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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되려면 뜸이 필요하듯

'우주를 짓다'의 속 얘기

by 윤소장


밥이 되려면 뜸이 필요하듯


지난 글에 등장한 유희재는, 일명 ‘유희왕’으로 불리며

타고난 말재주와 손재주로 스케치를 잘하는 건축계의 인플루언서다.


나는 늘 그에게 “스타성이 있다”고 말해왔는데,

최근 꾸준히 해온 스케치와 그 과정을 담은 숏폼 영상으로 유튜브 초청을 받고, 상하이 전시회 초대에 스폰서까지 붙었으니 이제는 명실상부한 ‘인플루언서 건축가’가 되었다.


유희왕 유희재의 자화상

적정건축의 이태원 사무실을 열었을 때 1층의 위치가 아깝다며 “유희재 개인전을 해보자”고 제안했었다.

그때는 “걸 그림이 없다”며 웃어넘기더니, 결국 그 개인전을 바다 건너 중국에서 열 줄이야.

(유희왕을 처음 발굴한것은 적정건축 윤소장이다. 공증 꽝꽝)


사실 유희재의 인기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나였다. 적정건축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 중 ‘유희재’가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그린 적정건축의 건물을 블로그 메인에 올린 뒤로 트래픽생겼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어그로 마케팅’을 노렸다. 유희재가 <우주를 짓다>에서 ‘꿀빵이’를 찾았다고 인스타에 올려주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식으로 책 마케팅이 되겠는데?”

하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책 속에 더 많은 지인의 이름을 숨겨놓고, “너 이름이 책에 있어, 찾아봐!” 하며 능동적인 독서를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 유희왕 이 녀석이 도무지 책을 안 읽는다는 거다.

“꿀빵이 찾았어? 찾으면 커피 한 잔 쏠게!”

유혹도 해봤지만, 사놓고 안 보는 게 분명하다.

유희왕, 반성하고 책을 읽어라.

그리고 네 관종미를 널리 퍼뜨려라, 널리!


사실 유희재는 꽤나 진지한 건축가다.
책임감이 강하고, 전형적인 ‘K장녀’ 스타일.
겉으로는 유쾌하고 가볍지만 속은 단단하다.

‘스케치게임’이라는 6개월 동안 100장의 스케치를 완성하는 챌린지에 무려 세 번 연속으로 참여해 전시까지 한 유일한 사람이다. 원래도 스케치를 잘했지만, 그 ‘룰’ 덕분에 더 자주 그리고 자기만의 색을 찾았다. 그 결과물들을 SNS에 올리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완성도와 정성 모두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나는 농담처럼, ‘요령 없이 성실한 모범생’이라고 부른다. 요즘의 유희재는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라,
읽을 틈이 없을 만큼 바쁘다. 일주일 절반을 대구에서 보내며, 1년 넘게 감리하고 지켜온 현장이 드디어 완공을 앞두고 있다. 건축사가 현장을 맡으면 쉴 수 없다.
특히 준공 직전엔 변수와 압박이 폭풍처럼 몰려온다.
육아와 현장, 그리고 인플루언서의 삶까지…
그 바쁨을 안다면, 책 한 권의 늦은 독서쯤은 용서해줄 수 있다.

(언젠가는 읽을테니까...I want to belive)


책을 내고 나니, 빨리 피드백을 받고 싶어진다. 이왕이면 좋은 반응, 게다가 마케팅에도 도움이 되면 더 좋다. 책을 낸 사람이라면 다 똑같을 것이다. 지인이 사주고, 리뷰를 써주고, 그게 입소문으로 이어져 더 많은 독자가 생기길 바라게 된다.


내 책 <우주를 짓다>의 “집을 리뷰해 주세요-쌓이는 후기와 경험 속에 다듬어지는 설계”는 부제에서 말하듯이 내가 설계한 집에서 사는 건축주의 경험담으로 설계가 더 풍부해지고 건축가는 성장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사실, 그 챕터를 쓸때는 위의 생각과 반대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건축가는 별점 리뷰를 받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음식점 별점리뷰를 볼때마다 가게주인은 참 스트레스 받겠다” 라는 마음.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니 건축가는 별점이 모이는 가벼운 리뷰보다 훨씬 무거운 리뷰를 받고있다는 생각에 글이 현재처럼 완성이 된 것이다.


“빨래를 햇볕에 말리고싶다”는 말을 듣고, 나도 집 안에서만 건조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빨래를 밖에 말려보고 그 빨래를 걷을 때 뽀송함과 햇볕을 가득 품은 특유의 냄새에 감동한 기억도 있다. ‘이래서 빨래를 햇볕에 말리고 싶다는 것이구나…’ 그런 요구는 한 개인으로부터 들었지만, 굉장히 보편성을 가진 요구다. 그래서 다음 집을 설계를 할때도 빨래에 대한 취향을 꼼꼼히 물어보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부분들도 챙기게 되는 것이다.


책의 반응은 생각보다 느렸다. 저자들이 말하길, 항상 두 달은 늦게 온다고 한다. 그래서 조급해하지 말라고.
‘밥이 되려면 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건축의 리뷰는 그보다 훨씬 느리다. 집이 완성되고, 사람이 살고, 시간이 지나야 의미가 드러난다. 그에 비하면 책의 리뷰는 빠른 편이다.


오늘도 인터넷 서점과 SNS를 들여다보지만, 조용한 순간에도 나는 안다. 건축주의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책은 독자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는 걸.

그러니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밥이 되려면 뜸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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