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은 일이 허락하지 않아서 수영을 할 수 없다. 작가인 그는 소설을 쓰는 데 집중하기 위해 친구 펠릭스와 함께 펠릭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별장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출판사 사장 헬무트를 만나 완성된 원고를 평가받기로 했다. 펠릭스는 예술학교 지원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더니, 자꾸만 "수영하러 갈래?"라고 묻고 바닷가로 놀러 나가버린다. 레온은 펠릭스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별장은 이중예약이 되어 있었고, 펠릭스는 별장 주인의 아들로서 기꺼이 손님 나디아에게 큰 방을 내어줬다. 레온은 헬무트와 약속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조급하다. 예민하다. 작은 방을 펠릭스와 같이 써야 하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용한 곳에서 글에 집중해야 하는데, 별장에 머무는 동안 주변에는 온통 방해꾼들뿐이다. 심지어 나디아는 낯선 남자 데비트를 데려와서 밤 중에는 소음으로 잠을 못자게 만든다. 레온은 그런 나디아에게 호기심을 갖지만, 그저 엿볼 뿐이고 수줍게 말을 건네보면서도 마음을 꽁꽁 감춘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거나 드러낼 여유조차 없다.
고등학생 시절 나도 무엇 하나 허락받지를 못했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어 각 시간에 해야 할 공부를 계획해두었고, 이를 끝마치지 못하면 조바심을 내곤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할 공부도 정해두었다. 종종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수다를 떠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러려면 마음속으로 공부 스케줄을 조정해서 해야 할 공부를 모두 끝마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해야 했다. 그때 MBTI 검사를 해봤다면 J가 아무리 못해도 90을 넘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매일 연락을 하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수능을 앞두고서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친구와 거리를 두었고 결과적으로 상처를 줬다.
계획이 틀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몇 년이 지난 뒤였다. 대학교에서 참 멋진 동기들을 많이 만났다. 외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멋있었지만, 무엇보다 시험 전날까지 술을 진탕 마셨는데 좋은 성적을 받는 능력자들을 목격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이걸 뭐 붙잡고 있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구나. 시험을 신성시하여 마치 외부와 단절된 순백의 환경에서 온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강박이 스르르 풀어졌다. 온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다고 내내 집중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해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건강할 텐데.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시간마저도, 공부가 허락하지 않아서 다른 활동을 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레온을 보면서, 대다수의 관객들이 조바심 때문에 여유를 갖지 못했던 과거의 한 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거나, 몇 주, 몇 달 단위로 주어지는 점수와 등수에 긴장하지 않을 학생이 어디있겠는가. 학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취직을 하더라도 당장 적응하느라, 회식을 가느라, 승진에 밀리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느라 바쁘다. 친구들도 다 바쁘다. 저녁에 녹초가 되어서 쓰러져 자면 하루가 끝나는데 대체 언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 수 있겠는가. 대체 언제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겠는가.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바닷가가 코앞에 있는데도, 레온은 스스로를 좁은 별장에 가둬두기를 택했다.
<아이스크림 판매원과 문학 박사과정생>
레온은 글을 쓰다가 잠깐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다. 바닷가에 가보니 별장에 같이 묵고 있는 나디아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지만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여유는 없으므로, 먼저 별장으로 돌아가겠다며 나디아의 호의를 뿌리친다. 돌아가는 길에 쏟아지는 졸음을 못 참고 벤치에 잠깐 앉아 졸고 있었더니 어느새 일을 끝낸 나디아가 자전거를 타고 레온 앞을 웃으며 지나간다. 레온은 나디아에게 자신이 완성한 글을 봐주겠냐고 묻고, 나디아는 흔쾌히 받아준다. 레온은 "지난 번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줬더니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재미 없다고. 환경미화원이 뭘 알겠어."라고 덧붙인다. 나디아는 그저 미소만 짓는다. 레온은 금방 글을 다 썼다며 나디아에게 원고를 보여줬다. 나디아는 다 읽고선 굳은 표정으로 돌아와 "스스로도 알죠?"라며 원고를 돌려준다. 화가 난 레온은 나디아가 떠난 뒤 원고를 던진다. "아이스크림 판매원 주제에!"
