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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tos Jan 12. 2019

나의 인생 화단

당신의 화단에는 무엇이 있나요?

영국은 아파트 보다도 하우스가 많다. 특히 내가 어학연수를 했던 시골 동네에는 모든 집이 하우스 형식이었다. 보통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보이는 프런트 가든과, 오로지 자기만 볼 수 있는 백 가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드닝을 취미로 하는 영국인이 많다고 들었다. 내 홈스테이 파더 또한 4시 혹은 5시 정도에 퇴근하고 저녁이 되기 전까지 가든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보기에는 대체 매일 무엇을 하나 궁금할 정도로 별로 예쁘지는 않은 가든이었다. 그렇지만 아저씨는 거의 매일 음악을 틀어놓고 정원에서 꽃도 심고, 뚝딱뚝딱 무엇을 만들기도 하고, 손녀를 위해 그네나 트램펄린을 설치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바베큐를 준비하기도 했다. 두서없이 보여도 자기 마음대로 꾸며놓고 자랑스러워하는 홈스테이 파더도, 그가 꾸민 가든도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새벽 해 뜰 때쯤 집에 돌아가던 중 문득 집집마다 다른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다 다른 정원이 있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 제멋대로 꾸며놓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사람들 본다고 더 예쁘고 깔끔하게 해 놨을 것이다. 뭐 어디 영국산 장미도 심고, 누구 연예인이 샀다는 조그만 분수도 놓고, 과시용 나무도 한그루 놔야겠고. 결국에는 서로 경쟁하듯 꾸미다가 다 비슷비슷해지지 않았을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인생은 남들과 누가 더 빨리 도착하나 경쟁하는 레이스라기보다는 나의 취미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경험했었던 것, 배운 것, 나의 친구들, 가족, 연인, 나의 일상 등으로 이루어진 나의 화단을 묵묵히, 최선을 다해서 가꾸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조금 두서없을 순 있어도 내가 언제든지 자랑스럽게 이 꽃은 왜 여기 심었고, 이 나무에는 어떤 추억이 있으며 이 모래는 어디서 퍼왔고 이 꽃은 언제 피었는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애정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화단을 만들고 싶다.


그렇다면 가족과 친구, 연인은 내 정원 어디에 있을까. 가족의 존재는 내 정원의 흙이다. 내 정원은 기후라는 외부의 영향도 받지만 흙이라는 내부적 영향도 받는다. 내 정원의 기초이자, 모든 것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또한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어떻게 작물을 심고 가꾸고 정원을 꾸미는지 보고 배웠다. 친구들은 내 정원에 놀러 오는 손님들이다. 우리는 각자 각자의 화단을 꾸미다가 이따금씩 서로의 정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안부도 묻고 자랑도 하고 축하도 하고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평생 보장된 손님은 아니다. 이들은 내 화단을 구경 오다가도 또 언제 안 올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 동생은 내 정원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어떻게 바뀌어왔고를 평생 지켜본다고 보장된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것이 동생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이유 중 하나다. 남자 친구는 마치 VIP 손님처럼 내 화단을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속속들이 투어 받을 수 있다. 또한 가끔은 내 가드닝을 함께 도와주기도 한다.


가끔은 지나가며 내 정원을 들여다볼 사람들 때문에 더 공들여 눈에 보이는 부분을 꾸며놓기도 한다.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미의 기준에 맞춰 내정원을 꾸미려는 건 아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써, 사회의 기준도 참고할 필요는 있다. 이것이 초대하지 않은 사람도 볼 수 있는 프런트 가든과 백가든 두 개가 있는 이유가 아닐까. 내 은밀한 취향이라던지, 나의 과거 연애사, 나의 샹년 기질이나 내 말 못 할 비밀들은 내 백 가든에 있는 창고에 넣어두었다. 이러한 것들의 발란스는 내 정원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가족이 없다면 나는 가드닝을 잘 배울 수 없고, 토양이 비옥하지 않다면 작물을 피우는데도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힘든 외부적 요인에 내 화단은 죽을 수도 있지만, 또 너무 좋은 환경만 지속된다면 내 작물들은 튼튼하게 자랄 수 없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더 나은 가드닝 스킬을 배울 수도 있다. 동생이 없다면 친구도 남편도 줄 수 없는 평생 손님 방문 보장이 없음에 조금은 더 외로워질 테고, 아무리 가든을 잘 꾸몄어도 이것을 공유할 친구나 남자 친구가 없다면 가드닝의 재미가 없고, 또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없는 집이라면 프런트 가든과 백 가든의 발란스를 잘 못 맞출지도 모른다. 따라서 모든 것의 발란스는 내 가드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현재 내 정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현재 대학이라는 나무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너무 비싸고 돈이 많이 드는 나무라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너무너무 억울할 것 같다. 또한 이 열매를 팔아야 내 가드닝에 필요한 물품도 살 수 있다. 예전에 폈었던 검도, 피아노 꽃은 죽었고, 수영, 자전거, 스키, 플루트 등은 선인장이라 물을 주지 않아도 엄청난 생명력을 보여준다. 외국생활을 시작 한 뒤 취미 꽃밭이 너무 죽은 거 같아서 올해부터 다시 잘 가꾸기로 결심했다. 시작만 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승마와 헬스를 다시 진지하게 시작해 보려고 한다. 올해는 좀 더 정성스럽게, 건강하게 먹기로 결심해 스파이럴라이저라는 좋은 도구도 구입했다. 아무리 먹기 싫은 야채도 이 도구로 면처럼 뽑아서 먹으면 내가 싫어하는 당근도 먹게 해주는 마법 같은 도구다. 생일 선물로 친구에게 레깅스계의 샤넬이라는 룰루레몬 레깅스도 받았고,  텀블러 사용하기라는 목표가 생겨서 핑크색 귀여운 콕시클 텀블러도 하나 구매했다. 무엇보다 반년 남짓 남은 졸업까지, 대학에서 논문만큼은 성적과 관계없이 나 스스로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도록 내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해나가고 싶다. 여름에 한국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 반년 동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정말 예쁘게 가꿨어! 라고 자랑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해야지.


우리 할아버지의 유일한 소원은 죽기 전에 내 화단에 심은 나무에서 나온 작물들을 판 돈으로 산 조그만 선물을 하나 받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막내딸 같았던 내가 혼자 자립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소원을 들어드리기에 나는 너무 느리게 왔다. 그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정말 후회할 일 중 하나지만, 그래도 나중에 만나면 오래오래 내 80년 혹은 100년 동안의 화단을 자랑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사는 것이 내 가장 큰 목표이다. 할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게, 느리지만 확신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가꾸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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