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기 #002
下向くな。前だけ見てろ。」(아래 보지 마. 앞만 봐.) - 미지의 청년
'괴물의 아이' 이후로 거진 3년 만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 <미래의 미라이>가 오는 16일 수요일 한국에 정식 개봉한다. 평소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던 필자로서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던 팬들로서도, 나아가 영화관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똑같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도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2월 28일, 필자는 운 좋게도 한국을 찾은 감독 호소다 마모루와 함께 한 GV에 참석하여 영화를 미리 만나보았다.
기차를 좋아하는 4살 소년 '쿤'에게, 드디어 바라던 여동생 '미라이'가 생겼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엄마에게 버선발로 달려 나갈 만큼 여동생을 기대했던 쿤이었지만, 둘째가 생기면서 새롭게 가족을 꾸려나가야 하는 엄마와 아빠의 관심이 이내 자신으로부터 여동생 미라이에게 옮겨가게 되고,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에 익숙했던 쿤은 이것이 마땅치 못했다. 쿤이 발산하는 질투,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더해져 쿤의 엄마와 아빠는 일과 가족관계, 육아에서 오는 모든 스트레스를 짊어진 채 고군분투하게 되고, 점점 더 쿤에게 소홀해지게 된다. 유일한 친구인 강아지 윳코와 함께 남겨진 쿤은 바로 그때, 미래의 미라이를 만나게 된다.
* 이어지는 내용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호소다 감독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바로 '판타지'일 것이다. 이번 작품 역시 그간 호소다 감독의 작품에서 익히 봐 왔던 '변신'에 '시간 여행'이란 소재가 더해졌다. 포스터와 예고편만 봐도 아마 모두들 어렴풋이 이 영화가 성장기를 다룬 것이 아닐까 하고 예상은 하겠지만, 아마 이야기의 구조가 가장 비슷한 예로 들 수 있는 건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도널드 덕을 주인공으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 스크루지의 이야기는 간단히 말해 돈만 밝히고 남을 도울 줄 모르는 노인 스크루지가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스크루지는 유령을 만나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을 만나보게 되는데, <미래의 미라이> 속 쿤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강아지에서 갑자기 빈티지한 멋(?)이 있는 사람이 된 윳코와 함께 현재를, 10대가 된 미라이로부터 미래를, 그리고 시간 여행을 통해 가족의 과거를. 이 과정 속에서 쿤은 '아, 어른들도 상처 받고 실망하는구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미라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훗날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그리고 가족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미래를 당당하게 마주할 준비를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다 큰 어른 관객들(적어도 필자)에게도 가슴속 깊은 어딘가에 울림을 선사한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미래의 미라이>가 단순하고 보편적이면서도, 근 1년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중 가장 특별할 수 있게 만드는 점이 아닐까 한다.
작화와 성우 연기. 이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호소다 감독의 모든 작품들이 그렇듯 이번 작품 역시 작화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 4살 배기 쿤에게 나이에 걸맞은(?) 상당히 큰 머리를 부여하고 걸음걸이를 뒤뚱뒤뚱거리게 한 것은 4살 배기의 행동 양식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아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만화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묘사가 아닐까 하는데, 이 부분은 호소다 감독이 GV에서 말하길 본인의 자녀들에게서 많은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그 외 본인의 자녀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온 부분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예로 미라이의 손 부분에 난 점이라던가). 아주 미미한 부분이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꽤나 인상적인 부분.
흔히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이야기할 때 비판을 하면 항시 나오는 단어는 '붕괴'이다. (의도한 연출이 아님에도) 캐릭터의 눈코입 배치가 어느 순간 이상한 비율이 되었을 때, 팔다리가 갑자기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때, 원근법이 어색할 때 등 다양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미래의 미라이>에선 일부 의도된 작붕(?)이 일부 보인다. 그 예가 바로 미래의 미라이가 쿤을 간지럽힐 때의 저 표정. 스틸컷에서는 감을 잡기가 어려울 수 있으나, 해당 시퀀스에서 쿤의 표정은 상당히 과장되고, 어찌 보면 전체적인 작화 분위기에서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도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잠깐의 위화감을 지나 놀랍게도 자연스레 녹아드는 것은, 앞서 말한 듯 가장 만화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묘사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 아이들을 간지럽힐 때 그 작고 귀여운 얼굴들에 빨갛게 달아올라 주름이 한가득 잡혀 빵 터지는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아주 잠깐 섞이지 않지만 참 묘사가 잘 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성우 연기. 영화를 만나보기 전, 필자는 사실 캐스팅에서 상당 부분 기대를 하고 갔었다. 쿤의 성우가 <너의 이름은.>의 미츠하 역 카미시라이시 모네의 동생 카미시라이시 모카라니. 미라이의 성우가 <립반윙클의 신부>를 보고 흠뻑 빠져버렸던 쿠로키 하루라니 (가만 보니 쿠로키 하루는 이걸로 3 연속 호소다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아빠 성우가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일명 '니게하지')의 주인공 호시노 겐이라니. 거기다가 후쿠야마 마사하루까지?
필자는 애니메이션에 가장 적합한 목소리는 전문 성우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너의 이름은.> 더빙 사태(?)만 봐도 그러하므로. 하지만 배우/아이돌 캐스팅도 때론 작품에 신선함을 불러오고, 예상외로 소위 말하는 '초월 더빙'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어 이에 극도로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기도 하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주먹왕 랄프> 1편의 정준하가 있겠고, 일본에서는 호소다 감독의 이전 작품들 대부분이 그렇다. 허나 목소리 연기는 '이건 꼭 봐야 한다'라는 결심과 기대에 2% 부족한 결과물이었다. 아마 애니메이션 작품을 많이 봐 온 사람, 혹은 일본어 특유의 억양과 뉘앙스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필자와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미시라이시 모카가 연기한 소년 '쿤'은 극에 몰입하기에 '매우 좋지 않은'(...) 톤이었다. 소년인 것 같기도 소녀인 것 같기도, 4살인 것 같기도 24살인 것 같기도, 소년의 귀여움과 앙칼짐을 살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역할이 하필이면 가장 대사가 많은 주인공 '쿤'이라는 점은 상당히 안타까운 부분. 캐스팅이 아닌 오디션을 통해 선정된 성우인 만큼 카미시라이시 모카는 적격자였을 터.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번 <미래의 미라이>는 어쩌면 한국어 더빙판, 혹은 영어 더빙판으로 즐기는 것이 조금 더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어 더빙판 성우진도 김율, 김하루, 신용우에 김보영 성우까지 상당히 호화로운 데다가, 영어 더빙판에도 유명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존 조와 대니얼 대 킴이 참여한다고 하니, 다른 이들의 더빙판 리뷰를 기대해본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달라지겠으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확실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성우 연기 외에도 쿤 외의 캐릭터들이 조금 더 입체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 등이 있으나, 단점의 경우는 가능한 한 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점만 쓰고자 했다. 3년 만에 만나보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그 자체가 영화를 관람할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하고, 감독 특유의 색깔과 상당히 섬세한 작화 표현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가족과 함께 보기에도 좋고, 연인 간에도 좋겠으며, 가장 추천하는 것은 혼자 오롯이 영화를 즐기며 호소다 감독의 세계에 푹 빠져보는 것인 영화 <미래의 미라이>는 오는 16일 수요일에 개봉한다.
P.S. 맨 첫 줄 인용된 대사의 주인공은 사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누군지 적어버리면 대놓고 스포일러가 되니까 미지로 남겨뒀을 뿐. 참고로 이 분 목소리가 후쿠야마 마사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