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시간 따라 봄날은 잘도 간다.
만물이 소생하여 화려해진 4월이면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시작하는 The Waste Land(황무지)의 시구를 떠올리는 건 시 속에 담긴 절망보다 부활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어서인가?
어쨌든, 시대적 상황은 다르지만 4월이 시작되면 읊게 되는 이 시의 첫 행처럼 4월은 우리에게 충분히 잔인한 달이다.
제주 4.3 사건,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 고난과 투쟁의 시간과 비극, 기억해야 할 슬픈 사건들이 관통되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기억과 봄날의 눈부심이 어우러진 4월이 간다.
무르익은 봄빛에 연둣빛 잎새는 짙어가고 한 뼘 더 자란 나무들은 점점 풍성해진다.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게 변한다는 말처럼.
나의 일상이 전환된 건 구독형 OTT(Over the Top)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었음이 분명하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지난해부터 OTT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평소 TV와 친하지 않았고, 그나마 선호 채널도 다큐멘터리나 세계테마기행, 스포츠 등 편파적인 시청자로서 넷플릭스나 왓차, 웨이브, 티빙 등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호기심이 그다지 발동하지 않았다. 또 절차가 필요한 번거로운 부분에서는 진행조차 멈춰야 했으니까.
그런 내가 요즘은 넷플릭스에 푹 빠져 산다. 국내외 편을 가르지 않고 인기 드라마, 영화, 시리즈물 등등 볼만한 콘텐츠를 찾아 헤맨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간 떨어져 지냈던 아들의 귀국과 더불어 받은 혜택이랄까? 엄밀히 말하면 아들이 첫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우리에게 초대형 신형 TV를 선물했다. 젊은 피를 가진 아들의 등장은 신문물에 대한 무반응+지독한 기계치인 우리 부부의 무지함을 순간에 깨우치는 마법의 공식을 보여주었다.
암튼, 시간이 갈수록 넷플릭스가 좋아지는 것도 내 취향 따라 골라보는 재미도 재미지만, 기다림 없이 언제나 시즌 전편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는 점이 나의 체질과 맞아떨어졌다.
늘그막에 주야장천 TV와 친구가 되어 한 몸처럼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이야. 아무튼 이런 모양새는 싫증이 나기 전까지 이어지겠지만 매번 새로 출시되는 콘텐츠가 만만치 않아 나의 또 다른 취미가 될 듯싶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흥밋거리나 좋아지는 것이 생기는 건 즐거운 일이다. 동시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많다는 것도 느낀다. 어찌 보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런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깨닫기도 한다. 열정이니, 실력이니 따져가며 억지로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적당한 선에서 자신과 타협하고 무리하지 않는다. 정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면 된다. 이것도 나이듦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