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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knock Dec 29. 2023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3

4.5

차라리 돼지의 뇌가 되어 남의 머리에 들어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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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미나토는 자꾸만 이상한 행동을 한다. 머리칼을 잘라내고, 비 오는 밤 숲 속 터널에 숨에 있고, 달리른 차에서 벨트를 풀고 뛰어내린다. 미나토를 그렇게 만든 건 호리 선생님의 폭력 탓이다. 그런데 학교에선 아무런 공감도 해주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을 끝낼 생각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들이 괴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오리에겐 학교 선생님들, 특히 호리 선생님은 괴물이다.

미나토는 자꾸만 호시카와 요리를 괴롭힌다. 그러면서 호리가 다가가 타이르려 하면 호리에게 누명을 씌우고,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주변 선생님들은 일을 키우지 말라며 진실을 말하려 할 때마다 말린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를 사과하게 하고 실직시키기까지 한 미나토와 선생님들은 괴물이다.

호시카와 요리는 머리에 돼지의 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리는 명랑하고 낙천적이며 매력적이다. 주변 친구들은 요리를 못살게 굴고 따돌린다. 나도 따돌림을 당하긴 싫은데, 요리를 아끼는 마음은 커져만 간다. 그 마음이 단순한 우정은 넘어섰다고 느껴 혼란스럽고 무섭다. 결혼을 해서 평범한 가족을 만들라는 엄마의 소박한 바람은 너무나 무겁다. 미나토에겐 스스로가, 또 주변 모두가 괴물이다.

관객들은 내내 괴물을 찾아 헤맨다. 미나토가 사실 이중인격이 아닐지, 끔찍한 범죄자가 아닐지 의심한다. 호리 선생이 아이를 괴롭히고 히죽거리는 쓰레기가 아닐지 의심한다. 교장 선생님이 손녀를 죽이고 남편에게 누명을 씌운 채 안위만을 지키는 감정 없는 소시오패스가 아닌지, 머리에 돼지의 뇌가 든 게 아닌지 의심한다. 호시카와 요리가 실은 모든 악행의 흑막이 아닌지 의심한다. 아니, 시퀀스의 시점이 바뀌기 전까진 거의 그렇게 믿는다.

끝내 각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의 파편을 모아 보게 된 관객들은 괴물들의 속마음을 이해한다. 괴물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참 간사하게도, 이제는 괴물이라고 의심받았던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의심의 주체는 순식간에 낙인의 객체를 동정한다. 그렇게 쉽게 남을 손가락질하더니 어느새 두 팔 벌려 안아준다.

"괴물은 누구게?"
그렇다.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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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지나가고, 아이들은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들판을 달린다. 본래 육중한 쇠창살로 막혀 있던 기찻길 앞에 이제 더 이상 장애물이 없다. 아이들은 기찻길을 향해 달린다.

"우리 새로 태어난 걸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괴물이었므로 쇠창살 저편에 갇혀 넘어오지 못하던 아이들은, 터널 너머 그 새로운 세상에서는 변한 것 없이 괴물임에도 이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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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때문에 흙탕물이 빠르게 흘러내려오고, 폐기차 안에 갇힌 괴물들을 찾을 수가 없다. 창문을 뒤덮는 흙탕물을 애타게 닦아봐도 역부족이다. 아이들의 진심을 알게 되었기에 찾아내어 안아주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들에겐 기차 칸 바깥의 모두가 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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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숏이 정말 많고,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인물과 가깝다. 그만큼 착각과 오해는 커져간다. 내가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다른 인물에 대한 오해. 그 속에서 괴물의 존재는 맥거핀이 되어 관객들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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