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Sep 14. 2020

육퇴 후 두 시간

엄마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10시 40분이다. 초4, 초1 아들 둘이 모두 잠에 들었다. 이제부터 나의 자유 시간이 열린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나는 마흔, 꽃다운 나이다. 마흔에 무슨 꽃이겠냐 하지만 나는 이제야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 그렇게 접어두기만 했던 나도 몰랐던 나의 욕심을 마음껏 꺼내보고 싶다. 그렇게 꽃 피우고 싶은 마흔이다. 그런데 망했다. 종일 집에 있는 것도 힘든데 아이 둘까지 모두 집콕이다. 


"엄~~마, 엄~~마, 한 번만 해봐. 엄~~마"


이제 겨우 입술이 떨어진 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엄마 한 번 불러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18개월이 되어서야 겨우 엄마 소리를 했던 두 아들들은 지금은 5분마다 엄마를 부른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할머니는 네 엄마 닳겠다고 그만 부르라 할 정도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엄마 소리가 환청같이 내 귓가를 계속 맴돈다. 그게 환청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아이들이 온라인 학습과 각자의 과제를 하는 오전. 나는 온전히 내가 되기 위해 커피를 큰 컵에 가득 타서 방으로 들어온다. 나를 위해 마련한 나만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책을 펼라치면 어김없이 엄마를 부른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이내 온전히 내가 되기를 포기한다. 점심을 먹이면 아이들은 게임을 시작한다.


"딱 한 시간만이야"


나는 아이들에게 게임시간을 엄포하지만 내 속의 다른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딱 다섯 시간만.'

그렇게 다섯 시간 아니 두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있고 싶다. 내가 유일하게 엄마 소리를 듣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시간이다. 잠깐 나만의 생각과 사색에 잠겨 있다 보면 아이들도 게임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한 나는 괜스레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린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린 한 시간. 그 시간이 지나도록 게임 삼매경인 아이들에게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허무해 부리는 짜증이다.


그래 내일부터는 새벽에 일어나야겠어. 조용히 새벽을 즐기는 거야. 아이들이 깨기 전에. 그 다짐은 매일 새벽 울리는 알람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끝난다. 마흔에서 네 해를 더 보낸 남편은 이제 새벽잠이 없어졌다는데, 삼십 년 가까이를 새벽 인간으로 살았던 나는 지금에서야 새벽잠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게 바로 만개하기 직전의 봉오리 꽃이 모습이라고 애써 핑계를 대본다. 작전을 바꿨다. 육아 퇴근 후 두 시간. 그 시간을 온전하게 내 것으로 써보기로.


사실 새벽에 일어나 무언가를 해보려 해도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치 않다. 새벽녘 꿈을 꾸었다며 찾아오기도 하고, 화장실을 갔다가는 자기 침대가 아닌 안방 침대로 올라오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젠가는 잠이 든다. 그게 9시든, 10시든, 11시든. 아이들이 잠이 든 후 두 시간은 참 고요하다. "엄마"를 부르는 환청도 멈춘다.


육퇴 후 두 시간이라고 한정했지만, 그 시간은 세 시간도, 네 시간도 되곤 한다. 언제나 꼿꼿하게만 보이려고, 낮에 침대 위에서 뒹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나다. 하지만 지금은 낮에 침대에 무거운 눈과 함께 몸을 눕힌다. 아이가 잠든 후 나의 시간을 온전한 정신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밀린 드라마도 본다. 필요하면 맥주나 와인 한잔을 함께 하기도 한다. 오늘은 이 소중한 시간에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