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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Mar 30. 2023

핑계를 보내야 할 시간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한 권 더 샀다."

큰언니로부터 보태니컬 아트 컬러링북을 선물 받았다.

낡아가는 신체 변화를 핑계로 시력 보호차원에서 그림 그리기를 소홀히 했건만, 마음을 써서 챙겨주는 언니의 고마움에 넣어둔 그림 도구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예전에 좋아한 꽃들실제 모습처럼 정교하게 그리고 싶어서 몇 번 시도해 보긴 했지만  세밀한 표현이 서툴고 힘이 들어 일찌감치 접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품활동이었다.

     

'보태니컬 아트'

Botanical (식물의, 식물로 만들어진)과 Art(예술, 미술)의 단어가 결합한 말로 식물의 구조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극사실화로 표현해야 하는 세밀화 작업이다.

큰언니는 최근 새로운 취미생활로 이걸 선택했다고 한다.

건축학을 전공한 언니의 자질과 성향과도 맞아떨어져 보인다.

언니가 그린 그림을 보니 손끝의 섬세함이 나와는 달랐다.

     

36년 동안 교단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다 정년퇴임 1년을 남겨두고 명예퇴직한 큰언니.

남은 아쉬운 1년이 대학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신 형부의 인생 2막의 새로운 시작과 맞물린 계획적인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분은 퇴임  년 후 제주살이를 시작했고 어느덧 8년이 되어간다.

엄밀히 말하면 제주도가 고향인 큰 형부의 귀향이 결행된 것이기도 하지만.     


정년퇴임 후 대게는 여생을 편히 지내면서 소일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실행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이.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노후 준비를 아주 모범적이고 신앙인으로서 믿음의 본보기를 보여주신 큰 형부의 이야기를 여기서 잠깐 언급해야겠다.

     

대학에서 43년간을 교수(생명공학과)로 생활하신 형부는 60세부터 퇴임 이후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하신 분이다.

60세의 늦깎이로 야간 신학대학원에 입학,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목사 안수까지 받으셨다. 당시엔 깊은 신앙심으로 시작한 공부인 줄만 알았는데 이미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었다.     

퇴임 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집을 짓고, 주위 마을과 달리 거의 5~60년 가까이 교회가 없던 하례리 고향 마을에 사재를 털어 작은 교회를 신축하기까지.

교회를 신축할 땐 일부 주위 분들의 반대와 질시 어린 시선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하나님과 약속한 믿음의 사명으로 자신의 의지를 실행했고 순수한 열정으로 목회 사역을 감당해 내셨다.

이후 교회 건물을 교단에 기증하고, 후임 목사님과 함께 교회가 잘 정착되어 갈 수 있도록 교회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며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요즘은 노인회 회장까지 맡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틈틈이 책을 집필하는 연구에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하시니 인생후반부의 건강한 삶이란 이처럼 선한 영향력을 갖고 스스로 만족하며 보람을 느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행복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누리는 것이라 했던가? 

노후를 위한 돈도 건강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삶을 누릴 줄 아는 마음가짐이 시들해지지 않도록 노력을 덧붙여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선택과 결정이 쉬운 일은 아니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생각을 바로 실천하지 못하는 게 문제가 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핑곗거리를 찾는 게으름은 부리말자주문을 걸어본다.


3월이 끝나간다.

새봄의 향기가 꽃바람을 탄다. 

우려낼 것 없는 일상이지만 봄빛의 어울림으로    화사해진다.

노랑빛과 분홍빛의 고운 그 바람 속으로 방해받지 않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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