레온의 원고를 평가하러 출판사 사장 헬무트가 별장으로 찾아왔다. 헬무트는 레온을 오래 봐왔고 그의 성과가 열정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안쓰러워 한다. 언제나 그랬듯 헬무트는 레온을 앉혀두고 원고를 소리내어 읽어보는데, 낭독은 자꾸만 중단되고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읽었던 부분을 반복하게 된다. 그날 저녁 헬무트는 나디아의 제안에 따라 나디아, 데비스, 펠릭스, 그리고 레온과 함께 별장에서 식사를 한다. 서로를 인사하고 소개하면서 헬무트는 나디아가 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자신과 문학적 취향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붉게 노을 지는 별장의 앞뜰에서 나디아가 하이네의 시 <아스라>를 천천히 낭독한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이다. 클로즈업 된 레온의 얼굴에는 그의 놀라움과 배신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왜 문학 박사과정생이라고 미리 말하지 않았어?" 나디아는 말한다. "나에게 물어본 적이 없잖아."
친구가 최근 새 애인을 만났다. 마침 또 명절 연휴였던 지라 부모님의 질문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과 싸웠다고 했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키는 얼마나 큰지. 부모님은 왜 그런 것만 따져보고 그만두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그치. 마음 고생 많이 했네. 부모님께서 애인을 직접 만나볼 수는 없고 또 알 수 있는 정보가 그것뿐이고, 부모님 눈에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지라 누구를 데려다 놔도 아쉬워하실 거야. 그렇게 달래고 넘어왔다. 부끄러워서. 사람 앞에 붙은 그런 라벨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나도 친구의 부모님이 던지셨던 바로 그 질문들을 먼저 떠올렸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모습,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이리라는 믿음은 공허하다. 사람은 살아 온 시간만큼이나 긴 악보를 써온 것이고, 겨우 그중 몇 마디를 연주해놓고서는 그 곡을 모두 이해했다며 평가할 수는 없다. 수많은 악기가 있어야 완성할 수 있는 곡의 악보 일부분을 바이올린으로 몇 번 켜봤다고 해서 그 곡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어파이어>에서 나디아의 애인으로 등장했던 데비트는 해안 인명구조원이다. 레온은 그를 '안전요원'이라고 불렀다가 데비트가 '인명구조원'이라고 정정해주는데도 그게 그거 아니냐며 비꼰다. 상대방이 지금의 모습을 이루기까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왔는지 관심을 갖지 않고,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판단해버린다면 아름다운 음악 한 곡을 더 감상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일 테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데비트는 영화 초반부에 나디아, 펠릭스와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나디아와 처음 만난 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펼쳐놓는다. "우리는 인명구조원 연수 과정에서 만났어. 난 이미 결혼을 했지만 나디아와 식사를 하고 술을 한 잔 하고는 와이프와 자녀들이 나간 사이에 내 호텔 방에서 술을 더 마시기로 했지. 우리가 앉아 있는 사이에 나는 누가 문을 두드리지 않기를 바랐어. 그런데 꼭 하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어떤 낯선 남자가 카페트를 팔겠다고 온 거야. 필요없다고 내보내려고 하는데 나한테 동성애자들이 좋아한다는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더라고. 그 옷이 지금 이 옷이야. 열 번을 빨았는데도 스프레이 냄새가 안 없어져. 근데 알아? 다 거짓말인 거." 펠릭스는 아직도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겠다며 데비트에게 다가가더니, 데비트와 키스를 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액자식 구성에서 내화와 외화가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할 때 느껴지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복수의 수단을 거쳐 전달되는 것인 만큼 아무리 진실하더라도 장식이 덧붙여질 수밖에 없다. 그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 그 이야기에 담긴 상징과 의도, 그 이야기와 그것이 전달되고 있는 상황 사이의 관계가 핵심이다. 데비트의 이야기는 펠릭스와의 관계를 암시하면서, 또 데비트가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인지를 보여준다. 데비트의 이야기는 헬무트가 반복해서 낭독하면서 그 지루함을 못 견뎌했던 레온의 이야기와 대비된다.
