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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n 08. 2024

미역줄기볶음과 바다파스타

책 *<야생의 식탁>에는 ‘바다파스타’라는 요리가 등장한다. 이름만 봐서는 바다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소스가 들어가거나 해산물이 들어간 파스타 요리로 추측했지만 책 앞쪽에 첨부된 사진을 보니 면이 아예 해초로 이루어져 있다. 해초를 면 삼아 사용하고 다른 채소나 소스를 곁들여 파스타를 만드는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파스타라는 말은 요리를 일컫는 것뿐 아니라 면 자체를 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책 안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바다파스타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내가 요즘 자주 먹는 반찬 하나가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미역줄기 볶음이다.




미역줄기볶음은 가느다랗고 긴 모양을 한 미역줄기를 다진 마늘과 간장, 참기름을 넣고 볶아 만든 음식이다. 원래부터 이렇게 생긴 것은 아니고 넓적한 미역줄기를 가늘게 잘라내어 국수면처럼 만든 걸 요리해서 먹는 것이다. ‘바다파스타’ 속 재료는 원래부터 파스타면처럼 길게 생긴 것인지 아니면 우리 미역 줄기처럼 잘라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밀가루로 만든 면 대신 기다란 해초를 면처럼 먹는 거라 바꿔 생각하면 미역줄기볶음 역시 ‘바다파스타볶음면’이라고 불러도 문제 될 것이 없겠다.


책을 읽는 동안 먹어본 적 없거나 본 적도 없는 요리가 자주 등장했는데 그럴 때는 호기심과 함께 허기가 느껴져 종종 비슷한 음식이라도 챙겨 먹으려고 했다. 얼마 전 엄마가 만들어준 미역줄기볶음은 간이 세지 않아서 밥 없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라 바다 파스타가 나올 때면 반찬통을 꺼내 한 접시 씩 꺼내 먹었다.



해초는 염장을 해두면 오랫동안 보관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미역줄기 역시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편히 챙겨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미역 역시 제철이라는 때가 있고 올해도 어김없이 미역 수확철이 다가왔다. 생미역을 무쳐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는 것처럼 미역줄기 역시 그렇게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미역줄기는 일단 염장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한다. 그래도 묵은 미역이 아닌 올해 미역을 염장하여 볶아먹으면 맛은 비슷해도 몸에는 더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갓 채취한 것이 영양가도 더 많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마트에서 파는 걸 사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엄마가 미역공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미역은 엄마가 구해주는 걸 더 선호한다. 게다가 미역줄기볶음은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라서 엄마 손맛을 일부러 느끼기 위해 직접 만들지 않고 만들어주는 것을 받아먹고 있다. 웬만한 건 다 만들어먹을 수 있다 보니 엄마가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뭐 만들어줄까?’하고 물어볼 때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직접 살림과 요리하는 딸을 보면서 기특해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움을 느끼는 엄마에게 내놓는 답으로 가장 적당한 것이 바로 ‘미역줄기볶음’이다.


결혼한 후로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때에도 미역줄기볶음은 빠지지 않는 반찬이었다. 상하기 쉬워서 택배로 받을 수는 없고 방학 때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나갈 때면 큰 통 가득 든 미역줄기를 김치와 함께 꼭 챙겨서 돌아갔다. 아깝다고 너무 조금씩 먹다가는 먹지도 못한 채 상한 걸 죄다 버려야 할 수도 있고 너무 빨리 먹어버리면 더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해 아쉬워하는 일이 꼭 생기다 보니 매번 잘 조절하여 나눠 먹는 것이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껴 먹기만 하다가 뒤늦게 상해버린 걸 알고 울었다. 미역줄기가 더 먹고 싶은 것도 있지만 딸이 출국할 때마다 종일 싱크대 앞에 서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뒷모습이 생각나 마치 엄마의 마음을 버리는 것 같아 미안하고 슬펐다.


다른 반찬에 비하면 짭조름하지도 않고 크게 달거나 고소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좋을까. 오독거리는 식감이나 오히려 튀지 않는 맛이 좋은 걸 수도 있겠다. 게다가 간을 세게 하지 않으면 밥 없이도 배를 채울 수 있어 좋다. 글을 쓰다 보니 또 먹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어 미역 줄기가 든 반찬통을 열어보았더니 냄새가 이상하다. 아뿔싸, 상해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언제든 엄마가 만들어준 미역볶음을 먹을 수 있으니 옛날처럼 우는 일은 없다. 다음에 또 받게 된다면 그때는 꼭 남김없이 다 먹어야지. 아무리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상한 음식을 버릴 때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야생의 식탁> 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2023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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