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이지만 노동절에 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아직 많습니다. 노동절에 쉰다니, 그런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노동절에 일해도 괜찮으니 임금체불되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일자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직 모든 노동자에게 당도하지 않은 이른바 ‘근로의 권리’처럼 노동절도 아직 모든 노동자의 기념일이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32조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한 것이 바로 근로기준법입니다.
근로기준법의 규제가 너무 심해서 자유로운 노동을 제약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할 수 있을 때 자유롭게 마음껏 일하고, 쉴 때 푹 쉬자는 솔깃한 얘기입니다. 몇 년 전 연장근로시간 한도 12시간이 엄격하게 적용되기 시작하자, 제가 일하던 상담소에는 노동자들의 항의 전화가 꽤 있었습니다. 휴일근로와 연장근로를 하지 못해서 임금이 줄어들게 생겼다고 내 임금 책임질 거냐고 항의하는 전화였습니다. 맞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만 규율하고 있지 않습니다. 노동자도 규율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만큼 시간외근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월급도 더 못 벌게 만듭니다. 왜인가요? 그런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데 보내는 시간은 곧 삶이고, 삶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에 따른 종속노동도 보호해야겠지만, 제아무리 노동자 자신의 의사에 따른 자유로운 노동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노동은 법률로써 규율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이 말하고 있는 근로조건 법정주의입니다. 장시간 근무 후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는 젊은 청년 이주노동자, 뇌경색, 뇌출혈 등으로 쓰러지는 노동자가 없도록 할 책임이 우리 사회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이른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또는 노무제공자)들의 근로조건을 정하고 있지 않고, 최저임금법도 이들을 살피고 있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농업/어업/축산업노동자들과 감시단속노동자들의 휴일, 휴게, 근로시간을 규율하고 있지 있습니다.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주휴, 연차, 퇴직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은 55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헌법이 말하는 근로조건 법정주의는 아주 좁디 좁은 ‘근로자’들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으며, 이보다 더 넓은 범위의 노동자들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치 노동절에 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사람의 권리인 근로의 권리가 아직 모든 사람에게 당도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 위 글은 부산노동권익센터 이슈페이퍼 14호(2023. 4.)에 실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