었다면 나는 그의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28>에는 여러 개들이 등장한다. 다 각자의 역할이 주어져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링고'라는 이름을 가진 늑대개이다. 링고는 주인공이 키우던 개가 아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개장수에게 잡혀 풀려난 개로 등장한다. 투견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링고가 스타를 만나고, 사랑하고, 사랑했던 스타를 잃고, 스타를 죽인 사람에 대한 증오로 죽는 것을 사람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링고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정말로 개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인간인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개는 그렇게 생각할 거야라고 하는 것조차 우리가 개를 통제하고 길들이고 다 알 것이라는 착각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작가의 의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출처 www.hamgil.or.kr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지만, '전염병'이 인간의 살기 위한 욕망을 꺼내는 그 상황 속에서 나와 다른 '개'라는 존재가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바로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인간보다 아래의 종 취급을 하게 되는 인간이라는 종의 모습이 너무나 잔인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잔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구제역으로 수 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을 생매장하듯이,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로 인형 사듯이 사들여서 병들고 늙게 되면 혼자서 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개들을 내다 버리듯이 그것이 우리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전염병 속에 숨겨진 인간의 악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캡처


소설을 읽으며 오래전에 읽었던『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가 떠올랐다. 같은 '전염병'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 소설을 떠올리게 했단 부분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인간들 스스로의 폭력과 증오로 인한 죽음이다. 특히 한기준의 가족들이 굶주린 개떼들의 공격으로 살해당하는 장면, 강도들의 습격을 받아 성치 않은 몸으로 환자들을 보살피다가 윤간을 당하고 죽어가는 수진의 모습은 '무고한 자들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가장 죄 없는 자들의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가 되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도시는 약탈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일을 아무 데나 보기 시작하면서 악취로 뒤덮이게 된다. '전염병'으로 직접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이외에 전염병이 불러오는 더 무서운 것들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전염병'이라는 거대한 것이 사람들을 휩쓸고 있을 때 그 혼란한 틈을 타고 들어오는 인간의 악의 본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무서웠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갈 때, 그 한편에서는 그만큼의 숫자가 다른 이유로 죽어간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우리는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규칙을 만들고 법을 만들어 '악'이 사람을 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전염병'이라는 존재가 그 사회를 밑바닥부터 흔들게 되면 우리가 정해놓은 약속과 규칙이 인간의 욕구 앞에 무너져버리게 된다. 소설은 인간의 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문학작품이지만 이러한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를, 우리가 실제로 처한 이 '전염병'상황에서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사회'가 무너져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된지도 2년이 가까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 이니라 '위드 코로나'의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우리 곁에는 다양한 인수공통 전염병, 유행성 감염 등이 존재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더 많은 전염병이 더 자주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는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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