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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Mar 19. 2021

봄이라서 좋은 거지

제주도와 남부지방은 봄의 꽃소식이 한창이다.

매화와 노란 유채꽃, 산수유꽃이 만발하고, 개화한 벚꽃, 꽃봉오리 소담스러운 목련꽃 사진도 보내온다.

반가움에 버선발로 뛰쳐나가 봄맞이를 해야겠지만 코로나가 버티고 있으니 먼발치로 인사만 전한다.

만사 심드렁하고 후줄근했던 마음이 바라만 봐도 봄기운을 받은 듯이 산뜻해진다. 순전히 봄에 대한 나의 편애다.

꽃샘바람의 시샘이 있거나 말거나, 봄은 풋풋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쯤해서 겨울의 칙칙한 시간을 훌훌 털어버리라고 재촉한다.

얼떨결에 봄기운에 편승해 시들해진 마음을 흔들어 운다.    


험난한 코로나 시국에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불청객 뿌연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달고 오면 밉상도 그런 밉상이 또 있을까마는, 향기 가득한 봄의 매력을 폴폴 날리며 다가오는 봄의 유혹을 또 어쩌란 말이냐.

봄의 멋스러움은 늘 처음대하는 마음처럼 밝다.

움튼 새잎은 솜털 수줍음으로 새초롬하고 봄볕은 화사하다.

삐죽 마른 겨울나무에 생기가 도는 물오름이,

탄산수처럼 톡톡 솟아나는 새싹들의 돋음이,

용솟음처럼 터지는 꽃망울의 힘찬 몸짓까지.

여기저기 사방에서 꿈틀대며 생기발랄함이 요동을 친다.

겨우내 움츠리고 꼭꼭 숨겨뒀던 비장의 실력을 이제부터 한껏 뿜어낼 태세다.

아름다움이란 참으로 다채롭다.

여리고 작은 피사체들의 서툰 몸짓이 사랑스럽고, 계절이 더디게 오든 두서없이 오든 제철에 맞게 생동하는 움직임이 경이롭다.

일상의 권태가 자연의 질서 앞에서 하찮아진다.

봄의 온기로 정신의 활력소를 얻고 위안을 받는 이기적인 치유법을 깨친다.


나이 들어가면서 더 좋아지는 계절이 봄이다.

좋아하는데 이유를 댈 필요까진 없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연민과 예의 있음이 좋아지는 것과 유사하다.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일까, 잊혀지는 것이 많아서 그리워지는 것일까.  

바람도 살랑대는 봄바람이 좋고, 햇볕도 부드러운 봄빛이 살갑다.

봄볕이 가을볕보다 따갑고 자외선 지수가 높아서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을 내보낸다’는 재미없는 말도 있지만 내게 통할 리 없다. 질 좋은 선크림 잔뜩 바르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가면 된다.

봄은 그냥 봄이라서 좋은 거다.

나른한 오후 춘곤증이 쏟아질 무렵 핸드폰이 울린다.

"뭐하슈? 날씨가 너무 좋은데?"

나의 절친이자 남편의 목소리다.

" 나.. 지금 집에서 멍 때리고 있슈~."

"20분 후면 도착인데 밖으로 나와봐. 같이 식물원이나 걷자고."

최근에 지공남(지하철 공짜로 타는 남자)된 남편이 지하철 애용에 맛 들었는지 다짜고짜 집과 가까운 지하철역 앞으로 나를 불러낸다.

잔디밭에서 도시락 피크닉은 못 해도 날씨 좋다고 날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다 싶어 후다닥 곁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코끝에 와 닿는 포근한 봄바람은 향긋한 봄내음을 싣고 활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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