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잠시 멈춤 했던 떠남을 밀린 과제 해치우듯 이어갔다.남편의 시간이 한가해지니 함께 보낸 시간도 늘어간다. 나이 듦 탓인가 남편과 여행이 스스럼없는 친구와 동행한 듯편해졌다. 이 말인 즉,예전보다서로에게 양보함이쿨해지니 의견 충돌도 엷어지고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워졌다는 뜻이다.
여행은 비움과 채움을 넘나 든다. 그것은 새로움이다.시간의 스침일 뿐일지라도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진다.
예전에 다녀왔던 그 자리도, 아무런 추억이 없던 작은 풍경들도 처음 대하듯 새롭게 다가온다.
춘천의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가, 포항 죽변스카이 레일이그랬다. 강원도 철암 탄광촌이, 동해안 푸른 바다가그대로의 모습인 채 시간의 더께만 한 겹 더 쌓여있었다.오래전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열차를 기다리던 설렘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백두대간 협곡열차의 기다림마저 새로웠다.
여행은긍정의 필터가 내재되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삼키고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일상의 지루함과 배부른 고민까지도 무력하게 만드는 긍정의 힘 그것이다.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 새로운 분위기와 마주하며 예측하지 못한 순간들이 힐링이 되어 돌아온다.
7월이 가기 전에 작은 언니와 함께 보낸 3박 4일 여정 길은 그렇게 이어졌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작은 언니는 광주와, 완도를 오가며 큰 살림을 건사하느라 늘 바쁜 와중에도 형부와 아프리카까지 세계 곳곳을 두루 섭렵한 여행의 고수다.
내가 광주 내려갈 때마다 분위기 좋은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며 눈과 입을 호강시켜 주며, 동생들에게 무한 사랑을 주는 살갑고, 이해심 많은 언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서로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서 가까운 곳에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며 딱히 계획도,순서도없이 언니는 나를 데리고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전남 여수로 가려던 길이큰언니의 핸드폰 한 통화로 급기야 전북 고창으로 여정이 바뀌었고,7월이라 라벤더 꽃이 다 지고 없는 휑한 청농원을 구지구지 찾아가 보는 막무가내 여행의 해프닝은 어쩔 수 없었다.
고창읍성을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무장읍성을 둘러보며 애초에 갈려던 곳이 아니면 어떠랴 우리만 좋으면 그만이지. 눈짓만으로도 한마음이 되는 언니와 함께 길 따라 마음 따라 돌고 돌아다닌한량 같은시간들이었다.
전북의 온화함과 고풍의 멋스러움이야 익히 알고 있는우리는완주 오성 한옥 마을로 차를돌렸다.마을을 찾아가는 길목부터 길게 이어지는 우거진 벚나무 길이 인상적이었고, 아담하고 정갈하게 정돈된 한옥들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을 조망하기 좋은 두베 카페에서빵과 차를 곁들여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전주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조카(큰언니 딸)를 그곳으로오게 하여셋이서 느긋한 시간을보낸 후,발길을전주로 향했다.
조용한 듯 다채로운 도시 전주.
전주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곳이다.
언니들과 나는 광주에 오면 아직 미혼이라 혼자 지내는 조카를 보기 위해 전주를 마실 다녀오듯자주 들락거린다. 딸이 없는 작은 언니와 나는 어릴 때부터 조카를 딸 대하듯 허물없이 대했고,고맙게도 조카 역시우리들과 아주 가깝게 지낸다.
이번에도 이모들을 위해서 기꺼이 본인의 스케줄을 조절해가며 남은 여정을 함께 했고, 우리는 해박한조카의 특별한안내를 받으며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유명 맛집과 분위기 좋은 곳을 순례하며 온전히 쉬고, 먹고, 산책하는 즐거움으로 채웠다.
마지막 날엔 임실의 옥정호를 둘러보며 한적하고 예쁜 하루 카페도 들러서시간을 보내면서 여행 일정을 마무리했다.
짧은 여행 속에서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고 우애가 돈독해짐이 느껴졌던 고마운시간들. 그 안에서 몸과 마음이 저절로 힐링이 되었던 깊은 여운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