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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Feb 18. 2022

엄마와 함께 지내기

꽃샘추위의 시샘이 봄이 오는 길목을 막고 서 있나 보다.

여전히 겨울이다. 응달진 곳엔 하얀 잔설이 흔적처럼 남아있다.

투명한 햇살이 반짝인다.

열어둔 창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움으로 긴 호흡하고 나니 머릿속이 맑아진다.


며칠째 친정집에 머물며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세보 무척 건강하셨던 엄마가 구순을 넘긴 후부터 혼자서 지내시는데 무리가 따랐다.

우선은 연로하시니 심신이 부쩍 쇠약해지셨고, 점점 나빠지는 시력과 청력으로 인해 지장을 받게 되니 많이 힘들어하셨다.

더구나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국면으로 제약을 받는 게 많아지니 주일 나들이였던 교회 시는 것도, 친구분 중 딱 한 분 살아계시는 친구와의 만남도 심지어 같은 아파트의 말동무와도 교류가 단절되어가고 있어 우울감과 삶의 상실감이 커진 듯했다.

엄마의 건강도 문제이지만 나날이 심적으로 약해지는 우울증세가 염려되어 대책을 세우는 게 시급했다.

하지만 은근히 까다로운 성격과 엄마 나름의 원칙이 워낙 강하신 분이라서 평소에도

가사도우미의 도움은 원치 않으셨고,

 동안만이라도 노인 돌봄 서비스 혜택을 받자고 권유드렸건만 완강히 거부해 오신 터라 엄마가 원하시는 대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최선의 선택지로 자식들이 순번을 정해서 며칠간씩 엄마와 함께 지내기로 결론을 맺고 작년 11월부터 순서가 이어지고 있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를 통해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외양은 셋째 딸인 내가 제일 많이 닮았다. 엄마의 좋은 점보다 닮아 있는 싫은 모습을 보면서 반성하기도 한다.

엄마의 눈에는 60이 훨씬 넘은 당신의 딸이 아직도 시원찮은지 여전히 엄마 식대로 요구하고 일일이 간섭하려고 하신다.

엄마는 내유외강보다 외유내강에 가깝다. 당신의 고집과 주장도 확고하셔서 어떤 면에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엄마에게 한창 반항하던 시절에 "내가 엄마 나이 그때 되면 이해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대들던 그때의 말처럼, 우습게도 엄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여가니 가끔 엄마와 의견이 부딪힐 때면 그 말생각나서 다시 엄마에게 소리치고 싶어지는  순간순간이 있기도 한다.

 

하긴, 오랫동안 엄마 혼자서 당신 마음대로 해오신 살림을 자식들이라고 와서는 이것저것 챙기고 버리고 각자 방식대로 선을 넘으려 하니 서운한 맘이 드실 때도 있으실 것이다. 더욱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하고, 받는 것보다 베풂이 몸에 밴 분이시라 입버릇처럼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게 싫다고 하시지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니 당신도 어쩌지 못하는 맘이 되신 것 같다. 말씀으로는 고생스럽다며 매번 그만 내려와도 된다 하시면서도 다음엔 언제 오는지 물으시는 걸 보면 지금처럼 이렇게 자주로 자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으신 것이다.


엄마가 힘드신 건 총체적이지만 그중 제일 신경 쓰인 것이 눈 상태이다. 황반변성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력 저하는 물론이고 색상 구별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모든 게 흐리고 물체의 형태로만 인지하고 느끼는 것 같다.

병원에서는 연세도 있으시니, 특별한 치료 방법도 별 효력이 없을 거라고 한다. 다만 최대한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할 도리밖에 없다는 거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서서히 나빠지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심각하게 진행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평소 책 읽기를 즐기셨고 일 년에 성경을 5번이나 완독 했다고 자랑하시곤 했는데 이젠 그 즐거움마저 접으셨다.

옛말에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했거늘 눈 좋을 때 제대로 관리를 안 한 당신 자신이 그저 원망스럽고 후회된다며 평소에 눈 관리 잘하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눈도 유전과 가족력이 요인이 되는 거라서 나 역시도 눈 건강이 좋지 않다. 백내장 수술 후 한쪽 눈에 녹내장 질환이 발견되어 약을 쓰고 관리하고 있어서 조심스럽다.

 

요즘은 TV 시청은 멀리하고 라디오 청취로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그냥 측은해 보이기도 하지만, 긍정 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응을 잘하시는 모습에서 역시 대단함을 느낀다.   

안타까운 건 누구보다도 야구를 사랑하고, 보고 즐기는데 열심이신 엄마의 유일한 낙이 어려울  이라는 거다. 

91세이신 울 엄마는 자타공인 프로야구 기아 열열한 광팬이시다.

프로야구 시즌만 되면 얼굴에 화색이 돌만큼 좋아하시고, 사위들과 손자들과도 야구 소식이며, 이야기로 대화가 통하신 분이다.

3월이면 프로야구 시즌 개막한다며 올해는 기아 성적이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계시지만, 앞으로 TV 보는 것이 예전보다 더 힘들어하실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도 놀란 만큼 여전히 기억력도 좋으시고,  드시는 것도 잘 드시고,거동하시는 모습만 봐도 감사하다.


장수와 건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관리에 달렸다고 한다.

건강하게 나이를 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치료의학기술과 예방의학기술도 발전하고 있으니

개인 스스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100세 시대를 더 여유롭게 맞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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