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공간읽기
도시에 편의점이 많은 이유는 단순하다.
도시인에게는 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밤이 없는 도시엔 반드시 불이 꺼지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대표가 24시간 편의점이다.
반면 시골에는 밤이 되면 정말 밤이 된다.
산도 자고, 나무도 자고, 사람도 자니, 편의점만 깨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시골에는 편의점이 적다.
밤에 쉬는 존재에게는 24시간 영업이 불필요하다.
문제는 도시에서 사는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편의점처럼 살아간다는 점이다.
꺼지지 않고, 쉬지 않고, 항상 대기 모드.
그러다 어느 날, “모든 걸 멈추고 훌쩍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찾아온다.
그때가 바로 번아웃이다.
24시간 편의점에 들어가 보면 특유의 공기가 있다.
형광등은 필요 이상으로 밝고,
직원의 표정은 ‘감정의 전원은 이미 꺼둔’ 상태이며,
타일 구석의 오래된 때는
“이 공간은 쉬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필 영화에서
으스스한 장면, 범죄 장면, 불안 장면에
편의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밤새 생기발랄한 편의점 직원이 튀어나오면,
장면의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번아웃된 공간과 번아웃된 인간은 서로를 닮는다.
둘 다 밝지만 생기가 없고, 열려 있지만 쉬지 못하고,
편리하지만 이상하게 외롭다.
좋은 건축물에는 반드시 void(보이드)가 있다.
말 그대로 ‘비어 있음’이며, 건축적으로는 ‘쉼’이다.
2층까지 뚫린 복층 같은 공간,
건물의 숨구멍 같은 중정,
영국 공작부인의 에프터눈 티 타임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커피 한 잔 들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틈의 공간’.
이런 곳이 많을수록 건축물은 숨을 잘 쉰다.
하지만 장사가 잘된다고
그 void를 막는 순간 공간은 바로 답답해진다.
쉬지 않는 공간은 그저 편의점이 된다.
공간의 번아웃은
여백을 잃었을 때 시작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식당이 더 장사가 잘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직원도 쉬고, 공간도 쉬고, 냄비도 쉬면
맛도 정신도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브레이크 타임을 주지 못한다.
열심히 사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회적 강박은
결국 우리를 24시간 편의점처럼 만들어버린다.
번아웃 증상은 이렇게 나타난다:
무기력, 무감동
'해야 한다’는 압박만 남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짐
감정이 마모되고, 사람을 피하고
이유 없이 공허해짐
마지막으로,
식사가 귀찮고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떼우고 싶을 때
그대는 이미 번아웃과 인사를 나눈 것이다.
시골에 편의점이 적은 이유—
그곳 사람들은 밤이면 밤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공간이 쉬어야 하듯
사람도 쉬어야 한다.
도시의 번아웃된 편의점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단순하다.
불을 끄는 법을 잊지 말라는 것.
그리고 여백 없는 삶은 결국 한밤의 편의점처럼 고독해진다는 것.
건축가 윤주연
호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사무소 적정건축ofaa 창립자
<우주를 짓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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