내화는 외화라는 포장에 담겨서, 날 것 그대로였다면 진실성을 의심받았을 내용을 훨씬 설득력 있고 감명 깊게 전달한다. 청자는 그 이야기와 거리를 두게 되므로 이야기의 진위에 대한 의심이나 부도덕한 내용으로 인한 불편한 감정 없이 거리낌없이 즐길 수 있다. 데비트의 위 거짓말도 청자로 하여금 윤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할 내용이지만, 그저 꾸며낸 이야기로 포장됨으로써 익살스럽고 재치있는 일화가 된다. 또 나디아는 레온의 눈을 바라보며 시 아스라를 천천히 읊음으로써 나디아는 느끼고 있지만 레온은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하는 둘 사이 사랑의 감정을 건드린다('사랑을 하면 죽는 아스라 부족입니다'). 이야기로 포장된 메시지는 보다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왜 나에게 고백하지 않는 거냐'고 직설적으로 말할 때보다 훨씬 강렬하다. 친구가 언젠가 작은 일에 많은 힘을 써서 허탈해하다가 아버지로부터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데, 거기서 사자는 조그마한 사슴을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해 달려 온 힘으로 잡더라."라는 말을 듣고 반성했다는 취지의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일상에서도 이렇게 진심이 이야기로 포장되어 전달될 때에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고 느낀다.
웨스 앤더슨이 실존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액자식 구성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듯이, <어파이어>의 결말부에서는 별장에서 있었던 짧지만 강렬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결국 레온의 소설 속 이야기였음이 드러난다. 관객들은 그동안 들었던 내레이션이 레온이 원고를 낭독하는 목소리임이 드러나자, 긴장된 마음을 풀고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결국 별장에서의 일들이 사실인지도 모호해진다. 한 여름밤의 꿈이 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도 관객들의 해석에 맡겨진다. 레온이 자신을 성찰하며 써낸 소설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한편 극중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레온은 헬무트를 통해서 자신의 형편없는 소설 원고를, 나디아는 시 아스라를, 데비트는 자신과 나디아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도 나디아에게는) 두 번 말한다. 같은 사람으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같은 말을 두 번 들어야 한다면 지겹다. 그러나 그 말이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말 자체로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거나 그 이야기가 청자들에게 전달되는 맥락이 특정한 의미를 지닌다면, 되풀이되는 이야기도 여전히 흥미롭다. 심지어는 더 낭만적이다. 나디아가 시 아스라를 두 번째 낭독하는 그 분위기는 누구라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적록색맹인 남자>
재난은 동시에 찾아온다. 레온이 별장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는 세 가지 불길이 함께 다가왔다. 첫째로는 별장 주위에 크게 발새한 산불. 레온은 바람이 바닷가 방향으로 불고 있어서 우리 쪽으로는 불길이 닿지 않을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믿고 산불을 안일하게 여긴다. 그 이야기를 현실에서 들은 것인지, 꿈에서 들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한 산불은 헬무트의 천식을 심화시키고, 펠릭스와 데비트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와 동시에 레온은 헬무트에 대한 불신, 나디아에 대한 사랑이라는 또 다른 두 재난을 맞닥뜨린다. 헬무트가 천식으로 쓰러지자 레온과 나디아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헬무트는 그로 인해 이전부터 앓았던 암이 더 심각해졌다는 진단을 받았고 이를 레온에게는 직접 알리지 않은 채 나디아에게 속삭인다. 레온을 잘 부탁한다고. 나디아와 둘만의 대화를 하는 헬무트를 본 레온은, 헬무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헬무트가 다시 병실로 들어가자 불신은 폭발한다. "나디아, 헬무트가 나를 버리고 너와 함께 일을 하려는 거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고, 암에 걸렸다고, 너를 챙겨주라고 한 거라고, 나디아에게 크게 혼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별장으로 돌아온 둘에게 경찰들이 찾아온다. 멀리서 경찰들과 이야기하는 나디아를 지켜보던 레온은 그때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이를 억누르지 못한다. "나디아, 할 말이 있어. 너를 사랑해." "레온! 펠릭스와 데비트가 죽었다고!"
