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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케이 Jan 11. 2019

[리뷰] 자연스레 녹여낸 <그린북>, 스며들다.

영화 감상기 #001


"You never win with violence. You only win when you maintain your dignity." - Don Shirley


맨 처음 <그린북>을 접했던 건 모 멀티플렉스의 기획전에서였다. 그 기획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유일한 미개봉작이었던 이 영화와 <가버나움>이었는데, 그중 이 영화에서 비고 모텐슨마허샬라 알리라는 두 쟁쟁한 배우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확신에 가득 찼다.


아, 이 영화는 재미있겠다.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 스틸.

물론 플롯 자체가 흥미로운 영화는 절대 아니었다. 배경도, 성격도, 그 무엇 하나 같을 것 없는 두 주인공이 엎치락뒤치락 각종 사건 사고는 다 겪으며 우정을 키워 나가는 이야기는 이미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언터쳐블 : 1%의 우정>에서도 다루었던 소재이며, 후자는 할리우드 리메이크판도 존재한다 (원작은 흥행 기록이며 수상 내역이며 아주 휩쓸고 다녔는데, 리메이크 판은 비교적 임팩트가 덜 했던 모양이긴 하다). 그 외에도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영화'는 셀 수 없이 많고,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소개도 그렇게 새롭게 보이진 않는다. 다만 좀 이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감독인데, 그린북을 맡은 감독은 바로 피터 패럴리라는 인물이다. 동생 바비 패럴리와 함께 패럴리 형제로 유명한 이 감독은 사실 얼핏 보기에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룰만한 감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린북 이전 그의 이름은 사실 원초적인 코미디, 한 발 더 나아가서 일각의 표현을 빌리면 저속하고 교양 없는 코미디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유명한 대표작을 꼽으라면 <덤 앤 더머>,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그리고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정도. 그런 감독이 인종차별을 다루다니, 뭔가 흥미로움과 동시에 상당히 불안하지 않은가.






그 영화가 76회 골든글로브에서 무려 3관왕을 거머쥐었다. [출처 : WSTM, Photo by Jake Coyle]


1월 7일, 즉 한국 정식 개봉 불과 이틀 전에 이뤄 낸 쾌거 (그리고 필자가 시사회로 이 영화를 만난 날이기도 하다). 각본상, 남우조연상, 그리고 작품상(뮤지컬 코미디 부문) 총 3개의 상을 휩쓸었다. 이쯤 되면 이제 정말 영화가 궁금해 질 것이다.






비고 모텐슨이 연기하는 토니 발레롱가, 일명 떠벌이 토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서, 클럽 코파에서 경호원으로 일하던 중 터뜨린 사고로 인해 정직 처분을 받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러던 중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하는 돈 셜리 박사의 남부 투어 로드매니저 겸 보디가드 일을 제안받게 되고, 당장 가족의 생게를 걱정해야 했던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 <그린북> 메인 포스터

지난 몇십 년간, 인종차별을 소재로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는 '인종 간의 대립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왔다. 최근작을 예시로 들자면 겟 아웃이 어마 무시하게 그랬고, 여기에 성별 간의 대립구도 및 고정관념 뒤집기를 추가한 히든 피겨스가 그랬으며, 헬프, 말콤 X, 레이 등이 그래 왔다. 이것이 타 작품과 그린북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그래서 그린북이 그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나온 피터 패럴리 감독은 본인 대표작들의 특성을 한가득 살려, 그린북을 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영화가 선보인 팽팽한 대립구도고정관념 뒤집기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대신,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를 통해 탄생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조금 더 간단하고, 인간적인 메시지를 던져준다. 포스터의 말을 빌리자면, 두 남자가 사는 두 개의 세상은 사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하나의 세상이란 것. 정제되지 않고 직관적인 일명 '저속한 코미디' 특화형 감독 본인의 스타일이 빛을 발한 케이스가 아닐까. 이 주제를 다룰 때 이 이상 단순하고 간결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니까.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된 '그린북'은 당시 흑인들이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레스토랑과 호텔들을 모아놓은 여행 책자의 이름이었다. 단순한 입장 거부를 넘어 언어폭력, 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당할 수 있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책자였으며, 영화 속에선 이들이 길 위에서 육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말 그대로의 '가이드북'과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돈 셜리와 같은 이들에게는 선을 긋고, 발목을 잡는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돈 셜리라는 캐릭터의 배경, 감정 변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 그리고 선 밖을 향한 갈망에 주목하는 것이 이 영화를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 지점은 비단 인종차별만이 아닌 모든 차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에. 덤으로 마허샬라 알리 배우의 연기는 정말 탁월하다.


지난 월요일 시사회를 갔다 온 후 바로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 영화 <그린북>은 1월 9일, 지난 수요일 정식 개봉했다. 어서 빨리 영화관으로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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