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기 #004
"일 들어왔어." - 콜라이 (혹은 니콜라이)
정식 개봉작의 러닝타임이 135분이다. 어찌 보면 길고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인데, 이 시간은 원래 최초 공개되었던 영화보다 약 15~20분이 잘려나간 시간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자국인 프랑스에서는 무삭제판으로 개봉했다던가, 한국에서는 못 보는 다른 버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데, 이쯤 되면 생기는 '왜 잘려나갔을까?'라는 물음은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말끔히 사라진다. 아, 차마 더는 눈 뜨고 마주할 수 없어서 괴로울까 봐 그랬구나라고.
적고 나니 상당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서론이다. 하지만 절대 나쁜 의미가 아니니 끝까지 읽어봐 주길 바란다. 오늘도 두서는 아침에 물에 말아먹고 왔다.
잔인한 장면이나 점프 스케어(일명 '갑툭튀')를 본능적으로 직감해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 필자가, 영화를 보면서 눈 뜨고 볼 수 없어 괴로운 경우는 많이 한정된다. 당장 떠오르는 건 만듦새가 정말 처절하게도 못나서 괴롭던가, 아니면 영화에 격하게 몰입하여 주인공에 심하게 공감해서 괴롭던가 두 가지의 경우인데,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영화 <더 서치>는 후자에 속한다.
영화는 1999년 일어난 제2차 체첸전쟁을 다루고 있다 (몇 번의 검색만으로 간단히 전쟁에 대한 배경은 찾아볼 수 있으니, 이번 글에서는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 한 러시아 군인의 1인칭 카메라 시점으로 시작하는 영화 <더 서치>는 초반부터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대테러 작전(이라는 러시아 군 측의 주장)' 아래 체첸의 한 민간인 가족을 농락하고, 처참하게 살해하는 모든 과정을 비디오카메라로 담으며 시시덕거리는 장면은 벌써부터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기 힘들다. 다 큰 어른도 이 정도인데, 이 모든 것을 창 밖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4살 배기 꼬마 하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본인의 가족이 살해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자신도 곧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하지는 이제 겨우 18개월이 된 동생을 데리고 멀리 도망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4살 꼬마가 어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오롯이 동생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하지는 이내 민간인 가족의 집 문 앞에 동생을 버리게 되고, 어찌어찌 피난민 무리에 합류하여 대피소에 도착한다. 난민 캠프 원장 헬렌과 EU 인권 담당 캬홀을 만나서도 동생을 버렸단 죄책감에 입을 열지 못하는 하지는 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 <더 서치>는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갈 곳을 잃은 하지가 이후의 길, 즉 자신의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두고 온 동생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며, 영화라는 창문을 통해 그 날의 아픔을 되짚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마지막 '서치'를 위해 영화가 선택한 것은 바로 당사자들의 증언과, 전쟁을 남기는 기록의 방식에 주목하는 것. 전쟁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에서 항상 공통적으로 그리는 부분은 바로 '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한가'이다. 같은 인간끼리 칼과 총을 맞대며 무자비하게 서로를 살해하는 과정, 파괴되는 가족과 도시, 수많은 눈물과 피를 흘리며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 등등. 그러한 과정을 매크로 레벨에서 담아낸 영화들을 '2차원적이다'라고 표현한다면, 영화 <더 서치>는 그 아픔을 간직한 이들의 목소리와 이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왜 중요한지, 즉 마이크로 레벨에서 담아내 비교적 입체적이라 표현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중간중간 꽤나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캬홀이 통역을 대동하여 피난민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들은 사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가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필자는 바로 이것이 감독의 의도가 비치는 중요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캬홀을 포함해 하지, 헬렌, 콜라이 등의 등장인물은 모두 당사자임과 동시에 관찰자이기도 한데, 그 관찰 과정은 최종적으로 관객들에게 닿는다. 매크로가 아닌 마이크로 레벨의 생생한 증언들에 오롯이 집중하여 배우들의 목소리로 관객에게 들려주는 것. '전쟁이 일어났고 몇 명이 죽었다'라는 형식의 문자와 숫자로 기록되는 것이 아닌, 멀리까지 닿을 수 없었던 목소리들과 그 증언, 고통을 이겨낸 증인들에 주목하게 하고, 그 아픔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를 포함해 피난민들이 겪는 모든 과정을 눈에 담다 보면, 누구라도 한계를 한 번쯤은 느끼게 될 것이다.
캐릭터들이 갖는 입체감 역시 주목할 만하다. (1) 죄책감에 짓눌려 자신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하는 하지는 입을 열게 될 것인가, (2) 전쟁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 깊이 슬퍼하고, 관심을 갖게 만들고,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본인의 신념과 계획과는 달리,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이 힘든 캬홀은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찾을 것인가, (3) 난민 캠프 원장이라는 '너무나도 훌륭하고 이상적인' 일을 하면서도 예상 밖으로 현실적인 면모를 꾸밈없이 드러내며 '완성형'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헬렌은 이 체첸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4) 개인적으로는 가장 클리셰 적임에도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콜라이(영화에선 니콜라이라고 나온다)는 러시아 군에 징병되어 무력 앞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까지 (특히 본 글의 맨 첫 줄 콜라이의 저 대사를 영화 속에서 발견한다면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들을 좇다 보면 다양한 감정을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되는데, 각자의 변화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우며 최종적으로는 관객의 윤리적 스탠스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분명, 각자 몰입하여 보게 된 캐릭터가 다를 것이고, 이들을 바라보는 입장 또한 제각각일 것이다.
체첸전쟁은 하지, 캬올, 헬렌, 그리고 콜라이 중 누구의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
잘려나간 부분들은 아마도 전장이라는 공간 속 개인에 집중하여 이들이 겪는 견디기 힘든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는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보여주는 과정 속 사라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그마저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힘들었다. 잔인하리만치 현실적인 묘사들이 가슴 한 켠으로 쑤시고 들어오는 영화 <더 서치>는 17일, 지난주 목요일 개봉하였다. 상영관이 수도권에서조차 그리 많지 않아 관람이 쉽지 않은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번은 보길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