줄곧 붉은 옷을 입는 나디아는 곧 산불과 같다. 레온이 자각할 수 없는 외적 상황이다. 레온은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도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빨간 드레스의 나디아를 보고도 툴툴대고 질투심을 표출할 뿐 사랑의 감정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 보이지만 보지 못한다. 레온은 현실과 꿈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기면증에 걸린 것처럼 자꾸만 깜빡 잠에 빠진다. 어느 날 밤에는 잠을 자다가 시끄러운 교성에 눈을 떠 이전과 같이 나디아를 비난하려고 보니, 옆 침대에서 책을 읽던 나디아가 그것은 펠릭스와 데비트의 소리라며 미소 짓는다. 바로 옆 친구들의 관계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내내 엥엥 거리는 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레온의 모습과 잠의 모티브의 일환이다.
<NOPE>
펠릭스와 데비트가 얼싸안은 채 불에 타 시체가 된 모습을 바라보며, 레온은 머릿속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폼페이의 연인' 이미지를 떨쳐내고자 노력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으니까. 지금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 유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니까.
전쟁과 재난의 상황이 SNS와 미디어를 통해 지나치게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현 시대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이제 엄지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바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이미지를 보고 끔찍해하는 것조차 비극을 소비하는 일일지 모른다. 남들이 겪는 사고와 비극은 잘 팔리는 상품이 된다. 공포영화, 재난영화가 흥행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마음 속엔 타인의 비극을 염탐하려는 관음증이 내재되어 있다. 조던 필 감독이 <NOPE>에서 전하고자 한 메시지처럼, 관객의 감정적 경험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타인의 모습, 비극적인 재난상황을 보고 즐기는 일은 중독성이 크고 위험하다. 나만 아니면 되니까 그저 흥미롭고, 그걸 당하는 모습이 어리석다고 비난하기는 참 쉽다.
그렇게 폼페이의 연인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는 레온은, 외적 재난과 심리적 재난을 겪는 레온을 보며 혀를 끌끌 차거나, 우스꽝스럽다며 즐거워 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며 욕을 했던 사람들에게, 도리어 크게 한 방을 먹인다. 당신들은 나보다 나은가?
<뒷담화에 대한 공포>
헬무트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병원의 복도에서, 레온은 헬무트와 나디아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한 것이 아니냐며 화를 낸다. 그러나 실은 암에 걸린 사실을 알리기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디아에게 오히려 레온을 챙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속좁은 질투심, 상황을 읽을 줄 모르는 좁은 시야는 재앙의 씨앗이 된다. <오펜하이머>에서도 '파멸의 연쇄작용'이 시작된 것은 미시적으로만 보자면, 스트로스 아이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호숫가에서 자신의 뒷담화를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시점에 오펜하이머는 그 새로운 파멸이 시작되었음을 자각하기도 했지만.
최근 영화들에서 이렇게 뒷담화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 뒷담화라고 믿는 대화장면을 목격하는 구도, 그 뒷담화라고 믿은 대화가 실제로는 뒷담화가 아니라는 설정으로서 오해와 그로 인한 악영향을 보여주는 것이 상응해서 더욱 그렇다. 레온이나 스트로스나,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쓰다가는 자신을 잃고 만다. 파괴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